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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May 22. 2022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비행기가 고장나면? part 2

[질문있어요 #14]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지난 에피소드에서 계속


전 편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만약 “태평양을 지나다 비행기가 고장 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해보겠다. 마침 비행기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설마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겠지? 절대로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나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니 안심하고 읽어주기 바란다. 큐.




서울을 출발하여 LA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 일본 본섬을 지나 드디어 태평양 상공에 들어섰다. 이제 일본 관동과 동북 지방의 공항들과 멀어지며 EDTO(Extended Diversion Time Operation:   참조) 운항이 시작되었다. 부기장 피터가 이런저런 데이터를 확인하더니 기장 제프에게 보고를 한다.


“기장님, 오늘 EDTO 항로 교체 공항은 삿포로, 미드웨이, 앵커리지 공항이고, 기상 예보 모두 양호합니다. 연료 이상 없고, 비행기 시스템 정상입니다. EDTO 운항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오케이 EDTO 진입합시다.”


EDTO 항로상 첫 번째 교체 공항은 삿포로 치토세 공항이었고, 두 번째 공항은 미드웨이 공항, 세 번째 공항은 알래스카의 앵커리지 공항이었다. 비행 중 어디서든 3시간 안에 이들 공항 중 한 곳으로 회항할 수 있도록 항로가 구성되어 있다. 각 공항들을 중심으로 3시간 거리 반경으로 원을 그려 그 안에 항로가 이어지도록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항로를 따라가다 보면, ETP(Equal Time Point) 지점이 있는데, 이곳은 두 개의 교체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서로 같아지는 지점이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이 지점을 기준으로 어느 공항으로 갈지 빨리 결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첫 번째 ETP는 삿포로와 미드웨이로 회항할 때 각각 같은 시간이 걸리는 지점이었다. 태평양에 진입한 지 몇 시간이 지나 이 지점을 통과했고, 피터는 제프 기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기장님, 첫 번째 ETP를 통과합니다. 이제 삿포로보다 미드웨이가 더 가깝습니다. 미드웨이로 가는 백업 루트를 FMS에 입력하겠습니다.”


백업 루트는 실제로 가는 항로가 아니라 FMS(비행관리 컴퓨터)에 백업으로 저장만 해두는 항로이다. 만약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간단한 조작으로 쉽게 비행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 마치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경로를 변경하듯이 말이다.



정오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는데 벌써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동쪽으로 비행하고 있으니 해가 넘어가는 속도도 빠르다. 주기적으로 비행기 시스템을 점검하던 부기장 피터가 조금 긴장된 목소리로 제프에게 말을 걸었다.   


"기장님... 우측엔진에 엔진오일량이 좀 비정상적인 것 같습니다. 출발할 때 20 쿼츠(Quarts)였는데, 지금 11 쿼츠밖에 안돼요."  


"엔진이 돌아가고 있으니 오일량도 줄어든 것 아니야?" 제프가 물어보았다.


"아닙니다. 왼쪽 엔진은 14 쿼츠입니다." 피터가 대답했다.


"음.. 엔진 온도와 바이브레이션은 정상이네. 계속 관찰해 보자. 우측엔진이 더 오래된 엔진이라 오일을 더 많이 먹는지도 몰라." 제프는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보자고 제안했다. 만약 오일이 조금씩 새고 있는 것이라면 언젠가 엔진이 과열될 것이고 결국 엔진이 멈출 수도 있다.


비행기는 미드웨이 옆을 지나 계속 동쪽을 향해 날고 있었다. 미드웨이에 이어 다음 교체공항은 앵커리지이며, 앵커리지와 미드웨이 두 공항 사이의 ETP(Equal Time Point)에 도착하는 시간은 약 1시간 30분 후이다. 엔진오일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고, 제프와 피터는 초조하게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우측 엔진의 엔진오일 양은 현저하게 떨어져 있었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엔진을 꺼야 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제트 엔진은 터빈의 힘으로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엔진오일은 회전운동을 하는 터빈의 윤활과 냉각을 돕는다. 만약 엔진오일이 부족해지면 엔진은 과열될 것이고 엔진 내부에 큰 손상이 생겨 결국 엔진이 멈출 것이다.


"피터, ETP까지 얼마나 남았지? ETP전에 엔진 경고가 뜨면 미드웨이로 회항해야 하는데... 웬만하면 앵커리지로 가야 할 텐데." 제프 기장이 말했다.


"20분 남았습니다. 엔진 오일이 줄어드는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 같기도 합니다. 30분째 비슷한 양을 유지하고 있어요. 이대로 LA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피터가 대답했다.  


만약 미드웨이로 회항을 하면 엔진 정비와 승객 서비스 지원이 더 열악할 것이다. 더 큰 공항인 앵커리지로 가는 것이 승객들을 연결 편으로 LA까지 보내고, 엔진을 수리하기 더 용이할 것이다. 하지만 ETP이전에 비상 상황이 되면 어쩔 수 없이 미드웨이로 가야 한다. 비상 상황인데 편리함 때문에 더 먼 공항에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엔진은 ETP를 지날 때까지 30분을 더 버텨주었다. 엔진오일 감소가 한동안 멈춰서 이대로 LA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도 했다. 그러나 다시 엔진오일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제프와 피터의 희망을 져버린 채 비상을 알리는 경고음이 울렸다. 제프가 피터에게 체크리스트를 주문했다.


"엔진 오일 레벨 로우 체크리스트(Engine oil level low checklist)!"


"예. 쓰러스트 레버 아이들(Thrust lever idle)!...."


제프와 피터는 체크리스트에 따라 엔진 시동을 껐다. 엔진에 무리가 가서 화재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엔진을 꺼버리는 것이다. 이제 비행기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한 개의 엔진만으로 날아야 했다.


"드리프트 다운(Drift Down) 고도가 얼마지?" 제프가 물었다. 당시 비행고도는 37,000 피트였다. 엔진 하나를 꺼버리니 추력이 절반으로 줄어 나머지 엔진 하나로 유지할 수 있는 고도는 더 낮아진다. 계속 고도를 유지하면 속도가 줄어들어 실속 하여 추락하게 된다. 따라서 비행기는 엔진 하나로 유지할 수 있는 고도까지 천천히 강하해야 한다. 제프는 강하해야 하는 고도를 피터에게 물어본 것이다.  


"28,000 피트입니다." FMS( 비행관리 컴퓨터)를 확인하고 피터가 대답했다. 이제 천천히 28,000 피트로 강하해야 비행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 제프는 나머지 하나의 엔진을 최대 출력으로 맞추고 비행기의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항로를 벋어 나기 시작했다. 항로 중심에서 그대로 강하를 하면 아래 고도에서 비행하고 있는 다른 비행기와 충돌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방향을 틀어 항로 중심을 벋어 난 후 강하를 해야 안전하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엔진 고장으로 하나의 엔진을 셧다운 하였다. 우측으로 항로를 벋어 나고 있다. 28,000 피트로 강하를 요청한다." 피터가 체크리스를 수행하는 동안 제프가 관제사에게 비상상황을 알리고 강하를 요청했다. 오클랜드 관제소는 비행기의 위치를 확인하고 강하를 허락해 주었다.


"메이데이 상황 접수되었다. 드리프트 다운을 허가한다. 인텐션(Intention)이 결정되면 말해달라. 스탠바이하고 있겠다." 다행히 통신이 잘 유지되어 관할 관제소와 수월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비행기는 항로를 벗어나며 28,000 피트로 서서히 강하하기 시작했다. 항로 중심으로부터 충분히 벋어 나자 다시 원래 비행 방향으로 선회하여 항로와 평행하게 비행하기 시작했다. 이제 비행기는 안정을 찾았고, 하나의 엔진만으로 운항하기에 최적화된 자세와 출력을 유지했다. 제프가 피터에게 말했다.


"앵커리지로 회항해야 할 것 같다. 앵커리지까지 가는 시간과 연료를 계산해 주게."


피터는 FMS(비행관리 컴퓨터)로 앵커리지까지 가는 시간과 연료를 계산한 후 대답했다.


"앵커리지까지 1시간 53분, 연료는 도착 후 35,000 파운드가 남는 것으로 계산됩니다."


"좋아. 앵커리지 현재 기상을 확인해봐."


제프의 지시에 피터는 앵커리지 기상을 데이터 통신으로 받아보았다. 날씨는 착륙하기에 문제가 없는 좋은 날씨였다.


"날씨도 좋고, 연료도 문제가 없다. 피터, 마지막으로 위성 전화로 본사에 확인해 보자."


제프는 위성전화를 걸어 본사와 통화하였다. 비상을 선포하여 본사 통제센터도 이미 상황을 알고 있었다.


"기장님, 비행계획상 앵커리지가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교체공항입니다. 현재 앵커리지 날씨도 좋고, 비상 착륙을 위한 시설도 좋습니다. 착륙 후 계약된 지상 조업사가 도와줄 겁니다. 또한, 시애틀에서 저희 직원이 앵커리지를 향해 곧 출발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앵커리지로 회항하는 것이 가장 신속하고 안전하게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휴식 중이던 릴리프 기장 조셉도 조종실에 들어왔다(이 비행은 책임 기장인 제프, 릴리프 기장인 조셉, 그리고 부기장 피터, 이렇게 3명이 교대로 휴식을 취하며 비행하고 있었다). 제프가 본사와 통화하는 사이에 피터는 조셉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통제센터의 조언과 정보를 받은 제프는 조셉과 피터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조셉, 피터, 어떻게 생각해? 앵커리지로 회항하는데 동의하나?"


조셉이 먼저 대답했다."네, 고장 난 엔진은 잘 시큐어(Secure) 되었고,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될 징후가 없으니, 앵커리지로 회항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일것 같습니다."


피터도 대답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제프는 책임 기장으로서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통제센터, 조셉, 그리고 피터의 의견을 종합하여 저는 목적지 LA행 비행을 중단하고 앵커리지로 회항할 것을 결정합니다. 조셉은 일단 본사 통제실과 통화하며 필요한 정보를 모두 취합해 주시고, 피터는 관제소에 회항 결정을 보고하고 회항 준비를 하세요. 저는 사무장에게 상황을 알리고 승객들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일사 분란하게 분업이 이루어졌다. 우선 피터는 관제소에 회항 결정을 보고하고, 앵커리지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지시받았다. 관제소의 지시에 따라 FMS(비행관리 컴퓨터)에 새로운 비행경로를 입력한 후 항로를 변경하여 앵커리지를 향해 비행하기 시작했다. 얼마후 앵커리지 관제소와 직접 VHF 통신이 연결되어 보다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조셉은 본사 통제 센터와 앵커리지 도착 후 계획을 논의했다. 통제센터의 운항관리사는 앵커리지 지상 조업사의 연락선과 통신 주파수를 알려주었고, 시애틀 지점의 직원이 승객들의 연결 편을 돕기 위해 곧 앵커리지를 향해 출발할 것이라고 했다.


승객들은 앵커리지에 착륙 후 가능한 한 빨리 알래스카 항공을 타고 LA로 갈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며, 시애틀의 우리 직원이 도착할 때까지 승무원과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승객들이 입국수속을 하고 국내선 연결편을 타려면 시애틀에서 출발한 직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엔진 교체를 위해 새 엔진이 화물기 편에 실려 인천을 출발할 것이며, 정비사들이 함께 갈 것이라고 했다. 엔진의 예상 도착 시간은 다음날 오후 즈음일 것이며, 승무원들은 일단 앵커리지에서 호텔로 이동하여 비행기 수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제프는 처음부터 사무장과 의사소통을 하며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 제프는 다시 사무장을 불러 회항 계획을 알려주고 객실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사무장은 객실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간결하게 말해주었다.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급히 LA로 가는 승객 한 명과 중요한 약속과 비즈니스 미팅이 잡혀있다는 승객 한 명이 심하게 컴플레인을 하고 있으며,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승객 몇 명이 공포에 질려 가슴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 승무원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제프는 차분한 목소리로 승객들에게 방송을 했다. 비행기 고장이 발생한 것은 유감이나, 비행기는 안전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앵커리지에서 승객들을 가능한 한 빨리 목적지인 LA로 보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드디어 앵커리지가 가까워졌고, 더 이상 상황이 악화되는 일 없이 안전하게 착륙했다. 매년 두 번씩 모의 비행장치에서 연습했던 것처럼, 제프는 하나의 엔진만으로 앵커리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3명의 조종사는 좋은 팀워크로 비상상황을 통제했고, 확신을 가지고 비행기를 안전하게 착륙시켰다. 객실 승무원들은 긴장했지만, 불안을 호소하는 승객들을 안심시키고 불만을 표시하는 승객들을 강하게 통제했다. 비행기가 고장 나 회항한 것은 항공사에게 책임이 있지만,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때까지 누구도 잘잘못을 따져서는 안 된다.



앵커리지에  접근하여 착륙할 때, 하얀 빙하와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은 마음이 불편한 승객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었다. 어떤 승객은 아마도 언젠가 꼭 여행 오고 싶은 버킷리스트에 앵커리지를 새로 담았을 것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비행기가 고장 나도, 고속도로 휴게실에 잠시 쉬어가듯 가까운 공항에 착륙할 수 있도록 계획되어있으며, 승무원들은 계획대로 대응하도록 훈련받는다. 그럼 이제 안심하고 푹 주무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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