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필사

[220928] 새우깡에선 늙은 호박 냄새가 난다

by. 손은주

by NumBori


새우깡에선 늙은 호박 냄새가 난다 - 손은주


아, 올해도 할머니가 오셨구나

샛노란 호박꽃 흐드러지면

가슴 한편 묻어 둔 흙담 위에서 웃고 계시는 할머니


어린 시절, 넝쿨째 굴러다니다가

새우깡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해

내川를 건너 구멍가게가 있는 건넛마을 뛰어가곤 했지

할머니의 호박전에 홀딱 반한 내가

그 달콤한 맛 혀끝에서 사라질 때까지,


몽글몽글 피어난 하얀 가슴 스무 살

집 떠나올 때 할머니가 주신 새우깡 봉지마다

노릇한 호박전 한가득이었지


"버스 안에서 출출해지면 먹으래이"

새우깡 빈 봉지를 하나씩 모으셨던 것


할머니는 몇 해 호박전 더 뒤집으시고

풀흰나비처럼 날아가셨네


호박 넝쿨 뻗어가는 저 누런 가을이 오면

습관적으로 새우깡 한 봉지를 사지

새우깡을 뜯으면 늙은 호박 냄새 묻어나고

하얗게 센, 쪽진 머리 할머니 덤으로 들어와 있네


매거진의 이전글[220927]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