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수 Jun 20. 2022

승무원은 국제선 비행 가서 체류할 때 뭘 해요?

[질문 있어요! #18]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이 질문도 참 많이 받는다. 내가 어떻게 알아? 다 다르겠지. 개인적인 사생활인데 그게 왜 궁금해. 하지만 이해가 간다. 보통 여행이나 출장이라면 그곳에 가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곳에서 할 일이 있는데, 오직 '비행기 승무'만을 위해 맨날 밥먹듯이 외국에 가는 승무원들은 도대체 해외에서 체류하는 동안 뭐하는지 궁금할 수 있다. 호텔에서 비행 업무를 하는 건 아닐 테고. 뭐 따로 워크숍을 하는지, 극기 훈련을 하는지, 아니면 혹시 완전 휴일? 그럼 대박인데.


물론 업무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요일 같은 휴일도 아니다. 돌아오는 다음 비행을 위한 '휴식(Rest)'의 개념으로 보면 되는데, 사실 나도 휴식과 휴일이 뭐가 다른지 구분이 안 간다. 어쨌든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물론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는 안물안궁이겠지만, 이 질문에는 개인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       


"저의 경우, 혼자만의 시간을 즐깁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때로는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됩니다."


그렇다.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며칠씩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은 혼자서 여행이라도 떠나려면 단단히 작정을 해야 한다. 먹고살다 보니 그렇다. 승무원은 내내 해외여행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작정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우선 승무원 체류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큐.




우선, 국제선 비행에 체류기간은 24시간에서 48시간이 보통이다. 더 짧거나 길 때도 있지만 자주 있는 경우는 아니다. 외국에 도착하면 다음 비행 편이 올 때까지 휴식을 취하다가 귀국 편에 승무를 한다. 인바운드(Inbound), 아웃바운드(Outbound) 승무원들이 서로 교체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매일 비행 편이 있으면 24시간, 주 3~4회 운항하면 48시간 정도가 체류기간이 된다.


랜딩 비어를 아시나요?


외국에 도착하면 입국 수속을 밟고 체류 호텔로 이동한다. 보통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침대로 돌격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일부 승무원들은 도착하자마자 펍(Pub)으로 달려가 소위 '랜딩 비어(Landing Beer)'를 즐기기도 한다. 일단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비행 중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피로도 풀리고 잠도 잘 잘 수 있다. 위스키도 아니고 오사케도 아닌 맥주를 마시는 이유는 일단 시원하기 때문이지만, 사실 다른 의미도 있다.


중동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 로컬 맥주가 없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나라 맥주들을 쉽게 살 수 있지만, 그 나라에서 직접 마시는 로컬 맥주와는 맛에 차이가 있다. 신선함 때문일 수도 있고, 함께 먹는 로컬 안주와의 궁합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암스테르담에서는 하이네켄을, 방콕에서는 싱거를, 미국에서는 쿠어즈를 마시게 된다. 맥주의 온도도 다르다. 독일이나 체코의 맥주는 너무 차게 마시면 맛이 없다. 미국의 맥주는 얼기 직전까지 차갑게 냉장해야 맛있다. 태국에서는 맥주에 얼음을 넣어 온더록으로 마신다. 저마다 독특한 스타일의 맥주를 쭉 들이켜면, 비로소 '아, 내가 이 나라에 왔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세상에 피곤한 사람들이 많고 많지만, 승무원들의 피로도 만만치 않다. 보통 사람들도 어쩌다 한 번 장거리 비행을 하면 녹초가 되지 않나. 승무원은 일 년 내내 비행을 하기 때문에 휴식 시간 동안 그때그때 피로를 풀어주지 못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무엇보다 잠 잘 자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밤샘 비행으로 이미 리듬이 깨진 상태에서 시차까지 크면 그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도 항상 랜딩 비어로 숙면을 유도하고, 잠을 잘 잔 후에는 호텔 짐(GYM)에서 땀 흘려 운동을 하여 컨디션을 끌어올린다.   


해외 체류도 라이프 사이클이 있다?


젊은 승무원들은 해외 체류를 꽤나 알차게 보낸다. 나도 젊을 때는 그랬다. 마음에 맞는 동료끼리 관광지를 다니고 저녁에는 파티도 즐긴다. 가는 곳마다 신기하고 먹는 곳마다 맛집이다. 어디에 가면 무엇을 할지 투두(To Do) 리스트가 꽉 차있고, 단톡방에는 정보가 넘쳐난다. 얼마나 신나겠나? 이런 라이프가 신입 승무원들의 로망이 아니겠나. 이 시절에는 아쉬움이 있다면, '여기 하루만 더 있었으면...' '엄마, 가족, 친구랑 왔으면...' 정도가 있겠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좀 달라진다. 가볼 만한 도시는 이미 몇 번씩 다 다녀왔고 볼 것 다 봤다고 생각이 들면 좀 더 원래 자신의 생활에 집중을 하게 된다. 해외와 국내로 완전히 구분되어 있던 나의 생활이 점점 하나로 합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취미 생활을 해외로 넓힌다거나, 현지 친구를 사귄다거나, 집에서 할 일을 외국까지 가져와서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사실 이게 나쁘지 않다. 승무원 생활의 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관심거리는 백만 가지이다. 골프, 등산, 트래킹, 뮤지컬, 미술, 음악, 역사, 음식 등은 특히 해외에서 즐기기 좋은 장르이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진심이라면 이제는 해외에서도 그것을 즐기기 시작한다. 나는 취미로 기타(Guitar)를 연주하는데, 전 세계 도시의 클럽과 공연장으로 연주를 보러 다녔고 악기점과 악기 공방을 찾아다니며 사람들과 사귀었다.


현지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마도 여행 마니아일 것 같다.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관광객들이 보고 느낄 수 없는 진짜 문화와 감성을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집에서 하던 일을 가져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학원 공부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공부나 독서일수도 있다. 노트북 하나 갖고 혼자 호텔방이나 공원, 도서관, 카페에 앉아서 일하면 분위기도 새롭고 집중도 잘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진다. 해외와 국내 생활의 구분이 거의 없어지는 것이다. 내 경우는 한 이십 년 정도 지나니 달라졌다는 걸 느꼈는데, 어느새 집에서 하던 홈트를 호텔방에서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아이패드로 이어서 보며, 한국 음식점을 찾아다니고 한국 시차에 맞추어 잠을 잔다. 하루에 세 번 끼니때마다 부인과 통화하면서 애들은 잘 있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 오늘은 뭐할 건지 잡담을 하고, 부인이 시장 가서 사 오라는 품목을 받아 적는다. 이제 더 이상 내 생활의 루틴과 리듬을 지키지 않으면 일찍 죽을 것 같아 두렵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면 오랜만에 에펠탑은 봐야지.' 하고 야심 차게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나가면, 진짜 에펠탑만 보고 커피 한잔 마시고 돌아온다. 하루에 두 군데는 못 가겠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같은가? 아예 호텔방에 방콕? 그건 아닌  같다. 아직 나도 확실하진 않은데,  나이에 서서히 시작인  같아 감히 말한다.  25년이 넘으니 오히려 조금씩 돌아다니고 싶어졌다. 시들해진 호기심이 다시 발동한 것이 아니다. 전에 내가 자주 갔던 , 감동과 감격을 주었던 , 뜻깊은 추억이 있는 . 가슴 설레면서 "다음에  다시 와야지, 내가 승무원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언제든    있으니까!"라고 생각한 곳들을 오랜만에 다시 찾는다. 이제는 정말 다시 오지 못할  같아서 말이다. 그곳에서 작별 인사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이별의 아쉬움과  만남의 쁨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있다. 마치  수첩에 데칼코마니를 접는 것처럼.


체류는 내무 생활? 점호도 한다고?

 

예전에는 승무원 체류를 군대 '내무생활'에 비교했었다. 물론 라떼는 이야기다. 지금은 다 없어졌다고 믿는다. 부기장이 기장의 식사를 챙기고, 객실 승무원은 사무장의 식사를 챙겼었다. 나는 가보고 싶은 곳도,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너무 많은데, 기장이 "산책 가자" 하면 두세 시간 동안 호텔 주변을 따라다니면서 말동무가 되어야 했고 "술 마시자." 하면 술친구가 되어야 했다. 그 와중에도 기회를 노리다 번개같이 가고 싶은 곳에 다녀오기도 했다. 몰래 나갔다가 야단맞은 적도 있다.


물론 지금은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매너와 규율은 있어야 한다. 체류 안전을 위해서이다. 함께 식사하지 않더라도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 시간에는 얼굴이라도 비추어야 서로 잘 지내고 있는 줄 알 수 있다. 외출할 때는 동료나 상사에게 행선지를 말하는 것이 기본이다. 중국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보다 엄격한 내무 생활을 하는데, 내가 일하던 중국 H항공에서는 단체로 같이 식사하고, 관광도 쇼핑도 함께 하며, 저녁 8시~9시 정도에는 자기 위치를 알리는 메시지를 객실 매니저에게 보내야 한다. 일종의 점호 같은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다 보니 서로 감시하는 것에 익숙하고 인권에 대한 감성이 조금 다르다. 나는 외국인이고 기장으로 근무하다 보니 강압적인 점은 느끼지 못했지만, 외국인 객실 승무원이라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어떤 승무원은 무엇을 하건 같이 비행 나온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어떤 승무원은 비행 나와 체류할 때 간섭받는 것을 업무의 연장으로 느껴 아주 싫어한다. 대부분은 이 둘 사이의 어느 정도일 텐데, 승무원 업무라는 것이 단체로 움직이는 일이고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 보니 이 부분은 어떻게든 서로의 타협이 필요하다. 나는 일단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를 조금 더 우선시한다.




처음 대답에 "혼자의 시간을 즐긴다."라고 말했다. 위로도 되고 휴식이 된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내가 갖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혼자의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기왕이면 즐겨야 한다. 승무원에게 이 시간을 알차게 이용하는 것은 삶의 지혜일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젊을 때는 잠시나마 육아에서 해방될 수도 있고, 가끔은 골치 아픈 일에서 벋어나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가정이 오히려 더 화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따라서 그들에게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무슨 이유를 대더라도 반박이 어렵다. 미국에서 조종사들의 이혼율이 높고 알코올 중독의 비율도 높다고 하는데,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닐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을텐데, 오히려 고집이 세지거나,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이기적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도 남들에게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나는 지금도 혼자의 시간을 잘 즐기고 있지만, 반대로 그런 삶이 조금은 후회스럽기도 하다. 선택한 자유가 아니라 강요된 자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무원의 해외 체류 생활은 행복일 수도, 불행일 수도, 또 나처럼 양 쪽 다일 수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