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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Jan 13. 2022

조종실 창문을 열 수 있나요?

[질문 있어요! #2] 잡다한 비행이야기 일문다답






“저기요, 안내양 아가씨, 답답한데 창문 좀 열어줄 수 없어요?”



베테랑 승무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전설의 에피소드이다. 장거리 비행을 하다 보면, 기내가 아무리 환기 시설이 잘 되어 있어도 답답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시원하게 창문을 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공항에 주기되어 있는 비행기들 중에 조종실 창문이 열려 있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아니, 조종실은 창문을 열 수 있나? 조종사들만의 특권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잉 B737, B767, B777, 에어버스 A320, A330, A380 등은 창문을   있고, 보잉 B747, B787, 에어버스 A350 등은 창문을   없다. 그렇다면  다를까? 그리고 비행 중에는 기내 여압 때문에 창문을 열면   텐데,  어떤 비행기는 조종실 창문을   있게 만들었을까?


비행기 조종실 창문을 열 수 있게 한 가장 큰 이유는 조종실 ‘탈출’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종실에 조종사가 갇히는 상황에 대비한 것이다. 그래서 창문 위에는 탈출용 로프가 있고, 비상시에 창문을 열고 로프를 내려 조종사가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다.


어 창문이 열리네

조종실 창문을 여는 방식은 대체로 비슷한데, 개폐 핸들을 사용하여 사람이 수동으로 여닫는다. 에어버스의 경우, 핸들을 돌리면 창문이 조종실 안쪽으로 밀려들어오게 되고, 슬라이드 방식으로 창문을 뒤로 밀어 연다. 비행 중에는 산소가 충분하도록 기내 기압을 외부보다 높게 유지하는데, 기압차가 있으면 사람의 힘으로는 창문을 열 수 없다. 따라서 기압차가 없는 지상에서는 항상 창문을 열수 있고, 비행 중에는 객실 기압이 외기압과 동일한 경우에만 열수 있다.


창문을 통한 조종실 탈출 보기

 

이와 같이 조종실 창문은 일종의 안전을 위한 장치인데, 왜 어떤 비행기들은 창문을 열 수 없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는 따로 탈출구가 있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 수 없는 비행기들은 공통적으로 모두 조종실 천정에 탈출구가 있다. 한 번에 사람 한 명이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인데, 이 탈출구의 해치 옆에도 역시 탈출용 로프와 하네스가 장착되어 있다. 비상시 핸들을 돌려 해치를 연 후, 로프를 내려 지상으로 대피할 수 있다.


Hatch를 통한 조종실 탈출 보기


탈출구가 비행기 천정에 있으면, 외부로 나갈 때 발 디딜 곳도 적고 높이도 높아 탈출이 더 힘들 수 있다. 창문을 여는 방식이 탈출에 더 용이할 수 있으나, 반면에 창문은 비행기 진행 방향 정면에 위치하기 때문에 심각한 사고가 나면 창문이 막히거나 충격으로 개폐 장치가 고장 날 수 있다.


비행기의 창문은 탈출 외에도 제법 유용하게 사용된다. 유리창 정면이 더러워졌을 때 창문을 열어 살짝 닦아낼 수도 있고, 한여름 지상에서 에어컨 성능이 좋지 않아 답답할 때 잠시 열어 환기를 시킬 수도 있다. 가끔 TV나 사진에서 국빈이 탄 비행기가 도착했을 때 창문을 열고 국기를 게양한 채 지상 활주(Taxi)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중국 항공사에서 일할 때 지상 활주 중에 창문을 한 번 열어본 적이 있다. 조종실 청소 상태가 나빠서 장거리 비행 중 내내 냄새에 시달렸는데, 착륙하자마자 게이트로 이동하는 동안 창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엔진 굉음이 냄새보다 더 괴로워서 곧 창문을 닫아 버렸다. 엔진 시동이 걸려있을 때에는 소중한 고막을 위해 창문을 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간혹 주기 중에 비행기 출입구가 모두 닫힌 상태에서 급히 문을 다시 열어야 하는 상황이 있다. 정비사가 물건을 두고 내렸거나, 필요한 서류가 탑재되지 않았는데 깜빡 잊고 출입구를 닫아버린 경우 등이다. 계단 차나 브리지가 연결되어 있으면 다시 출입구를 열면 되지만, 출발을 위해 계단차와 브리지가 모두 떨어져 나가면 난감 해진다. 이럴 때도 창문이 요긴하게 쓰인다. 나도 창문을 열고 로프에 서류나 물건을 묶어 주고받은 경우가 몇 번 있다.


그러나 주기 중에 창문을 열고나면, 이륙 전엔 창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여러 번 확인하는 강박증이 생긴다. 창문이 제대로 안 닫혀서 이륙 중 이륙 중단을 했다는 전설 같은 사건 이야기들이 전해오기 때문이다. 이륙 중에 조종실 안에서 평소와 다른 소음이 나면 창문부터 살펴본다. 잠금장치가 제대로 잠겨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잠금장치가 제대로 잠겨져 있어도 창문을 자주 여닫다 보면, 창문 틈에 실링이 닳아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날 수 있다. 하지만 상승하면서 풍선 부풀듯 기내 기압이 바깥보다 점점 높아지게 되면, 창문이 문틀에 꽉 압착되면서 소음도 곧 사라진다.


만약 비행 중에는 창문을 열면 조종실 안은 외풍과 소음으로 정신이 없을 것이다. 시속 500 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에서 창문을 열었다고 상상해 보라. 하지만 정말로 심각한 경우에는 창문을 열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창문이 심하게 손상되거나,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진 경우이다.


조종실 아래에는 전자장비실이 있는데, 이곳에 전기 합선 등으로 화재가 나면 조종실에 연기가 밀려들어올 수 있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한다고 해도 조종실이 연기로 가득 차면 매우 위험하다. 이처럼 조종실에 화재가 심각할 경우, 우선 사람이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저고도(보통 해발 3,000미터 이하가 안전 고도이다.)로 급강하한다. 그리고 기압을 조절하는 밸브를 열어 타이어 바람을 빼듯이 기내 압력을 풀어주는데, 이때 내부의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연기가 함께 빨려 나가게 된다.


공기가 다 빠져 나가 기내와 외부의 기압차가 없어지면, 창문을 사람 힘으로도 열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공중에서 창문을 열면 앞서 말한 대로 조종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기를 제거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기가 계속 조종실로 밀려 들어온다면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착륙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이 경우라면 착륙 직전 속도를 최소한으로 줄인 상태에서 창문을 여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행기 조종실 창문은, 안타깝게도, 맑은 날 활짝 열고 팔 기대어 펀 드라이빙(Fun Driving) 하기 위한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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