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by HJS


나는 이 소설이 ‘SF 소설’이라는 딱지를 뗐으면 좋겠다. 그의 작품을 단순히 SF 소설로 구분하는 것은, 스마트폰을 전화기로만 명명하겠다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엄청난 상상력과 세계관으로 중무장한 소설이 아닌, 멀지 않은 우리의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만화경이기 때문이다.

P.430 “스위스 시계처럼 정밀하며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심오한 걸작들의 향연”


유사 이래 차곡히 쌓아 올린 인류의 문명은 오늘날 수학, 그리고 과학이라는 기준과 법칙으로 발전되어왔다. 지금도 엄청난 속도로 급진하는 기술에 반해 인류는 크게 달라지지 못했다. 배경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휙휙 바뀌어가는데, 서 있는 사람은 단지 몇 발자국 움직인 것처럼. 너무도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기술이 가져올 작용과 반작용, 그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테드 창은 그 시간에 약간의 상상을 첨가시켜 글로 펼쳐냈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외모 지상주의라는 어찌 보면 단순한 주제를 과학 기술에 접목시켜 美의 가치와 인류의 감각에 대한 메시지까지 확장시킨다. 어떤 대단한 상상이 아닌 우리가 익히 들어오고 한 번쯤 생각해 봤던 것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확장성은 왜 그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인지 증명한다.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게 본 작품은 <지옥은 신의 부재>. 인간과 종교 사이의 그 간극에 대해 조망한 작품들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생과 죽음이라는 선을 타고 있는 인간의 아이러니에 대해 짧고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복을 받은 <욥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이 작품은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인류가 직면하는 자연재해, 선한 이들에게 찾아오는 고통에 대해, 그 상상하기 힘든 아픔에 대해 종교가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단 하나의 답을 산출할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해 논한다. 또한 선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절대적 신앙 유지를 선으로 상정하는 욥기와 주인공 닐과 제니스의 이야기를 비교해보는 방식은 우리에게 삶과 신앙에 대한 또 다른 면을 만들어낸다. 선은 언제나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인가?


정보와 지식의 시대. 하지만 오늘날 도래한 반지성주의는 ‘문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을 현실로 느끼게 한다. 쏟아지다 못해 물밀듯 넘쳐나는 오늘날의 정보에서 지식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지식을 잘 가공해 세상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오늘날의 권력이자 힘이다.(이 책 대부분의 단편들에서 지식은 곧 권력을 의미한다.)

진짜든 가짜든, 지식을 이용하는 자들에게 대중들은 휘둘린다. 몇 번의 엄지손가락으로 획득 가능한 억겁의 정보들은 오히려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고된 하루에 피로한 대중은 더욱 단순하고 편집된 정보를 원한다. 내편/네 편, 남/여, 청년/노년, 부자/빈자 등으로 세를 가르고 눈앞에 놓인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자를 적으로 간주하게 한다.

한 아이의 손을 들어주면 다른 아이가 운다. 우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저쪽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언뜻 제로섬 게임처럼 보이는 이 판을 깨버릴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런 시기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현재 세계가 직면한 상황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만들었다. 그 안에서의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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