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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mBori Aug 02. 2020

[0802]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by. 정일근

[0802]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 정일근
 
솥발산 산자락에 살면서부터 
마당에 놓아둔 나무 책상에 앉아 
() 쓴다, 공책을 펼쳐놓고 
몽당연필로 시를 쓴다 
 동료들이 직장에서 일할 시간 
나는 산골 마당이  직장이고 
시가 유일한 직업이다 
월급도 나오지 않고 
의료보험 혜택도 없지만 
나는  직장이 천직(天職)  즐겁다 
나의 새로운 직장 동료들은 꽃들과 바람과 
구름, 내가 중얼거리는 시를 
풀꽃이 키를 세우고 엿듣고 있다 
점심시간,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바람이 공책을 몰래 넘기고 
구름이  시를 훔쳐 읽고 달아난다 
내일이면 그들은  멋진  보여주며 
나에게 약을 올릴 것이다 
 직장에서 꼴찌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열심히 마당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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