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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Oct 19. 2020

인생은 계속된다

<숨> - 테드 창

누군가에게 추천하려고 할 때 이 책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좋다’라는 단순한 말을 내뱉으려 한 너무나 성의 없는 내 표현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소설은 단연코 압도적이다.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 가장 강력한 능력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유의지. 하지만 고도로 발달한 물리학, 컴퓨터의 등장과 빅데이터, 앞으로 목도할 머지않은 우리의 미래 앞에서 자유의지란 과연 인간이 지닌 능력인 것인가. 거대한 우주라는 이름의 매트릭스 속 환상일까. 앞서 같은 주제로 수많은 소설과 영화가 쏟아져 나왔지만 테드 창의 소설은 다르다. 다름을 초월한 탁월함이다. 독특하고 기묘한 상상력으로 그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종이 목도해야만 하는 존재에 대한 이유 그 거대한 질문의 벽 앞으로 안내한다.


<상인과 연금술사>는 선형적 시간의 차원을 넘나듦으로써 그 안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냈다. 과거로 돌아가도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는 비극적 서사를 역으로 이용했다. 기술적 용어의 난해함도 없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편이다. 이 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 중 대부분이 각 단편에서 등장하는 세계관에 대한 난해함을 꼽는다. 평범한 사람이 감히 하기 어려운 상상처럼 보이지만 단순하게 한발짝 멀리 떨어져 보면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공상했던 이야기다. 전문가급의 기술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소설 내용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하려고 이 책을 보는 것이 아니니까. 책을 사랑하고 이야기에 사로잡히는 독자로써 기술적 콘셉트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기술적 용어들은 적당히 감안하고 넘어가도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에는 크게 무리가 없다.

<숨>은 먼 미래의 인류가 보내는 메시지의 형식으로 거대한 진리를 맞닥뜨린 주인공의 독백이다.’ ‘나’라는 존재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내 뇌를 꺼내 보관해서 다른 육체에 이식한다면 그것은 ‘나’인 것인가. 육체와 정신, 그 안에서 한 개인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놀라운 세계관을 통해 드러낸다. 가장 인상 깊게 본 단편 중의 하나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디지언트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이 자손을 낳고 부모로서 자식을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내는 것에 대해, 인간과 로봇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지언트라는 존재에 감정을 이입한 주인공 애나, 그녀를 사랑하는 데릭, 마지막 그의 선택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였을까. 로봇이 감정을 가지게 될 수 있을까? 갖게 된다면? 인간과 로봇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이미 자식보다 애견, 애묘를 키우며 감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작금의 뉴스에 부모 자식의 천륜을 저버리는 몇 개의 사건을 떠올리며 지구 상의 유일한 지성체라 자부하는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은 인간의 망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의 전 생애가 영상으로 기록된다면? 내 생에 최초의 기억은 무엇일까. 본질적 사건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기억한다. 이 셀수 없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타인에게 상처 입히며 살아가는가. 최근 화제의 인물들의 과거를 캐며 그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실수와 죄를 저지르지 않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부터 반성하고 나아가는가. 그것에 매몰되는가. 선택지가 있고 인간은 매 순간 선택을 해 나갈 뿐이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내가 가장 몰입했으며 하나의 영화를 봤다고 느낄 정도의 생경함을 그리게 한 소설이다. 이미 성공한 <컨택트>와 다른 작품의 영상화 소식으로 미뤄 짐작해 봤을 때 이 작품 또한 이어지길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냇과 데이나를 통한 인간의 자유의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 과거의 자신의 늪으로부터 한 발짝 내딛는 것에 대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우주의 거대한 운명론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걸음을 내딛는 시지프처럼. ‘Life goes on’, 인생은 계속된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 한은. 이 책을 덮고난 후에 밀려오는 질문이 보일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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