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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Dec 20. 2021

일반인도 비행기를 착륙시킬 수 있을까?

[질문 있어요! #1]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공교롭게도 비행 중 조종사가 모두 의식을 잃은 상황이 된다면,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을까? 영화 같은 상상이지만, 어디 한 번 소설을 써보자.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던 귀국 편 여객기의 조종사 두 명이 조종실에서 식사 중 독극물 테러로 의식을 잃고 조종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객실승무원이 이를 발견하고 응급조치를 시도하였으나 이들은 의식을 되찾을 수 없었다. 승객 중에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용감한 승무원 릴리와 케빈이 조종석에 앉기로 했다.


우선 이 상황을 관제소와 회사에 알려야 했다. 케빈은 위성전화 연결을 시도했고, 릴리는 조종석에 마이크로폰으로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스위치를 눌러 대화를 시도했다.


“여보세요, 제 목소리가 들리나요? 관제사와 대화할 수 있나요? 비상상황이에요!"


다행히 관제소는 릴리의 무선 통신에 응답하였고, 비상상황을 이해하였다. 비행기는 오토파일럿(Autopilot)으로 항로를 따라 평화롭게 비행 중이었고, 관제소는 레이더로 비행기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관제소는 비상상황을 알리고 항공사에 조종사 지원을 요청했다. 비행기가 도착 공항과 가까워지기 전에 대책반이 구성되었고, 노련한 관제사 알렉스와 베테랑 기장 스티브가 무선 통신 마이크를 잡았다.


우선 알렉스는 전용 통신 채널로 주파수 변경을 요구했다. 많은 항공기들이 함께 사용하는 통신 채널에서 빠져나와 긴밀하게 대화하기 위해서이다. 스티브가 주파수 변경 방법을 릴리에게 알려주었다.


보잉 B787의 페데스탈(Pedestal)


“릴리, 케빈, 추력 레버 아래쪽 페데스탈(Pedestal)에 세 개의 화면이 있는데, 그중 위에 두 개 화면이 무선 주파수를 보여주는 것이에요. 왼쪽 화면 아래의 숫자키에 ‘12385’를 친 후, 화면 옆 왼쪽 첫 번째 스위치를 누르세요!”


“그렇게 했어요. 잘 들리나요?”


“좋아요. 이제 우리끼리만 대화를 할 수 있어요. 저는 스티브입니다. 제가 안전하게 착륙하도록 도와 줄게요."


이어서 레이더 트랜스폰더 코드를 비상 코드인 ‘7700’으로 변경하도록 요구했고, 역시 스티브의 안내에 따라 스위치를 찾아 세팅하였다. 비상 코드를 입력하면 관제소의 레이더 모니터 화면에 이 비행기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근처의 다른 비행기들과 쉽게 구별이 가능하다.



스티브는 비행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릴리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침착한 릴리는 스티브의 안내에 따라 비행 관리 컴퓨터(FMC: Flight Management Computer)와 비행계기에 쓰여있는 숫자와 글자 정보들을 읽어 주었다. 승객과 조종사의 상황도 알려주었다. 스티브는 이 비행기가 약 30분 후에 공항 접근 관제 지역에 도달할 것이며, 연료는 충분히 여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FLight Management Computer의 입력 단말기


이 비행기는 공항 관제 권역 상공까지 계획된 항로를 따라 비행하도록 비행 관리 컴퓨터(FMC)에 입력되어 있었다. 하지만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활주로까지의 접근 경로와 고도 등을 상세하게 업데이트하여 FMC에 입력하여야 한다. 스티브는 복잡한 컴퓨터 내비게이션 세팅을 포기하고, 릴리와 함께 직접 고도, 속도, 방향을 조절하여 비행기를 착륙 시키기로 결심했다. 침착하고 총명한 릴리가 스티브의 안내에 따라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다행히도, 인천공항과 이 비행기는 모두 훌륭한 자동 착륙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아무리 용감한 릴리라 해도 이렇게 무겁고 빠른 비행기를 수동으로 착륙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 착륙을 위해서는 FMC에 착륙할 활주로와 계기착륙 시스템(ILS: Instrument Landing System)의 ID를 입력해야 한다. 이 시스템의 전파 시그널이 비행기를 활주로로 유도할 것이다. 스티브는 천천히 릴리에게 방법을 안내했다.


ILS system(출처: naver 블로그)


스티브는 릴리에게 MCP(Mode Control Panel)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MCP는 여러 가지 오토파일럿 기능을 조작하는 패널이다. 조종실 계기판 정 중앙 위쪽에 위치한다. MCP에는 여러 가지 스위치와 다이얼이 있는데, 좌측부터 속도, 방위, 고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과 스위치, 그리고 디스플레이 창이 있다. 스티브는 릴리에게 다이얼을 돌리고 스위치를 눌러 비행기가 방향을 바꾸거나 상승, 강하를 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연습시켰다.


계기판 위쪽에 숫자창들이 있는 길죽한 패널이 MCP다.


“헤딩 노브(Knob)를 좌측이나 우측으로 돌려보세요. 비행기가 선회할 거예요.”


“스티브, 다이얼을 돌리는 대로 비행기가 따라서 움직여요!”


릴리는 다이얼을 돌려 창에 나타나는 숫자를 바꿀 때마다 비행기가 반응하여 움직이는 것이 신기했다. MCP의 다이얼을 사용하자, 더 이상 비행기는 컴퓨터에 입력된 항로를 따라 비행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활주로를 향해 비행하도록 방위각을 불러주었다. 고도를 낮추고 속도를 줄이기 위해 적정 고도와 속도도 불러주었다.


“릴리, 속도창에 숫자를 220으로 맞추세요. 방위창은 330을, 고도창도 3,000으로 맞추세요.”


“왼쪽이 속도니까, 220노트… 가운데가 330도… 고도가 3천 피트… 네 다 입력했어요.”


비행기는 스티브가 유도하는 대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닌, 알렉스와 스티브의 도움을 받아 릴리가 반자동으로 항공기를 조종하는 것이다.


비행기의 움직임은 레이더 항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관제사가 보는 레이더 모니터에는 관제 지역의 지도가 나타나 있고, 그 위에 비행기의 항적이 표시되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표시되는 비행기 모양의 항적 옆에는 그 비행기의 현재 속도와 고도가 나타나므로 알렉스는 릴리가 스티브의 안내대로 정확히 비행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더 항적만으로는 자세한 비행 상태를 알 수 없다. 스티브는 릴리에게 정면에 보이는 비행계기를 읽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똑똑한 릴리는 계기를 보고 스티브가 알고 싶은 비행 정보를 읽어주었다.

B787의 주 비행 계기 디스플레이


주 계기판의 가운데는 비행기의 자세를 나타내는 자세계가 있고, 왼쪽에는 속도계, 오른쪽에는 고도계가 표시된다. 자세계 아래에는 방위계가 있으며, 위에는 오토파일럿의 상태를 나타내는 글자들이 표시된다.


“릴리, 지금 속도가 얼마인가요? 잘 줄어들고 있나요?”


“지금 속도는 282노트를 가리키고 있어요. 천천히 줄어들고 있어요.”


착륙을 위한 속도로 감속하기 위해서는 고 양력 장치(Flap)를 펼쳐서 날개의 면적을 넓혀야 한다. 스티브는 릴리에게 플랩 레버의 위치를 알려주고 작동법을 설명해 주었다. 다행히 모든 스위치와 레버에 이름이 쓰여있었고, 스티브가 정확한 명칭을 말해주어 릴리는 쉽게 레버를 찾을 수 있었다.



“레버를 살짝 당겨서 ‘1’이라고 쓰여있는 위치에 놓으세요.”


“레버가 잘 안 움직이는데요?


“아, 미안해요. 레버를 내리려면 먼저 레버를 위로 살짝 들어야 해요.”


“아, 이제 움직여요. ‘1’에 놓았어요.”


“잘했어요. 이제 속도를 더 줄일 수 있어요. 속도 창에 숫자를 190노트로 맞추세요.”


착륙하려면 바퀴를 내려야 한다. 스티브는 랜딩기어(Landing Gear) 레버 위치를 알려주고 릴리가 레버를 아래로 내리도록 안내했다. 랜딩기어 레버는 조종실 정면 한가운데 찾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 릴리가 레버를 내리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랜딩기어가 내려왔다.


Main Landing Gear


“랜딩기어 레버 아래쪽에 오토 브레이크(Auto Brake) 셀렉터 노브가 있을 거예요. 찾았나요?”


“네, 찾았어요. 그 위에 숫자가 적혀 있어요.”


“노브를 돌려 3에 맞추세요.”


“네. 맞추었어요. 이제 착륙하면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작동하는 건가요?”


“맞아요, 이제 조종사 다 되었네요, 릴리.”


스티브의 안내에 따라 릴리는 스피드 브레이크(Speed Brake) 레버도 ‘ARM’위치에 놓았다. 착륙하면 날개 위에 스피드 브레이크가 펼쳐져 공기저항을 증가시키고 바퀴의 접지력을 높여 감속을 도울 것이다.



스티브와 알렉스는 활주로 최종 착륙 방향으로 비행기를 유도했다. 스티브가 불러주는 방위를 방위창에 입력하자 비행기는 천천히 활주로를 향해 선회하기 시작했다.


“릴리, MCP 맨 우측 아래에 ‘APP’라는 스위치가 있어요. 그걸 누르세요.”


“네, 눌렀어요. 어, 계기판에 글자들이 바뀌어요.”


“맞아요. 이제 계기착륙 시스템(ILS)의 시그널을 따라 활주로까지 비행할 거예요. 자세계 아래와 옆에 시그널을 보여주는 표식이 나타났을 거예요.”


“네, 다이아몬드 모양의 포인터가 나타났어요. 이것이 그 시그널인가요?”


“맞아요. 아래의 포인터가 좌우 횡축, 오른쪽 포인터가 상하 종축을 나타내요. 둘 다 가운데 있으면 제대로 비행하는 거예요. 이제 플랩(Flap)을 30에 맞추고, 속도를 145에 맞추세요.”


ILS 계기 디스플레이


릴리는 스티브의 안내대로 조작했다. 이제 최종 착륙 속도로 감속 한 것이다. 이제 착륙할 준비가 다 되었다. 스티브가 마지막 안내를 한다.


“이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주파수를 관제탑 118.1로 변경하세요. 릴리, 행운을 빌어요.”


공항 관제탑(뮌헨 공항)


릴리가 주파수를 변경하자, 다른 사람이 응답했다. 공항 관제탑에서 기다리던 또 다른 베테랑 기장 마크가 인사를 했다.


“용감한 릴리, 안녕하세요. 저는 마크입니다. 앞에 활주로가 보이나요?”


“네, 마크. 잘 보여요.”


“그 활주로에 착륙할 겁니다. 비상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어요. 혹시 정면 자세계 가운데에 ‘LAND 3’라는 글자가 표시되어 있나요?”


“네. 있어요. 이게 뭐죠?”

LAND 3 디스플레이

“좋아요. 안전하게 자동 착륙을 할 수 있다는 표시입니다. 혹시 이 표시가 다른 글자로 바뀌거나 사라지면 꼭 말해주세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추락하는 건가요?”


"아니에요, 릴리. 추력 장치 위에 네모난 스위치가 두 개 있어요. 이것을 누르면 비행기가 자동으로 고 어라운드(Go Around)를 해요. ‘LAND3’와 ‘LAND2’는 괜찮아요. 이 표시가 다른 글자로 바뀌면 그 스위치를 눌러야 해요.”



릴리는 긴장되었지만 기도할 여유도 없었다. 시선은 오직 ‘LAND3’ 글자에 고정되어 있었고,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추력 장치의 ‘고 어라운드(Go Around)’ 버튼에 대고 있었다.


“릴리, 걱정 말아요. 모두 안전하게 착륙할 거예요.”



비행기가 활주로 위로 올라서자 비행기는 서서히 기수를 들기 시작하고, 추력 레버가 저절로 당겨졌다. 적당한 충격으로 땅에 닿는 느낌이 났으며, 다시 기수가 천천히 내려오면서 앞바퀴가 미끄러져 닿았다. 브레이크가 먹기 시작했는지,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감속하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멈출 때까지도 릴리는 정신이 혼미해 있었다. 이때 마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릴리! 릴리! 내 말 들려요? 대답해 주세요!”


“네, 네. 이제 어쩌죠?”


“조종간 아래 러더가 발에 닿나요?”


“네, 네. 페달 두 개요?”


“네. 그 두 페달의 윗부분에 각 발을 대고 동일한 힘으로 꾹 누르세요. 그것이 브레이크예요. 그리고 추력 레버 왼쪽 아래에 파킹 브레이크(Parking Brake) 레버가 있어요. 그것을 위로 올리세요.”



릴리는 다리를 길게 뻗어 페달을 눌렀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는 느낌이 왔다. 오른손으로 추력레버를 더듬더듬하며 파킹브레이크를 찾았다. 자동차 사이드 브레이크를 상상했지만, 케빈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해준 레버는 정말 손가락 만한 똑딱이 스위치 같았다. 그런데 이 레버를 당겨도 걸리지 않고 자꾸 다시 내려갔다. 케빈의 조언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힘을 풀었다 조였다 하며 계속 레버를 당겨보니 어느 순간 레버가 걸리면서 계기판에 ‘Parking Brake Set’이라는 글자가 떴다.


“이제 걸린 것 같아요.”


“좋아요. 이제 추력 레버 아래에 두 개의 연료 컨트롤 스위치를 찾아 아래로 내리세요. 이것도 살짝 위로 들어 내려야 해요. ”


릴리가 두 개의 스위치를 아래로 내리자, 엔진 시동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갑자기 전등과 계기판이 꺼졌어요. 제가 뭔가 잘못한 건가요?”


“아니오, 엔진 시동을 끈 거예요. 이제 모두 안전해요. 계단 차와 구조대가 곧 도착할 겁니다. 릴리, 잘했어요. 당신이 영웅입니다!”


릴리는 케빈과 두 팔을 뻗어 하이파이브를 한 후 부둥켜 안았다. 잠시 후 씩씩한 목소리로 기내 방송을 했다.


“여러분, 기장 릴리입니다. 이제 인천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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