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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Feb 01. 2022

비행 중 조종사도 화장실에 가나요?

[질문 있어요! #3]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잡다한 비행이야기 일문다답 [질문 있어요! #1]

"당연히 가지! 아니면, 페트병 들고 조종실에 들어가냐?!"


…라고 말하면 안 되겠지.


"물론 갑니다. 비행기에는 성능 좋은 오토파일럿(Autopilot)이 있고, 부조종사도 있으니,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잠시 할 일을 부조종사에게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습니다. 아, 보안 문제도 생각해야지요. 테러나 피랍에 속수무책인 채로 조종실을 드나들 수 없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그럼, 몇 가지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볼까요?(미소)"


그럭저럭 대답이 괜찮은 것 같다. 나는 프로니까. 그럼 이야기 시작. 큐.




조종실 문 왼쪽에 화장실 문이 있다.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대부분의 비행기에는 조종실 출입구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고, 조종사들은 동선이 가장 짧은 이 화장실을 이용한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안전과 보안을 위해서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비행을 하다 보면 가끔 승객이 조종실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데, 이들의 99.9%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조종실 문을 화장실 문으로 착각한 승객들이다. 혹시 독자 중에도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전혀 창피해할 필요가 없다. 나도 많이 봤다. 비행 중에 조종실 입구 카메라를 켜 두고 있으면, 조종실 문을 만지거나 두드리는 승객을 꽤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화면을 계속 보고 있으면 곧 승무원이 나타나 바로 옆 화장실 문을 열어 준다. 두 문이 나란히 있으니 누구든 헷갈릴 수 있다. 아주 드물게는, 비행기 탑승구(비상구)를 화장실로 착각하여 그 큰 핸들을 힘으로 돌리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보고되는 내용이다. 그것에 비하면 조종실 문 노크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굿매너이다. 그리고 참고로, 비행 중에는 기내 여압 때문에 천하장사가 핸들을 돌려도 출입문은 절대 열리지 않으니 안심해도 좋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조종사가 '생리현상의 해결을 위해 최소한의 시간 동안 조종실을 이탈할  있다'라고 규정한다. , 조종사의 용변권은 법적으로 보호받는 것이다. ,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기준이 모호해서, 연령별 평균 생리현상 시간과 주기, 그리고 보편적인 조종사의 직업 윤리관을 참고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농담이다. 가고싶으면 가는거다.). 우선, 우리나라 항공사에서 조종사가 화장실에 가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미안하지만,  글에는 조금 지저분한 내용이 포함될  있음을 미리 알린다(더럽게  이딴  상상하라고? 하시는 분은 여기서 되돌아가기 클릭).




비행기가 이륙하여 순항고도에 다다르자, 긴장이 풀렸는지 커피를 너무 마셨는지, 화장실에 가고 싶은 신호가 왔다. 조종실 앞 카메라를 켜보니, 승무원들이 식사 서비스 준비에 한창이다. 나는 사무장에게 인터폰을 걸었다.


“사무장님, 저 좀 나가겠습니다.”


“네, 잠시만요.”


무척 바쁜 시간인지, 몇 분이 지나서야 다시 연락이 왔다. 나는 카메라 화면으로 사무장의 얼굴을 확인하였고, 조종실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어서 정확한 번호를 입력했다는 신호음이 들리자, 스위치를 돌려 조종실 문 잠금장치를 풀어주었다. 사무장이 문을 열고 조종실에 들어와 뒷자리에 앉았다. 조금 민망하고 어색한 분위기에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사무장님이 직접 들어오셨네요?”


“네. 다들 너무 바빠서 도움이 안 되는 제가 들왔어요.”


비행 중에는 조종실에 최소 두 명의 승무원이 있어야 한다는 ‘Two-Crew Cockpit Rule’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조종사 한 명이 조종실을 나갈 경우 승무원 한 명이 대신 조종실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이 승무원의 역할은 혹시라도 나머지 한 명의 조종사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반역자(Renegade Pilot)가 되어 항공기를 조종불능 상태로 빠뜨리지 않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Photo by Andy Wang on Unsplash


문을 열기 전, 광폭 렌즈에 눈을 대고 한 번 더 바깥을 확인했다. 보통 집 현관문에 있는 바로 그 렌즈이다. 밖에 나와 보니 갤리와 객실 사이 통로에  커튼이 쳐 있었고, 한 명의 승무원이 할 일을 하면서 주변도 함께 감시하고 있었다. 한 승객이 화장실에 가려고 커튼을 열고 들어오자 그 승무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승객을 제지하였다. 물론 승객이 놀라지 않도록 친절한 목소리로 다른 화장실을 안내해 주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조종실에 들어가려 할 때, 그 승무원이 나를 불렀다.


“기장님, 커피나 음료수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요. 더 마시면 화장실만 자주 갈 것 같아요. 고마워요.”


나는 조종실 문 키패드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두 번 노크를 한 후, 문 위쪽에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잠시 기다렸다. 곧이어 키 패드에 초록색 불이 켜지고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나자 문을 힘껏 밀었다. 헐...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새 비행기라 문이 뻑뻑한가? 당황하여 더 세게 밀어보려는데, 갑자기 문이 앞으로 열리면서 코가 문에 부딪혔다. 안에서 사무장이 열어준 것이다.


"기장님 괜찮으세요? 부딪힌 것 같은데..."


"아, 괜찮아요. 에어버스를 오래 타다 보니 깜빡하고... 하하..."


객실에서 조종실로 들어갈 때, 에어버스(Airbus: 유럽의 비행기 제조사)는 문을 밀어서 열고, 반대로 보잉(Boeing: 미국의 비행기 제조사)은 당겨서 연다. 이 두 회사는 자존심 싸움을 하는 건지, 이런 것조차도 특허를 내는 건지, 작동이 거꾸로인 것들이 참 많다. 나는 손바닥으로 코피가 나는지 만져보면서 조용히 조종실로 들어갔다. 노룩 패스(No-look pass) 표정으로 말없이 반대쪽 손바닥을 들어 보이자, 사무장이 웃으면서 '터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조종석에 앉아 좌석벨트를 매는 동안 부기장이 부재중 비행 상황을 브리핑해 주었다.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여러 계기들과 컴퓨터를 살펴보았다. 모든 것이 정상이고, 손바닥에 코피도 묻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부기장에게 넘겨주었던 조종 권한을 다시 가져온다는 의미로 크게 말했다.

 

“아이 해브 에어플레인( I have Airplane).”


“유 해브 에어플레인, 썰(You have Airplane, Sir)!”


이때, 부기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장님, 그런데… 저도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요…”


"야! 사무장 있을 때 다녀오지, 나가자마자 또 불러? 참아!!" …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친절한 신기장은 꾸욱 참고 말했다.


“응, 다녀와요. 다시 인터폰 걸어요(미소).”




나라마다 조종실 출입 절차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모두 같지는 않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절차가 좀 더 엄격하고 거창한데, 내가 근무했던 'H' 항공사를 예로 이야기해 보겠다. 그곳에서는 조종사가 화장실에 갈 때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어느 날 비행 중, 중국인 부기장이 내 팔뚝을 한 번 툭 치더니 따봉 모양으로 손을 만들어 조종실 문을 가리켰다. 이어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두 단어로 아주 간결하게 말했다.


“캡틴, 토일렛.('Captain, toilet.' 기장님, 화장실.)”


“오케이. 아이 해브 컨트롤 앤 커뮤니케이션('Okay, I have control and communication' 두 명이 분담하던 조종과 통신 임무를 혼자 다 맡는다는 뜻. 그러니까 일 놓고 다녀오라는 말이다.)”


부기장이 객실 승무원에게 인터폰을 걸자, 잠시 후 "쿵쿵" 노크 소리(조종실 문은 워낙 두껍고 단단해서 똑똑 두들겨서는 전혀 소리가 안 들린다.)와 비밀번호를 누르는 전자음이 "삑삑삑"하고 들렸다. 카메라를 켜보니 한 승무원이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얼짱각도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잠금장치를 풀어주었고, 그 승무원은 온갖 과자, 해바라기씨, 마라향 육포 등 먹을 것을 갖고 들어왔다. 부기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에게 물었다.


“캡틴, 유고 투? ('Captain, you go too?' 기장님도 화장실 가?)”


“애프터 유. ('After you.' 응 너 먼저.)”


부기장이 나가자, 그 승무원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궈 지장, 니슈오종원마?('韩国机长, 你说中文吗?' 한국인 기장님, 중국 말할 줄 알아요?)”


나는 가져온 음식 중에 매운 닭 모가지를 하나 입에 넣으며 대답했다.  


“부넝, 워 팅부동 칸부동!('不能! 我听不懂看不懂.' 아니, 나 듣지고 읽지도 못해요!)”


승무원이 냅킨을 건네면서 말했다.


"니슈얼라!(你说了! 너 말하네!), 쯔이거 하오츠바 지장!('这个 好吃吧 机长' 기장님 이거 맛있죠?)"


한창 원어민 교습을 받다 보니 어느새 부기장이 들어왔다.


“캡틴, 유고! 아이 해브 컨트롤 앤 커뮤니케이션(이쯤 되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조종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보니, 주방 너머 객실 입구는 커튼이 가려져 있었고, 조종실 입구에는 기내식을 싣는 카트로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었다. 조종실을 빠져나와 겨우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 남겨둔 채, 침입자가 조종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주변을 막아 둔 것이다. 또한, 보안승무원이 바리케이드 건너편에 서서 주변을 감시하고 있었다. 중국 여객기에는 미국의 에어 마셜(Air Marshall: 항공보안관)처럼 ‘안전원’이라 불리는 보안승무원이 탑승하는데, 미국의 항공보안관은 사복을 입고 있지만, 중국의 보안승무원은 대부분 유니폼을 입는다. 오늘 탑승한 보안 승무원은 인민해방군 부사관 출신으로 쿵후보다 태권도를 더 좋아하는 매우 잘생기고 각 잡힌 친구였다. 내가 조종실에서 나온다는 보고를 받고, 직접 주변을 감시하러 온 것이다.

 

승무원들이 식사 서비스할 때 사용하는 이 카트


내가 겸연쩍은 얼굴로 “하이.” 인사를 하니 승무원들과 보안 승무원이 웃으며 “니하오, 지장!”하고 인사를 한다. 화장실 한 번 가는데 마치 일급 경호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절차가 거창하고 번거롭다 보니, 객실이 한창 바쁜 시간에는 화장실에 가기도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단지 승무원들이 고마울 뿐, 눈치를 봐야 할 정도는 아니다. 비행기의 안전과 보안이(조종사의 용변권을 포함하여) 무엇보다 우선이니까.


화장실을 나와 다시 조종실에 들어오니 자리를 지키던 승무원이 장난으로 투정을 부린다.


“지장, 토일렛 쏘 퀵. 아이 원트 모어 레스트!('Captain, toilet so quick. I want more rest!' 기장님 용변 너무 빨라요. 저는 좀 더 여기서 쉬고 싶어요!)”


중국 본토의 스트리트 칭글리시(Chinese-English)는 중국어를 닮아 매우 직설적이다. 처음에는 조금 상처를 받기도 한다. 동사를 쓸 때는 원형만 주로 사용해서 시제를 잘 구분하지 않는다. 중국에서 몇 년 일하면서 내 영어도 아주 많이 망가졌다.  




글이 길어졌지만, 이왕 말 나온 김에, 부기장 시절 화물기를 타던 경험도 이야기해 보자.


인천 출발 앵커리지행 화물기. 기장과 단 둘이 심야 비행을 하던 중, 내가 정적을 깨고 기장에게 말을 걸었다.


“기장님, 배 안 고프세요?”


“난 괜찮은데. 뭐 좀 가져다 먹어.”


“그럼 좀 다녀오겠습니다. 유 해브 에이티씨('You have ATC.' 항공관제 무선 교신 임무를 상대에게 넘긴다는 뜻. 한국에서는 이 용어를 많이 쓴다. 앞서 나온 'You have Communication' 혹은, 가장 흔히 쓰는 'You have Radio'는 여러 가지 종류의 교신을 모두 아울러 일반적인 통신을 의미하는 것이고, 한국에서 주로 쓰는 'You have ATC'는 같은 맥락이지만 항공관제 교신에 강조점을 둔 것이다).”


밖으로 나온 김에 손도 씻을 겸 화장실에 먼저 갔다. 화물기를 오래 타다 보니, 비행기에서 화장실 문을 열어 둔 채 용무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비행기 안에 단 두 명 밖에 없는데 한 사람은 조종실에 있어야 하니 문을 잠글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길 것이다. 앞서 설명했던 ‘Two-Crew Cockpit Rule’은 과연 화물기에서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조종실에는 항상 최소 두 명의 승무원이 있어야 하는데, 화물기라고 조종실에 한 명만 남겨두어도 되는 것인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와 음식을 데우려 오븐을 열고 있는데 갑자기 기장이 날 불렀다.


“지수야! 이리 좀 와봐.”


나는 얼른 조종실로 돌아와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여기 연료 펌프에 경고등이 켜졌다. 일단 체크리스트부터 해야 되겠다.”


나는 자리에 앉아 체크리스트를 펼쳤고, 쓰인 절차대로 조치를 했다. 다행히 큰 결함이 아니어서 계속 비행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기장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잘했다. 이제 얼른 밥 가져다 먹어.”


이 정도면 눈치를 챈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화물 전용기에는 대체로 조종실 출입문이 없다. 조종실 문이 있는 화물기도 물론 많이 있지만, 보통 한 사람이 조종실을 나오면 그냥 열어둔다. 안에서 큰 소리로 부르면 웬만해서는 밖에서도 다 들리고, 밖에서 얼굴을 쭉 내밀면 조종실 안이 훤히 보인다. 보안 점검은 비행기 출입문이 닫히기 전에 엄격하게 완료되고, 이후 비행기 안에는 신원이 보증된 승무원밖에 없으니 보안을 위해 조종실 문을 잠글 이유도 딱히 없다. 따라서 화물기는 복잡한 여객기의 보안 절차를 적용하지 않으며, 조종실을 드나드는 것이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화물기에도 반드시 조종실 문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는 테러 때문이 아니라, 위험한 화물에 노출된 경우(예를 들어, 유독성 물질이 새거나 대형 야생동물이 우리(Cage)를 부수었을 경우 등), 위험물로부터 조종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화물기의 조종실과 객실 사이에 문이 없다고 조종사가 마냥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지금의 대형 비행기는 최소한 두 명의 조종사가 운항을 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앞서 말한 규정처럼, 조종사가 생리현상 해소를 위해 조종실을 이탈하는 시간은 최소한이어야 한다.




엉뚱한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열심히 대답하다 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의사도 수술 중에 화장실에 갈까? 공연 중에 가수나 배우는? 간호사는? 버스 기사는?


각자 나름의 화장실 사용 팁이 있겠지만, 방광염으로 고생하는 간호사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나도 비행 중에 가능한 화장실에 안 가려고 물도 덜 마시고 밥도 잘 안 먹는다. 원하는 시간에 편하게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것도 행운인 것 같다. 모두가 화장실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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