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필사

[221109] 11월의 나무

by. 도종환

by NumBori


11월의 나무 / 도종환


십일월도 하순 해 지고 날 점점 어두워질 때

비탈에 선 나무들은 스산하다

그러다 잃을 것 다 잃고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

맨몸으로 허공에 그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건 이 무렵이다

거기다 철 이른 눈이라도 내려

허리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은 숙연하다

이재 거둘 건 겨자씨만큼도 없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는 건 이 때다

알몸으로 맞서는 처철한 날들의 시작이

서늘하고 탁 트인 그림이 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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