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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n 29. 2020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후기

게임은 게임일 뿐 오해하지 말자. 

* 게임 내 모든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



‘PS4 마지막 기대작’, ‘모든 콘솔 게이머들의 염원작’, ‘역대 GOTY 수상 1위의 후속작’ 등등 전작을 수식하는 수많은 영광을 업고 등장한 이 게임은 현재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불편하게 만난 조엘과 엘리가 서로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인간적 교감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세상 모두를 구할 것이냐, 옆에 있는 한 소녀를 구할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던 전작 <라스트 오브 어스>는 전문가/유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한 걸작이다.


때문에 7년 만에 탄생한 그 후속작에 모든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출시일 다음날부터 인터넷에는 스포일러가 넘치고 게시판에서는 명작이니 망작이니 하는 유저들의 이전투구가 날마다 벌어진다. 도대체 왜 그럴까?


- 전작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캐릭터의 무력하고도 처참한 사망

- 그 사망을 유발한 캐릭터의 주인공화(사실상 투톱 주연)

-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코드들

-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들의 심리와 행동 변화


게임을 마친 후 떠들썩한 인터넷의 후기들을 조합해본 결과 위 네 가지로 압축된다. 압도적인 사랑을 받은 전작 주인공의 끔찍한 사망은 파트 2의 주인공인 엘리의 여정에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이는 전작에서 세상보다 한 소녀를 택한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익스큐즈 하는 사람들이 꽤 되는 듯하다.


아마도 극단적 악평은 90% 이상 여기서 나온다. 그 주인공을 잔혹하게 살해한 애비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라는 것, 그것도 게임 분량 반을 차지하는 중심 캐릭터라는 점이다. 과도하게 전작에 몰입한 팬들은 조엘의 사망에 그로기 상태에 이르렀고 애비를 강제로 플레이해야 한다는 현실에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았다. 조엘과 엘리의 성장한 모습, 둘의 콤비 플레이로 클리커들을 신나게 때려잡길 기대했던 팬들은 분노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게임이 출시되었다면 좀비 때려잡는 여타 양산형 게임과 뭐가 달랐을까 싶다. 전작의 팬들도 ‘그들만의 리그’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캐릭터에 너무 과도하게 이입을 했을 뿐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조엘의 사망 신에서 입이 떡 벌어졌고, 애비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에 다소 불편함을 느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애비 스토리에서 하기 싫은 일을 떠맡은 전작의 조엘이 겹쳐 보인 건 기분 탓일까? 너티독은 그 캐릭터에 몰입시키는 ‘체험’의 방식으로 유저에게 이 불편함을 마주하게 했다. 다소 살갑지 않은 표정에 정을 줄만한 요소가 1도 없어 보이는, 아버지를 잃은 과거와 살인 병기와 같은 군인으로 자란 잔혹한 애비는 친구들 과의 삼각관계, 무조건 처단해야 하는 적이라 여겼던 세라파이트 두 아이를 만남으로서 서서히 변화한다. 마치 전작의 밀수꾼 조엘이 처음 짐짝 취급했던 엘리에게 감화되었던 것처럼. 레브와 야라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죽지 않고 플레이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

주인공은 명백한 선이며, 그가 상대하는 모든 적들은 악이라는 단순한 구성에서 벗어나 초반부터 악으로 설정된 애비라는 캐릭터를 플레이하며 그녀의 경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이 게임을 관통하는 ‘복수’라는 주제를 완벽하게 전달한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인간성이란 멸종된 듯 보이지만 이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결국 ‘인간’에 의해 잊혀 있던 자신 내면의 인간성을 되찾는다. 거리낌 없이 적을 죽이던 애비가 두 아이를 통해 변해가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은 반은 편견일 수도, 반은 조엘에 대한 넘치는 사랑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모든 대사와 인카운트를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는 내 경험으로 애비의 행동 변화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조엘을 살해한 직후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고 ‘그 사건’ 이후 친구들 사이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오언과 친구 멜 사이의 삼각관계는 혼란스럽다.(마치 제시와 디나 사이의 앨리처럼) 단지 행복했던 과거, 오언과의 즐거운 추억과 아버지를 잃은 경험은 그녀 역시 한 명의 인간(또 다른 이름의 앨리)일 뿐이며 복수라는 끔찍한 굴레(바이러스로 인간성이 말살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 일대일 격투에서 끝내 애비를 죽이지 못하는 앨리의 모습에서 우리는 남겨진 인간으로서의 선택지를 받게 된다. 전작에서 그랬듯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저가 마지막 선택을 하게 함으로써 더욱 허무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방법은 어땠을까, 선택지가 있지만 큰 가지로의 허무함이라는 결말은 같은, 어떠한 선택지로도 끝내 죽음을 피할 수 없던 레데리 2의 아서처럼. 이는 캐릭터의 감정선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 했던 너티독의 의도적인 제거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애비는 철저한 악이자 처단해야 할 빌런으로 그려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불만을 성토하는 글도 제법 보인다. 이는 파트 2를 관통하는 주제인 복수에는 합당할지언정 이야기를 단순하게 만드는 최악의 수라고 생각한다. 뻔한 전작의 스토리를 어떻게 명작으로 탈바꿈시켰는지 봤다면 위의 주장은 이 게임을 단순한 액션 게임으로 전락시키자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어릴 적 항상 승리하던 후레쉬맨과 전대물 용사가 이제 없다는 걸 이제는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 PC 코드는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고 게임 산업 특성상 넣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에 몰입하지 못할 정도도 아니고, 게임성을 해치는 쪽은 더더욱 아니다. 아 참고로 나는 퀴어 문화에 꽤 비판적 입장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고 싶다. 내 기준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PC코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불편하지도 않았고 불편할 건더기도 없었다. 이게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면 요즘 인터넷 등 모든 매체들은 불편해서 어떻게 보려나 모르겠다.


결론은 너티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게임으로, 모두의 기대를 받는 후속작이라는 압박을 등에 업고도 이 정도 결과를 만들었다는 점에 놀랍고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로서 감사할 뿐이다. 게임은 게임일 뿐 오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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