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있어요! #4]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정말 비밀 공간이 있는지 구글에 쳐보았다. 있네. 승무원 침실을 말하는 거네. 열이면 열 모두 침실 이야기. 군용기나 에어포스원 같은 별난 비행기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지.
"네. 있습니다. 장거리 비행기에는 승무원들이 잠을 잘 수 있는 침실이 있습니다. 또한, 컴퓨터들이 모여 있는 전자 장비실도 있어요. 모두 보안 구역이라 승객들은 접근할 수 없습니다."
침실 이야기만 하면 구글 검색과 다를 게 없지. 보너스로 전자 장비실까지 이야기해 보자. 큐.
승무원 침실(Crew Rest Compartment)
승무원 침실은 장거리를 운항하는 비행기에만 있다. 조종사용 침실은 앞쪽에, 객실 승무원용 침실은 뒤쪽에 있다. 디자인도 여러 가지인데, 조종실 내부나 객실에 작은 방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있고, 객실 천정이나 지하에 공간을 만들어 토끼굴처럼 기어 들어가게 한 것도 있다. 특히 천정에 있는 침실은 비상 탈출구가 짐 싣는 선반을 통하게 되어 있어 갑자기 선반에서 사람이 튀어나올 수 있으니 놀라지 말 것. 에어버스 A380은 제일 비싼 비행기의 명성에 맞게 럭저리 한 침실로 유명한데, 조종사 침실은 1인실로 두 개가 있고 그 안에는 의자와 침대,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니터까지 장착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무원 침실은 그냥 캡슐 정도의 크기이고, 벙크(Bunk) 침상 몇 개가 겨우 들어 있는 정도이다.
이곳은 보안 구역이므로 입구에는 비밀번호를 이용한 잠금장치가 있고 '승무원 전용' 혹은 'Crew Only' 등의 경고문이 붙어있다. 이착륙하는 동안에는 안전을 위해 사용하지 못한다.
승무원 침실이 있는 이유는 당연히 장거리 비행을 할 때 승무원들이 쉴 수 있도록 한 것이지만, 사실, 법으로 규정한 운항 제한과 연관이 있다. 편안한 휴식 공간이 있는 비행기는 더 오래 비행할 수 있도록 허용되기 때문이다. 승무원 휴식 시설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는데, 객실과 분리된 승무원 침실이 있으면 가장 높은 'Class 1'이다. 객실 내 180도 젖혀지는 의자가 있고, 승객과 분리하도록 커튼을 설치하면 'Class 2'이고, 40도 이상 뒤로 젖혀지고 발받침이 있으면 'Class 3'이다. 등급이 낮아질수록 최대로 오래 비행할 수 있는 시간 제한이 몇 시간씩 짧아진다.
침실 안에는 벙크 침상이 있고 산소마스크, 인터폰 등이 비치되어있으며, 온도 조절장치와 화재 감지기도 있다. 휴식하러 들어갈 때는 담요와 베개, 물병, 귀마개, 안대 등을 챙겨간다. 여러 명이 함께 휴식할 때는 미리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이 기본 매너. 부지런한 승무원들은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물수건, 핫팩 등 이것저것 잔뜩 싸가기도 한다. 아주 예민한 사람 중에는 개인 베개, 파자마, 슬리핑백, 휴대용 가습기, 아로마 방향제 같은 것을 갖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인형이나 죽부인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조종사 침실에는 두 개의 벙크 침상이 옆으로 나란히 혹은 아래위 이층으로 들어있고, 객실 승무원 침실에는 도미토리처럼 더 많은 침상이 빼곡히 들어있다. 공간이 비좁다 보니 휴식할 때 서로 방해가 되기 쉬운데, 빛은 커튼과 안대로, 소리는 귀마개로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지만 냄새는 쉽지 않다. 원만한 회사 생활을 위해 항상 청결을 유지하고, 기압 변화에 민감한 사람은 미리미리 화장실에서 가스 배출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
들어보면 매우 불편할 것 같은데, 의외로 안락하다. 천장이 낮고 공간이 좁으니 요람에 들어있는 느낌이 든다. 기류가 적당히 흔들어주면 안성맞춤. 그러나 너무 잘 자고 나면 조금 미안하다. 목베개 끼고 쪽잠을 자는 승객에 비하면, 단 몇 시간이라도 토끼굴에 기어들어가 허리 펴고 잘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전자 장비실(Avionics Bay)
전자 장비실은 소형 비행기는 조종실 아래에만 있고, 대형 비행기에는 조종실 아래와 기종에 따라 뒤 쪽이나 천장 등에 추가로 더 있기도 하다. 그 안에는 크고 작은 컴퓨터와 전자 장비가 차곡차곡 쌓여있고, 온갖 배선들과 배터리,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s)들이 가득 차 꼭 전파사 같다. 냉각 팬(Fan)이 돌아가 항상 바람이 쌩쌩 불고, 특히 비행 중에 들어가면 엄청 춥고 시끄럽다.
주로 정비사가 들어가 작업을 하는데, 소형기는 동체 아래에 해치(Hatch)가 있어서 지상에서 바로 들어간다. 반면에 대형기는 조종실이나 앞쪽 갤리(주방) 바닥에 있는 해치를 열고 들어간다. 물론 동체 아래에도 외부로 통하는 해치가 있지만, 대형기는 동체가 높아서 작업대가 있어야 드나들 수 있다.
예전에 다니던 항공사에서 한 객실 승무원이 갤리에서 일하다가 전자 장비실 구멍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해치를 열어두고 옆에 안전가드를 쳐놓지 않아 길가다 맨홀에 빠지듯 쑥 빠졌는데,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 딱딱한 금속들이 빼곡해서 멀쩡히 작업하다가도 이마를 찍기 일수인데, 그 승무원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오래 전에 화물기로 뉴욕에 가다가 폭설이 내려 필라델피아로 회항한 적이 있었다. 한꺼번에 회항하는 비행기들로 붐벼서 공항에 작업대나 계단 차가 모자랐다. 연료도 주입하고 외부 점검도 하러 나가야 하는데, 나갈 방법이 없어서 머리를 좀 썼다. 바닥의 해치를 열고 전자 장비실로 들어간 다음, 다시 외부 출입구를 통해 노즈 랜딩기어(Nose landing gear, 앞바퀴)를 타고 내려가려고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외부 출입구의 해치를 열어보고 포기했다. 높이도 높은 데다 한겨울이라 바람이 쌩쌩 부는 게 아찔했다. 결국 작업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밖에도 객실 카펫을 뜯어내면 화물칸 등의 공간으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통로는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비행기 안에 ‘비밀공간’이라니. 맞네. 비밀공간. 승무원이 비행기에서 양말 벋고 드러누워 코 골고 침 흘리며 자는 모습은 꼭 일급 비밀로 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