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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Jun 12. 2022

그 비싼 비행기 기름을 하늘에 버린다고요?

[질문 있어요! #17]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나도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고, 나는 27년 동안 비행하면서 딱 한 번 버려봤다. 정확히 얼마나 버렸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한 30분 동안 버렸으니 엄청 버렸다. 돈다발을 하늘에 마구마구 날려 보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어디 한 번 이야기 도전. 큐.




비행기도 엘리베이터나 덤프트럭처럼 중량 제한이 있는데, 비행기는 조금 복잡해서 이륙 중량, 착륙 중량, 급유 중량(Zero Fuel Weight) 각각 제한이 따로 있다. 비행할 때마다  제한들을 모두 충족하도록 계산을 하므로 최대 적재 중량도 그날그날 다르다. 최대 이륙 중량은 엔진 파워와 관련이 깊고, 최대 착륙 중량은 기체와 랜딩기어의 강도와 관련이 깊다. 최대 급유 중량(Maximum Zero Fuel Weight) 날개가 견디는 하중과 관련이 있는데, 동체만 너무 무거워지면 날개가 위로 꺾이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약한 지렛대에 무거운 돌을 얹은 것처럼 말이다. 알다시피, 날개에 연료탱크가 있으므로 연료가 많이 실릴수록 날개가 무거워져서  스트레스가 완화된다.


대형 장거리 운송 비행기의 경우, 최대 이륙 중량이 최대 착륙 중량보다 훨씬 무겁다. 무겁게 이륙해서 가볍게 착륙하도록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긴 시간 비행하는 동안 무거운 연료를 모두 소비하면 착륙할 때는 가벼운 무게가 되어있을 테니까. 이쯤만 설명하여도 이미 "아하!" 하고 모두 이해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오늘 글은 별로 길지 않으니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기 바란다.


그렇다. 문제는 이륙한 비행기가 목적지까지 못 가고 도중에 착륙해야 하는 경우이다. 비행기 고장, 환자 발생 같은 일이 생겨서 말이다. 계획보다 일찍 착륙을 하면 연료는 아직 많이 남아있을 것이고 과중량으로 착륙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랜딩 하려면 다이어트를 더 해야 하는데, 아직 허리에 지방이 너무 많아 착지하다 관절이 나갈 수도 있는거다.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물건을 버리거나 기체를 뜯어버릴 수는 없고. 방법은 연료를 방출하는 것 밖에 없다. 그래서 비행기에 연료 방출 장치, 전문 용어로 퓨얼 덤핑(Fuel Dumping), 혹은 퓨얼 제츠닝(Fuel Jettisoning) 시스템이란 것이 있다. 연료 탱크에 별도의 배관과 밸브를 연결하고 날개 후면에 외부로 통하는 노즐을 장착해서 연료를 방출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기종에 따라 분당 1톤에서 2톤 정도의 속도로 외부에 연료를 방출할 수 있다.  

photo by aroundtheworld.photography(iStock)


만약 최장거리 비행을 위해 최대 중량으로 이륙한 비행기가 불행하게도 이륙하자마자 다시 돌아와야 한 다면? 보통 최대 착륙 중량은 최대 이륙 중량의 70%~80% 정도이므로, 그만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는 연료를 무지무지 많이 버려야 한다. 순항 중 사용할 연료를 대부분 버려야 한다고 보면 된다. 쌍발기는 40~50 톤 정도를 버려야 하고 3발, 4발 엔진 비행기는 이보다 더 많이 버려야 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분당 1, 2톤의 속도로 40톤의 연료를 방출하려면 비행기에 따라 20분에서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괜찮지만, 만약에 분, 초를 다투는 비상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비행기에 불이 났는데 여유롭게 20분, 40분을 체공하면서 시간을 허비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에 대비하여 비행기 비상 절차 중에는 '과중량 착륙 절차'라는 것이 있다. 미처 연료 방출할 시간이 없거나 연료 방출 시스템이 고장 났을 때 이 절차를 따라야 한다. 절차는 기종마다 대체로 비슷한데, 착륙할 때 속도와 강하율을 줄여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요령이 적혀있다. 또한 착륙 후 랜딩기어가 무너지거나 타이어 펑크, 활주로 이탈, 화재 등이 생길 수 있으니, 승객들은 충격 방지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승무원들은 비상 탈출에 대비해야 한다.


비싼 연료지만 이 정도 심각한 상황이라면 버리지 않을 수 있겠나? 아깝지만 사람의 목숨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하늘에서 기름을 버리면 땅에 있는 사람이 홀딱 뒤집어쓰는 것 아닌가? 바다에 유조선이 좌초해서 어촌이 기름으로 뒤덮이는 것처럼 심각한 환경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미리 알 수만 있다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기름을 바스켓에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대답은 '아닌데요'다. 국제적 표준으로, 연료 방출은 4,000피트, 즉 1,200미터 상공 이상에서만 해야 한다. 방출된 연료가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모두 기화하는 최소한의 고도를 1,200미터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연료는 지상에 떨어지기 전에 모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월급날 내 계좌에 돈이 사라지듯 말이다.




PS. 참고로 B787-9과 A380-800 비행기의 중량은 대략 다음과 같다. 생산하는 버전, 주문 옵션에 따라 숫자는 좀 다를 수 있다.  


B787-9

Max Takeoff Weight: 254 ton

Max Landing Weight: 193 ton

Max Zero Fuel Weight: 181 ton

Fuel Tank Capacity: 126,372 litter


A380-800

Max Takeoff Weight: 560 ton

Max Landing Weight: 386 ton

Max Zero Fuel Weight: 361 ton

Fuel Tank Capacity: 323,546 l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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