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 이청준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인간사를 집요하게 압축해놓은 듯한 이 소설은 나병 환자들이 있는 병원, 소록도에 부임한 조백헌 원장의 성장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전까지 불편한 진실로 여겨졌던 계급의 이야기가 영화 ‘기생충’에 의해 전혀 다른 시선으로 조명받게 되었는데, 이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이미 70년대에 계급 간의 갈등과 모순에 대해 풀어냈다. 난해하게 느껴지는 묵직한 이 소설의 힘은 세계 고전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는 내게 국내소설의 가치를 재고하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나병 환자 병원에 새로 부임한 조백헌 원장이다. 그는 나병 환자들의 섬을 새롭게 개척하여 그들을 위한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것이 순수하게 환자들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치적을 쌓기 위한 명분인지 알 수 없다. 이전 일제 강점기 시절, 주정수 원장이 보였던 모습과 겹치는 그의 모습은 원생들에게 고통스러운 역사를 돌이키게 만든다. 원생들을 위하는 듯한 정책을 펼쳤던 주정수 원장은 환자들을 위한 천국이 아닌, 자신만의 천국을 만든 인물이었다. 다만 그가 원래 탐욕스러운 인간이었는지, 그의 포부에 감복했던 원생들이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무조건 적인 피지배 계급의 충성으로부터 자라난 내부 갈등의 씨앗은 결국 섬 전체를 파멸로 몰아간다. 이러한 역사를 지닌 섬에서 조백헌 원장의 신념이 원생들에게 가 닿기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축구 경기로 원생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는 원장의 카리스마와 결단력은 소록도에 잠시나마 희망을 꿈꾸게 한다. 자신감을 얻은 원장은 간척사업을 벌여 나병 환자들을 위한 토지를 만들어 그들만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선포한다. 주정수의 역사가 채 잊히기도 전 강하게 원생들을 이끌어가는 조원장의 결단력은 인간이 절대로 이겨낼 수 없는 자연의 힘에 의해 균열이 생긴다.
약 50년이 지난 이 소설은 여전히 현실을 깊게 관통한다. 선의를 가진 지배자의 신념이 오히려 피지배 계급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다. 자유가 구속된 상태를 천국이라 지칭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공포를 불어넣는 행태, 이상욱이 끊임없이 의심했던 주정수 시대로의 회귀나, 보이지 않는 굳건한 철조망을 둘러친, 나병 환자들을 위한 조원장의 사업 추진이 자칫 지배자 혼자만의 천국임을 의미하고 그것이 곧 파멸임을 이 소설은 경고한다.
섬 외부의 알력에 의해 마산으로 발령을 받은 조원장은 자신의 숙원 사업인 간척 사업이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떠나고 싶어 한다. 이 모습은 그가 진정 환자를 위해 사업을 펼쳤던 것인지, 결국 그 자신도 주정수와 같이 동상에 현혹된 자인지 모호하게 한다. 원장의 감시자였던 이상욱은 결국 섬을 떠난다. 그가 떠난 연유는 당시 모호했지만 세월이 지나 지배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다시 조원장을 섬에 되돌아오게 함으로써 밝혀진다. 그들과 같은 운명에 서야만 그들의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이상욱의 편지는 조원장을 변모하게 만든다. 1,2부의 지배자 조원장과 3부에서 실패자로 남은 조원장의 모습은 작가가 남기고자 했던 계급간 인간 사이의 시선의 차이를 깨닫는 것으로부터의 갈등의 해소, 미래에 대한 작은 희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은 조원장이 혼자 주례사를 연습하는 모습을 이상욱과 기자 이정태가 훔쳐 듣는 것으로 끝이 난다. 나병 완치자와 섬 미감아 출신 건강인의 결혼을 통해 갈등을 봉합하는 미래를 그리고, 자신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자연인으로 돌아온 조원장은 우리에게 작게나마 희망을 꿈꾸게 한다.
오늘날의 정치인, 위정자들은 천인이나 알에서 태어난 신화적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그들 역시 보통 사람과 같은 고뇌와 갈등을 가지고 있으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직면한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능력 또한 없다. 섬을 위한 강한 선의를 품었던 조원장 조차 자연 앞에 사업이 어그러지는 것을 보며 원생들의 기류에 불안해 하며, 황장로를 위시로한 세력의 압박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미래를 향해야 할까, 우선 이성욱처럼 위정자들을 비판적인 시선에서 감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시대의 지식인을 대변한 듯한 이 캐릭터는 맹목적으로 특정 정치인을 위시로 해쳐 모이는 작금의 이미지 정치 풍토에 큰 울림을 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 비평보다는 협잡과 저열한 비판, 상식 이하의 조롱과 멸시를 일삼는 오늘날 SNS 등에서 쏟아지는 양 극단 세력의 정치전은 눈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다. 아무리 이전보다 발전된 기술 문명으로 십 대 청소년부터 80대 노인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한편으로는 기술과 문명 발전 속도를 우리네 의식 수준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정치인들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우선적으로 복구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시선에서 사회와 문제를 바라봐야 할 것이며, 우리 시민은 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 전, 우리 자신의 모습 부터 돌아봐야 한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절대선/악으로 구별되는 문제가 아닌, 특정 집단의 이익과 손해에 대한 문제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은 더욱 어려워졌다. 어떠한 기준으로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과연 누가 그것을 판단할 것인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만한 합리적 결정이라는 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일까?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요원한 채, 편을 나누어 서로에 대한 비난과 비난할 대상을 찾아 힐난하고 끌어내리는데 혈안이 된 현재 시국에 많은 분들이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도록 이 소설을 일독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조금이나마 희망이 존재하는, 진정한 당신들을 위한 천국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