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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May 22. 2022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비행기가 고장나면? part 1

[질문있어요 #13]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태평양 한 가운데서 비행기가 고장 난 다면?



나: "비행 중에 비행기에 고장이 생기면 체크리스트와 매뉴얼에 따라 트러블슈팅(Trouble Shooting)을 하고목적지까지 계속을 운항을 할지, 도중에 회항을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호기심 많은 질문자(이하 '호질님'): "비상 상황이 되면 태평양 한가운데서 어디로 가요?"


나: "아, 그것은... 항로상에 회항할 수 있는 공항이 있어서... 그쪽으로 착륙을..."


호질님: "태평양 한가운데에 공항이 있어요?"


나: "있죠. 괌도 있고, 미드웨이, 하와이 등등..."


호질님: (구글 지도를 펼쳐보며) "이렇게 먼데요? (손가락을 가리키며) 요기서 고장 나면 괌으로 가요? 하와이로 가요? 너무 멀어 보이는데요?"


나: "..."  



아... 세상에 쉬운 질문은 없다. 아니, 솔직히 가끔 쉬운 질문도 있는데. 쉬운 질문은 또 재미가 없다. 이 질문은 꽤 여러 사람들이 궁금해했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갈지 고민을 좀 했다. 쉽게 설명하지 못하면 엄청 재미없을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태평양 같은 대양을 횡단하다가 갑자기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의 맥락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지금부터 도전! 큐.




보라보라 섬


먼저 비유를 좀 해보겠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고장 나면? 물론, 갓길에 세우고 전화를 하면 된다. 그러므로 따로 컨틴전시 플랜을 세워둘 필요까지 없을 것이다. 조금 다른 가정을 해보자. 만약 운전자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화장실 비상'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을 반드시 세워야 할 것이다.


일단 얼마나 자주 화장실에 가는지 통계를 내고 어느 정도의 간격으로 휴게소가 있어야 안전할지 분석을 한다. 대략 1시간에 한 번 정도는 화장실에 가야 할 것 같으므로, 최소한 80km에 한 번씩 휴게소가 있는 루트를 찾기로 한다. 대략적인 루트를 몇 가지 선택한 다음, 여행하려는 시간대에 도로가 막히는 구간이  있는지도 리서치해야 한다. 상습적으로 막히는 곳이 있다면, 그 구간을 지날 때에는 최소한 40km에 한 번씩 휴게소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통계는 통계, 리서치는 리서치일 뿐. 화장실에 다녀온 지 10분 만에 또 화장실을 급하게 찾아 헤매었던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면, 도대체 어떤 변수가 또 생길지 몰라 도저히 안심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휴게소와 휴게소 사이에 고속도로를 잠시 빠져나와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주요 지점들을 미리 찾아둔다. 급하다고 무턱대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는데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런 낭패도 없을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만족하는 루트를 만들어 보니, 쭉 고속도로로 달리는 것보다 거리도 시간도 더 걸린다. 차이가 너무 크면 시간 낭비에 기름값도 많이 드니 최저 기준을 충족하는 가장 가깝고 빠른 루트를 선택해야 한다. 고민 끝에 완벽한 루트를 짜보았으나, 그래도 왠지 불안하다. 도중에 어떤 일이 생길 줄 알고? 그래서 최후 방어를 위해 휴대용 간이 화장실과 성인용 기저귀를 준비하기로 한다.


좀 지저분한 비유이지만, 태평양을 건널 때에도 이런 개념으로 비행 계획을 세운다고 보면 이해가 좀 쉬울 것이다.

     


 

사이판 섬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도중에 착륙을 해야 하는 상황은 여러 가지다. 질문처럼 비행기에 심각한 고장이 생길 수도 있고, 기내에 급한 환자가 생길 수도 있다. 비행기는 이륙하기 전에 '비행계획'이라는 것을 세워 관제기관에 제출해야 하는데, 계획을 세울 때 안전한 운항을 위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조건들이 정해져 있다. 그중 하나가 비상상황으로 회항할 경우에 대비하여 비행 내내 가까운 거리에 공항이 있도록 루트를 짜야하는 것인데, 항로상 어느 지점에서든 60분 이내의 거리에 교체공항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언뜻 생각해도 태평양을 건널 때 60분마다 공항이 있을 것 같지 않다. 태평양뿐만 아니라, 대서양, 인도양, 시베리아, 북극, 남극, 히말라야 오지 등등 공항이 드문 지역은 이 지구에 여러 군데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지역을 비행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EDTO(Extended Diversion TIme Operation),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회항 시간 연장 운항'이라는 국제적인 운항 표준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60분 내에 착륙할 공항이 없는 지역을 운항할 때 60분 보다 더 긴 시간을 회항(Diversion)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운항방식이다.


EDTO에도 등급이 있는데, 90분, 120분, 180분, 240분, 330분, 370분까지 있다. 예를 들어 EDTO 120분이 허가되었다고 하면, 항로 중 120분 안에 착륙할 수 있는 거리에 교체공항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 보통 EDTO 240분이면 지구상에 직선으로 가지 못하는 루트가 거의 없다. 180분 정도만 허가되어도 서울에서 태평양 한 복판을 건너 LA까지 가는데 큰 무리가 없다. 만약 120분만 허가되어 있으면,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는 항로를 택해야 한다. 일본 열도와 캄차카 반도에 있는 공항들과 120분만에 회항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EDTO 허가를 받지 못했다면 거의 해안선을 따라 비행해야 한다. 일본 열도, 러시아, 캄차카 반도, 알래스카와 캐나다 연안을 따라 날아야 하며, 태평양 한복판을 건너는 것보다 몇 시간씩 더 걸리게 된다.


그렇다면 어떤 비행기에 어떤 등급이 매겨지는 것일까?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더 신뢰성이 높고 더 안전한 비행기에 더 높은 등급을 준다. 앞서 말한 370분을 허가받은 비행기는 가장 최신 기종인 에어버스사의 A350이다. 이처럼 성능이 더 좋고, 최신 장비가 장착되어 있으면 더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장착된 엔진이 더 낮은 고장률을 기록하면 등급을 더 높게 받을 수 있고, 엔진 개수가 더 많은 3발, 혹은 4발 엔진 비행기는 같은 조건에서 2발 엔진 비행기보다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다.


항공기에만 허가를 내어주는 것은 아니다. 항공사의 운영 능력도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에 같은 기종의 비행기라해도 운항 경험, 운항 통제 능력, 조종사 자격과 훈련 등을 고려하여 항공사마다 등급이 다르게 허가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조종사 훈련이다. EDTO를 운항하려면 조종사는 관련된 훈련을 받고 운항 자격을 따야 한다.


훈련받는 내용을 여기서 자세히 설명하면 끝까지 글을 읽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대신 쉽게 비유해서 말하자면, 앞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의 예처럼 운항 도중 발생할 수 있는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여 항공기를 안전하게 화장실에 세울 수 있는 플랜 B, 플랜 C를 관리하는 것이다. 180분 거리 내에 하나씩 있는 교체공항이 고속도로 휴게소라 가정하고, 항로 중 어느 지점에서 어느 휴게소가 더 가까운지, 어느 휴게소가 문을 열었고 어느 휴게소 화장실이 공사로 폐쇄되었는지, 혹은 어느 휴게소 주유소가 더 기름값이 싼 지 등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훈련받는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조금 더 덧붙여 말하자면, EDTO의 항로상 교체 공항은 그냥 아무 공항이나 정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운항하고자 하는 항공기가 내릴 수 있는 충분한 활주로 길이, 항법 시설이 있어야 하고 소방시설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항 시간대에 기상 상황이 착륙에 적합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아무리 크고 좋은 공항이라도 운항 당일날 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착륙하지 못한다면 교체공항으로써 역할을 할 수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EDTO 교체공항이라면, 중간중간 고속도로 램프를 잠시 빠져나가 들를 수 있는 화장실은 항로상 비상 공항들이다. 이런 비상 공항들은 교체공항으로 선정할 수 없는 좀 더 열악한 공항이지만, 정말 긴급한 비상상황에서는 "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외치며 착륙해야 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비행하면서 주변에 있는 이런 공항들을 잘 체크해두어야 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비행 계획을 세워도 뜻하지 않은 긴급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모든 비상 상황이 계획된 범주안에서만 일어 나주면 좋겠지만, 항상 착하게만 살지 않은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고생하는 운전자가 간이 화장실과 기저귀를 챙기듯, 대양을 횡단하는 비행기는 기내에 구명조끼와 구명정, 그리고 조난 신호 송출기 등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착륙할 곳이 없으면 바다 위에 내리는 '딧칭(Ditching)'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딧칭 지점은 가능한 구조되기 쉬운 위치로 정해야 하며, 관제기관에 조난 위치를 알려주고 'ELT(Emergency Locator Transmitter)'라고 하는 조난 신호 송출기를 작동시켜 가능한 빨리 구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신없이 글을  내려가다 보니 원래 질문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비행기가 고장 나면?"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샛길로 다이버트 한것 같아 어떻게 마무리할지 고민을  했다. 그래서 다음 편에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태평양 한가운데서 정말로 비행기가 고장나면 어떻게 될지 소설처럼 이야기를 써보겠다. 가능한 흥미 있게. ㅠㅠ 흥미 있게? 그런데  자꾸 이런   써도 괜찮을까? 이러다 진짜 일어나면 큰일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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