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 줌파 라히리

by H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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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국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게 되는 속성이 있는 것일까, 이전에 읽은 작가의 <축복받은 집>에 수록된 짧은 이야기들에 감탄했던 기억을 잊게 만들 정도로 이 책의 여운은 정말 깊다.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과 겹쳐 보이는 이 소설은 작가 개인의 정체성, 기원에 대한 의미, 그것을 풀어냄으로써 해소되는 어떤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의문을 품게 한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근현대사는 우리와 다르지만 닮아있다. 식민지로서의 울분과 분노와 맞물려 터질 듯이 팽창해있는 국가적 문제들이 독립만 된다면 씻은 듯이 깨끗하게 사라질 것 같았을까. 이내 빈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이념적 갈등이 영국의 자리를 꿰찬다. 배고픔에 인간과 짐승의 선을 넘나드는 서민들의 고통을 먹고 자란 갈등은 증폭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수바시와 우다얀 두 형제는 그 시대에 대립했던 두 이념을 상징한다. 한 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형제는 낙살바리 운동이 시작된 인도의 70년대에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영국의 골프장과 인도의 빈민촌을 갈라 구분했던 저지대처럼.


과감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이상주의자 우다얀은 마오주의에 영향을 받아 낙살라이트가 된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이념으로 시작한 혁명이라는 대의명분은 어느새 테러를 자행하는 과격 집단으로 돌변한다. 순수한 이상, 새로운 인도를 꿈꿨던, 한 번도 해외를 가보지 못한 우다얀은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들과 달리 이름 없이 사라져 간 그는 가우리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꿨을 뿐이다. 냉전체제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양분으로 희생된 수많은 그 시대의 소시민들의 짧은 삶이 비치는 그의 생은 안타깝다.


침착하고 조심성이 강한 현실적인 수바시는 동생과 다른 노선을 택한다. 낙살바리 운동을 비판한 이후 동생과의 관계는 소원해지지만 그는 나름대로의 길을 떠난다. 미국으로의 유학, 그것은 서뱅골 인도인으로서는 도피요, 새로운 이민자로서는 고난과 도전의 길이었다. 극단적 사상을 피해 조국을 등지고 떠난 그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 아마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자국의 운명에서 도피한 수바시에게 이후에 닥치는 가혹한 운명은 인간에게 있어 국가라는 뿌리와 기원에 대해, 얄궂은 운명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두 형제와 엮인 또 다른 주인공 가우리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변화를 대변하며 형제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는 여인이다. 그녀는 우다얀에게는 전통적 인도 여성으로서의 순종적이고 온순한 모습을 띤다. 순수하게 그를 사랑했던 마음에 테러 범죄까지 동조하게 되는 가우리는 그의 허망한 죽음으로 인해 변모한다. 그녀를 미국으로 데려간 수바시에게는 여성이 아닌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보인다. 이것은 마치 우다얀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그녀 개인적 차원의 사투로 보이기도 한다. 딸 벨라를 버리듯 떠나는 모성애의 배신과, 일탈적 동성애의 행위는 그녀를 마냥 비판할 수 없게 하는, 살기 위한 발버둥처럼 보인다.


인도의 근대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완전히 몰입되어 읽어나갔다. <축복받은 집>에서 느꼈던 간결하지만 묵직한 인물들의 대화를 통한 캐릭터 빌딩은 줌파 라히리 만의 압도적인 능력이다. 곁 따옴표가 사라진 압축적이면서도 명료한 대화는 이 의견의 증거이다. 이민자로서의 미국인, 그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향수와 처연함을 남녀 관계나 가족적 문제에 대입해 풀어냈던 방식이 역사라는 거대한 배경을 얻어내니 완독 후 남는 큰 여운은 더욱 길게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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