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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Aug 07. 2022

기장과 부기장은 서로 무슨 일(역할)을 해요?

[질문 있어요 #23]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질문 23: 기장과 부기장은 각각 무슨 역할을 하나요? 기장석, 부기장석의 계기는 똑같은가요? 비행 중에 기장과 부기장은 무슨 대화를 해요?



머리 아프다. 기장, 부기장, 이거 계급이라 하기도, 직위나 직책이라 하기도 뭐하고, 참 족보가 꼬인다.  그래도 일단 시작해보자. 큐.




기장, 부기장? 조종사, 부조종사?


사실 부기장이라는 호칭은 외국에서는 쓰지 않는다. 한자로 '기장(機長)'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중국에서는 '지장', 일본에서는 '기쬬오'라고 발음한다), ‘부기장'이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부조종사'의 의미로 중국에서는 후지아시(副驾驶), 일본에서는 후꾸소주시(副操縦士) 혹은 그냥 코빠이롯또(コーパイロット)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항공법 문구에도 '기장'은 있지만 '부기장'은 없다. 대신 중국과 일본처럼 '부조종사'를 사용한다. 항공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조종사(Pilot)와 부조종사(Co-pilot)가 오리지널 명칭이라 볼 수 있고, 언젠가부터 캡틴(Captain), 퍼스트 오피서(First Officer)라는 멋진 이름이 통용되기 시작했다(지난 에피소드 "조종사는 왜 정복(유니폼)을 입고 일해요?"를 참고하시라).


큰 비행기에 여러 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경우, 보스 조종사가 파일럿-인-코맨드(Pilot-in-command: PIC)가 된다. 항공법에서 말하는 '기장'이란, 특히, 운송용 항공기에서 PIC를 수행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조종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냥 '조종사'라고 하면 자가용 조종사던 전투기 조종사던 모든 '솔로 파일럿'을 통칭하기 때문에 대형 운송용 항공기의 '조종사'와 섞어 쓰기에는 행정적으로 좀 헷갈린다. 반면에 '부조종사'는 혼자 비행기를 조종할 수 없는, 엄밀히 말해 아직 '조종사'가 아닌 신분이다. 하지만 대형 항공기의 부조종사는 조금 다르게 보아야 한다. 그가 조종사가 아니라기보다는, 그의 커리어상 이전에 이미 군용기나 소형 비행기에서 조종사로서 솔로 비행을 했었지만, 지금은 대형 항공기의 조종사가 되기 위해 다시 경험을 쌓는 과정에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조종사를 ‘부기장’으로 부른다. 말 그대로 ‘부기장’이라 하면 세컨드-인-코맨드(Second-in-command: SIC)를 의미하는데, 사실 SIC는 계급이나 직위라기보다 지휘체계에 따른 임무의 정의로 보아야 한다. 기장도 SIC 임무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부기장'이란 명칭이 부조종사 직책을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말하기엔 좀 애매하지만, 국내 모든 항공사에서는 '부기장'을 정식 직책뿐만 아니라 ‘직위’로도 사용하고 있다. 이 직함의 유래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뇌피셜이지만, 우리나라 50~60년대 초기 항공사가 공군 조종사들을 스카우트할 때, 6.25 참전 용사들을 '부조종사'라는 직함으로 모셔오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혹은 70년대 '버스 차장'처럼 고유의 역할보다는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서열을 정리하는 '우두머리즘'의 정서가 반영된 것도 같다. '장(長)'자가 붙으면 그만큼의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것인데, 직함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 같아 좀 씁쓸하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덩치가 큰 항공기는 두 명의 조종사가 운항하도록 설계되어 왔다. 자동화가 발전하기 이전에는 네 명의 크루(Crew)가 한 팀이 되어 조종실에 들어갔었는데, 이때도 조종간을 잡을 수 있는 조종사는 그중 두 명이었고 나머지 두 명은 항법사와 기관사였다. 두 명의 조종사는 조종사와 조종사 혹은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조합으로 비행을 할 수 있고, 부조종사와 부조종사는 함께 비행할 수 없다. 부조종사는 아직 솔로 조종사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서론을 좀 넓게 시작했는데, 편의상 이제부터는 보잉, 에어버스와 같은 일반적인 운송용 항공기를 기준으로, 명칭도 모두에게 익숙한 항공사의 '기장'과 '부기장'을 사용하여 이야기 해보겠다.


체크리스트를 읽는 조종사


부기장의 가장 큰 책임과 역할은 '수련'이다.


그렇다면 기장과 부기장의 업무는 어떻게 구분되는가?


나눌 필요 없다.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된다. 단, 두 가지가 다르다. 기장에게는 마지막 의사결정을 할 권한과 책임이 있고(그래서 서명할 문서가 많다), 또한, 부기장을 감독하고 그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 두 가지 빼고 나머지는 똑같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기장은 기장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병원의 인턴이나 레지던트처럼 말이다. LCC처럼 짧게는 5년, 메이저 항공사처럼 십수 년 이상 부기장으로써 경험을 쌓은 후, 기장으로 승급하기 위한 훈련과 테스트를 받는 것이다. 이것은 항공사가 미래의 기장을 만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하는 것이다. 기장 두 명을 함께 태우면 서로 감독할 필요도 없이 제일 안전하겠지만 기장을 키워내지 않으면 언젠가 기장의 대가 끊기지 않겠나? 따라서 부기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수련'이고, 부기장의 '수련'을 돕는 것은 기장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 중 하나이다.  


부기장이 사고를 내도 기장이 책임진다고?


두 명의 조종사가 비행을 하도록 되어있지만, 사실 조종은 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두 명이 동시에 핸들을 잡으면 비행기가 어디로 가겠나? 따라서 한 사람이 조종을 하면 나머지 한 사람은 보조 역할을 한다. 항공 용어로 조종을 하는 조종사를 PF(Pilot Flying), 보조하는 조종사를 PM(Pilot Monitoring), 혹은 PNF(Pilot Not Flying)라고 한다. 기장이 PF를 하면 부기장이 PM을 하고, 반대로 부기장이 PF를 하면 기장이 PM을 한다. 부기장에게 PF 역할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기장의 고유 권한이고, 부기장에게 PF 임무를 이양했다 하더라도 안전에 관한 책임은 기장에게 있다. 다시 말해 부기장이 착륙을 하다가 사고를 내도 기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기장이 PF로 조종을 하다가 잘못하여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면 기장은 적극적으로 이를 수정해야 한다. 조종 개입을 하는 것이다. 마음 순한 기장은 차근차근 수정을 해주고, 성격 화끈한 기장은 호통을 치기도 한다. 기장이 조심성이 많으면(전문용어로 '새가슴') 조금만 잘못해도 지체 없이 개입을 하고, 좀 여유 있는 성격이면 부기장이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조금 기다려 준다. 승객 입장에서 보면 안전을 위해 빨리빨리 잘못을 수정하는 것이 옳지만, 부기장의 수련을 위해서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조금은 기다려주는 것이 좋다. 실수를 하면서 배우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학습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기장이 PF 임무를 하고 있다.


그럼, 조종을 안 하는 조종사는 비행 중에 뭘 하는 걸까?
 

PF의 역할은 말 그대로 비행기 '조종'을 하는 것이다. PM의 임무는 보조 역할이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4가지 주요 역할이 있다. 첫째는 무선통신을 하는 것이고, 둘째는 체크리스트를 읽는 것, 셋째는 PF가 비행하는 것을 감시하며 실수나 이상을 발견하면 조언하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역할은 PF가 오더(명령)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의사가 수술 중에 메스나 클리퍼를 달라고 하면 보조가 이를 건네주듯, PF가 요구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PF가 랜딩기어를 내리라고 오더 하면 PM은 PF 대신 랜딩 기어 레버를 내린다.


이러한 역할에는 인적 실수(Human Error)와 인적 요소(Human Factor)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조종실에서 복잡한 절차를 따르면서 복잡한 스위치와 장비들을 다루려면 역할 분장을 잘해야 실수도 줄이고 효율도 높일 수 있다. 두 명에게 분명한 역할 분장이 없으면 이런저런 조작을 하다가 두 명의 손이 서로 크로스 되고 부딪히게 된다. 그러다 실수를 하는 것이다. 혹은 서로 상대가 하는 줄 알고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다. 야구 경기를 보면 수비할 때 가끔 그런 일이 있지 않나.  


서로 확인하고 조언하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면 각자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논의를 해야 한다. 물론 시간적인 제약이 있으므로 조종실에서 100분 토론을 벌일 수는 없다. 모든 결정권은 기장에게 있으므로 기장은 어떻게든 시간 안에 결론을 지어야 하고, 부기장은 기장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 내 경우, 비행 중에 어떤 문제나 이슈가 생기면 제일 먼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가늠한다. 그 시간 중 7할은 생각하고 의논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3할은 결정된 것을 이행하는 데 할애한다. 나에게 10분의 여유가 있으면 7분간 토론하여 결정하고 3분간 이행을 하고, 만약 10초의 여유가 있으면 7초 동안 고민하고 결정하여 3초 동안 이행을 한다. 7초는 토론까지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이렇게 시간이 촉박할 때는, 내가 만약 PF라면 상황과 의도를 설명하고 바로 조치를 취할 것이고, PM이라면 "아이 해브 컨트롤"을 외치고 부기장의 조종권을 이양받아(전문용어로 'PF 뺏어서') 직접 조치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이 촉박한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최소한 몇십 초에서 몇 분 정도는 서로 논의할 시간 여유가 있다.


이처럼 '조종'이라는 태스크적 관점에서 보면 누가 PF, PM을 하느냐에 따라 역할이 나뉘는 것이지 기장과 부기장의 업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대신 관리적인 입장에서 '지휘'와 '감독'의 역할이 기장에게만 있는 것이다.


운전할 때 좌측석이 편할까요? 우측석이 편할까요?

그때그때 기장, 부기장이 번갈아 조종(PF) 맡을  있으니 기장석과 부기장석의 기본 계기들은 쌍둥이처럼 서로 똑같다. 비행계기와 내비게이션 화면이 기장석과 부기장석에 각각 하나씩 있고 비행관리 컴퓨터(FMS) 다루는 입력장치(CDU) 각각 하나씩 따로 있다. 대신 엔진 계기와 시스템 상태를 보여주는 계기는 가운데에 하나만 있다. 직접 비행기를 컨트롤할  쓰는 계기가 아니다 보니 가운데 두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조종간도 기장석과 부기장석에 각각 하나씩 있다. 두 개의 조종간은 서로 연동되어 움직이며, 두 명이 동시에 조종간을 쥐고 흔들면 더 힘센 사람 쪽이 먹히게 된다(에어버스는 좀 특성이 다른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하겠다). 조종간은 두 개가 있지만 추력 레버는 가운데 하나만 있다. 이것도 기장과 부기장이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기장은 왼손으로 조종간을, 오른손으로 추력 레버를 잡아야 하고, 반대로 부기장은 오른손으로 조종간을, 왼손으로 추력 레버를 잡아야 한다. 결국 기장은 왼쪽에 앉아 왼손으로 조종을 하고, 부기장은 오른쪽에 않아 오른손으로 조종을 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처음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승급하면 일본에서 운전하다가 한국에서 운전하는 것처럼 어색한 느낌이 든다. 물론 금방 적응은 된다.          


     

기장과 부기장은 비행 중 주로 어떤 대화를 하나?


이게 왜 궁금할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간단한 답변으로 방어해보겠다.


똑같다.. 일 이야기, 사는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 라떼는 이야기, 때로는 뒷담화. 톤 다운을 위해 정치, 역사, 종교 이야기는 안 하는 것이 매너고. 대화할 여유가 있을 때 짧게 농담도 하고 잡담도 하는데, 너무 진지해지거나 길어지면 업무에 방해가 되므로 좋지 않다.


하루 종일 잡담하면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를 위해 꼭 해야 하는 대화가 있고, 회의처럼 의견 교환 같은 것도 하고, 때로는 말 안 하고 집중해서 일만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캐쥬얼한 대화가 일에도 도움이 된다. 비행이란 게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이다 보니,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캐릭터도 파악할 수 있다. 너무 말 많은 것은 나도 딱 싫지만, 좋은 대화를 적당히 나누면 서로 믿음도 생기고 팀워크도 좋아진다.




두 명의 조종사는 잘 협조해서 안전하게 비행을 해야 한다. 특히 PM 임무를 잘하면 운항이 아주 매끄럽게 진행된다. 보조도 보조 나름의 기술이 있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다. 보조라고 우습게 볼게 아니라 기장도 자주 PM 임무를 하면서 PM 스킬을 길러야 한다. 내가 PF를 할 때, PM 능력이 좋은 부기장을 만나면 정말 편하다. 앞에 하나씩 나타나는 불확실성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궁금하고 가려운 곳을 그때그때 긁어준다. 좋은 캐디를 만나면 골퍼의 성적이 좋아지듯이, 조종도 PM이 잘하면 PF의 기량이 더 좋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초보 부기장과 편조가 되면 살짝 긴장하기도 하고, 선임 부기장과 비행하면 방심하다 발등 찍히기도 한다.


기상이 나쁘거나 비정상 상황이 생기면 보통은 안전을 위해 기장이 직접 조종(PF)을 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부기장에게 PF를 주고 기장이 PM을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 아무래도 PF로써 조종에 집중하다 보면 문제 해결에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줄어들고 머리도 잘 안 돌아간다. 반면에 PM으로써 상황을 바라보면 안보이던 것도 보이고 전체적으로 시야와 사고가 넓어진다. 특히 나처럼 멀티 태스크에 약한 사람은 뭔가 골똘히 관찰하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기장에게 조종을 이양하는 것이 더 낫다. 나중에 착륙은 내가 직접 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에는 부기장이 나보다 조종을 더 잘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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