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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Oct 03. 2020

콘도에서 새벽에 야반도주한 사연

왔노라, 먹였노라, 도망가노라

정은경 청장님, 죄송합니다. 이번 추석 때 가족 여행을 왔더니 동서남북 둘러봐도 사람들이 많네요... 여기서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철저히 할게요... 근데 정부도 개인들에게 여행 적극 자제하라고 호소만 할 것이 아니라 숙박 시설 등을 1/2이나 2/3만 받으라고 규제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올해 오랜만에 콘도로 왔는데 데자뷔를 느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래전에 같은 곳을 왔었다. 봉인했던 기억이 다시 해제되었다. 첫째가 12개월 좀 넘었을 때 우리 셋만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두려움이 앞섰지만 야심 차게 준비했다. 일박인데도 기저귀 10개 이상, 가지천 10장, 물티슈 3개, 아기 음식 4일 치, 상비약, 아기띠, 유모차 등, 그리고 일부 물품에 대한 백업...

콘도 잔디에서 아기가 뛰어놀면 잘 자겠지라는 희망이 있었다

당시 딸은 발이 땅에 닿지 않고 커가는 아기였다. 항상 업혀서 생활했고 땅에 발이 닿으면 하늘이 노해서 천둥과 번개가 휘몰아 칠 정도로 크게 울었다.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을 못해줘도 크게 울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부(라고 말하고 내가)는 딸을 데리고 여행을 가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고 다양한 용품을 준비했다.


준비는 철저했다고 생각하고 운전을 30여분 했을까... 뭔가 허전했다. 부부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기 밥은 가져왔는데 반찬을 안 갖고 왔다... 서로 각자 챙긴 줄 알았다. 이미 여행길에 차는 막히기 시작했고 딸은 지루해서 울려는 기세다. 일단 회군은 없다. 무조건 전진.


주말이라 차도 많이 밀려서 도착했을 때는 이미 우리 부부는 일정을 시작도 하기 전에 기진맥진했다. 괜히 왔나... 아내가 다행히 계란찜과 감자를 요리해서 딸 한 끼를 먹었다. 그리고 수영장. 수영장은 30분 만에 나왔다. 딸은 물에 들어가기 싫어서 울었다. 튜브는 힘들게 바람 채웠는데... 쩝. 초보 아빠에게는 바람 빼는 것도 큰 일이다. 그리고 곤돌라 타기. 이건 쉽게 넘어갔다. 저녁은 숙소 내 식당에서 한 끼 해결. 일단 무사히 넘어가는 듯했다. 문제는 밤에 터졌다.

곤돌라는 2020년에도 잘 운행하고 있다

딸은 낯선 곳에서 잠자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저녁 9시부터 눕혀봤으나 계속해서 울었다. 난 슬슬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옆 방에서 조용히 하라고 쫓아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좋아하는 이불을 쥐어주고 잠이 살짝 들어서 눕히면 눈을 감고 울었다. 아내가 1시간 정도 업고 자다가 눕혀도 울었다. 시간은 흘러 새벽 4시. 왜 이성계가 회군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춥고... 딸은 안 자고 우리는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새벽 5시. 나는 결심을 했다. 야반도주하기로. 다음날  오전 11시 체크아웃이지만 새벽에 바로 집에 돌아기로 마음을 정하고 짐을 주섬주섬 싸기 시작했다. 프런트에 내려가서 키를 반납하니 야간 근무하는 직원이 놀란 표정이다. 더 늦게 나가려는 사람은 봤어도 새벽에 나가는 사람은 처음 본 듯했다.


난 최대한 차 페달을 밟았다. 아내와 딸은 차를 타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집까지 평소보다 빨리 도착. 평화가 다시 찾아왔고, 이후 우린 한동안 가족 여행은 없었다.


그때랑 지금을 비교해보면 우리 가족은 장족의 발전을 했다(자녀들이 커진게 제일 큰 이유고).


하늘에서 생활하던 딸이 이제는 다 컸다 글:

https://brunch.co.kr/@jitae20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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