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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퉁불퉁 뚝배기 Sep 24. 2020

초등학생 딸이 (20분 동안) 사라졌다

그래서 다음날 키즈폰을 주문했다

얼마 전 딸이 정말 오랜만에 등교를 했다. 아빠 입장에서는 딸의 하교가 12시가 아니라 미국 공립 초등학교처럼 3시 정도까지 있어주면 좋겠지만 우리가 있었던 미국 동네 학교와는 달리 한국은 무상급식을 제공하니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고맙다 2011년 당시 사퇴한 서울시장 오세훈...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를 발의해줘서.

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다

하교가 12시니 시간을 맞춰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이미 다른 학부모, 아니 학부 엄마들이(99프로 엄마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 학교 소우주에서는 나만 외계인이다. 아 남자 어른 하나가 얼핏 보인 거 같은데 확실치는 않다.


애들이 띄엄띄엄 쏟아져 나왔다. 다들 학교를 오랜만에 가서 그런지 기쁜 표정을 짓고 나왔다. 난 즉시 만화 드래곤볼 스카우터(전투력 측정 기기)인 나의 눈으로 딸을 찾았다. 딸과 비슷한 셔츠를 입은 아이가 지나간다. 모두 마스크를 써서 평소보다 찾기가 어렵다. 혹시나 싶어 좌우와 뒤를 돌아보지만 없다. 시간이 어느덧 12:10. 딸의 친구가 지나가면서 나에게 인사한다. 혹시나 싶어 딸이 어디 갔는지 물어봤지만 허탕.

아빠, 다른 아이들의 전투력을 측정하다. 다 전투력이 높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착한 학교 보안관에게 부탁해서 교실로 전화해본다. 담인 선생님은 아이들이 이미 나갔다고 한다. 영화 테이큰의 리암 닐슨처럼 권총을 꺼내고 납치된 딸을 찾으러 뛰어다녀야 할 시간이 온 건가...

중년 아빠가 이렇게 멋있기는 힘들다

권총, 아니 핸드폰을 꺼내서 집에 가사를 도와주시는 분한테 딸이 집에 먼저 갔는지 물어보지만 아직 안 왔다고 한다.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찰나에 딸의 또 다른 친구의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한다. 난 무작정 물어본다. 딸 못 봤냐고. 이제는 총은 집어넣고 심청이 찾는 심봉사가 되어서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녀야 하나...


옆에 있던 그 엄마의 딸이 말한다. “ㅇㅇ, 친구랑 책방 갔어요” 책방? = 만화방? 옆에 있던 또 다른 엄마는 그걸 듣고 친절하게 학교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본다. 하지만 도서관에 없다고 한다.


그러더니 날 알아본 원래 엄마가 이 동네에 책방이 몇 개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학교 옆, 하나는 치킨집 옆이라고 한다. 책 읽다 배고프면 후라이드 치킨을 먹으라는 의미인가...


일단 가까운 곳으로 가봤다. 딸은 천하태평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딸 친구도 옆에서 독서 중. 딸은 11:50에 나왔는데 내가 안 보여서 친구 따라왔다고 한다. 책방의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에게 물어봤다. “여기 공짜인가요?” 그랬더니 딸이 5,000원을 냈다고 한다. 요새 어린 사촌동생들과 놀면서 1,2천원 챙긴 돈을 사용한 거다. 사장님은 미성년자의 보호자가 나타나서 긴장했는지 아니면 딸이 얼마 안 있어서 그랬는지 5,000원을 돌려준다.


유튜버 워너비인 내 딸은 내가 상정한 범위를 이미 훨씬 넘어서고 있다. 얼마 후면 친구 따라 (지하철 타고) 강남(역) 갈 기세다. 아 BTS 아미가 되면 그럴지도...

전투력 50만이 넘으면 스카우터가 폭발한다

그래서 다음날 키즈폰을 주문했다.


착한 학교보안관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83

유튜버가 되고 싶은 딸 관련 글:

https://brunch.co.kr/@jitae202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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