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르윈>
무명 포크송 가수 르윈 데이비스는 참으로 고단한 인생이다. 듀엣 파트너는 다리에서 투신자살, 현 연인은 재수 없는 놈과 동거 중, 그와 노래를 즐거이 맞아주는 이는 이웃 골파인 교수 부부뿐이다. 이 집 저 집의 소파에서 하루 이틀을 전전하는 외로운 인생.
그에게 포크는 자존심이자 버리지 못한 낡은 꿈이다. 그만 접고 배나 타라며 속 모르는 핀잔을 주는 누나에게 고집스럽게 일만 하다가 오늘내일하는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 큰소리친다. 친구의 현 애인이자 르윈의 옛 연인인 진은 난데없이 임신 사실을 통보한다. 아이를 지울 비용을 수소문하는 르윈. 행실은 슈퍼스타인데, 행색은 뉴욕 거리의 노숙자다. 골파인 교수의 집에 사는 고양이처럼, 길에서 언뜻 보이는 지나가는 아무개 일뿐.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고양이를 둘러업고 시카고까지 의도치 않은 여정을 떠나는 르윈. 마지막이라는 혼자만의 다짐으로, 제작자 앞에서 조용한 열창 후 돌아오는 건 뻔한 조언, 그는 진심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르윈에겐 지겨운 잔소리처럼 들린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는 뻔한 대중 가운데 하나처럼.
결국 빈털터리로 다시 돌아온 뉴욕, 음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의 유일한 무대이자 안식처였던 가스라이트 카페에서 남의 무대를 깽판 친다. 우스꽝스럽게도 다음날 자신이 그곳에서 다시 앉아 노래한다. 삶을 포기해버렸다는 가사를 담은, 경쾌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그런 노래로. 무대에서 내려와 그의 다음 차례인 밥 딜런의 노래를 배경으로 누군가에게 얻어터지는 르윈. 쏘아대는 몇 마디로 그의 정체를 추측한 뒤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던지는 한마디는 결국 그가 먼 여정을 통해 다시 돌아왔음을 말한다. ‘포크가 다 거기서 거기’라 말하지만 이미 자신의 삶 자체가 되어버린 음악으로 귀환한 르윈.
무릎팍 도사에서 전현무가 그랬던가, 안 되는 꿈을 잡고 있는 게 더 비참하다고. 르윈은 안 되는 꿈을 잡기로 했나 보다. 나는 어떨까. 주식, 부동산, 유튜브 등 제 직업에 벌이에 만족하지 못해 돈 나올 구멍을 이리저리 전전하는 시대에 내 꿈은 되는 꿈일까 안 되는 꿈일까. 매일 같이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지만 한심한 결과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찾아오는 주말엔 가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모니터의 커서를 노려본다. 매일 열명 남짓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블로그 통계를 습관적으로 클릭하면서 정작 써야 할 글은 멈춰있다. 맛은 더럽게 없는데 손님이 안 온다고 경제 탓을 하는 이상한 식당 주인이 된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씻고, 빈 배를 채우고, 출근하고, 일을 하고, 퇴근한다. 잠시 트레일러 위를 벗어나 쉴 수 있는 세네 시간 남짓의 시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찾으려 악전고투한다. 저녁을 먹고 멍하니 누워 있다 보면 춥다 못해 뼈가 시린다는 뉴욕의 겨울에서 코트도 없이 재킷을 움켜쥐고 돌아다녔던 르윈의 모습이 그려진다. 계속해서 파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세상 편한 조언은 믿지 않은지 오래다. 내가 성공할 재목인지 아닌지 어쩌면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정류장 중간에서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내리는 순간 끝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끝까지 가 본 뒤에 결국 아니었다면 세상에(혹은 나에게) 욕 한 사발 날리고 뜨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전혀 그들을 응원하지 않는다. 아무런 감정 없이 카메라 속 르윈의 발자취를 따라갈 뿐이다. 이 영화는 그들을 전혀 응원하지 않는데 응원을 받아가는 이상한 영화다. 세상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 슈퍼스타의 그늘 속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들. 어두 침침한 간신히 작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각자의 가스라이트 카페에서, 기타를 매고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스쳐갔을 누군가를 추억하며, 포기하지 않을 때까지 언제나 계속되는 애증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