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에서 근무를 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꼰대'라는 단어를 많이 듣게 됩니다. '제 팀장 너무 꼰대예요'라고 푸념하는 주니어도 있고, '나보고 꼰대래...'라고 힘들어하는 시니어들도 있고, 제게 '너 너무 꼰대야'라고 말하는 선후배들도 있고(?)
20살 때부터 꼰대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기피하던 사람으로서, 꼰대라는 표현이 그 대상을 넓혀 '젊은 꼰대'라는 말이유행하는 요즘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실제 꼰대 건 아니건 간에, 꼰대라는 표현이 잦은 사회는 소통이 잘 안되고 있는 사회라는 뜻일 테니까요.
꼰대의 기원=인류의 기원(?)
1살에서 100살 이상까지 2~4세대가 한데 뒤섞여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간)에게, 세대차이에서 오는 불통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옆의 짤에서처럼, BC 1700년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고 쓰여있다고 하니까요.
그러나 '젊은 꼰대'라는 표현은 세대차이로 해석되기 어렵습니다. 10년 20년 차이도 아니고 3년에서 5년, 짧으면 1년에서 반년 정도 차이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쓰이는데, 세대차이로 해석하기는 무리인 것이죠.
그렇다면, 꼰대라는 개념에서 세대차이를 빼보죠. 뭐가 남을까요?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꼰대=논리적 오류(하지만...)
원천 봉쇄의 오류, 혹은 우물에 독 타기 오류
우선 소통에 있어서 누군가를 '꼰대'라고 지칭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라는 것을 짚고 싶습니다. 위에 꼰대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기피했다고 써 놓았는데요, 누군가를 꼰대로 지칭하는 것은 '네가 뭐라고 말하든 안 듣겠다'는 원천봉쇄의 오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논리적인 토론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던 저는, 대학교에 입학하던 때부터 '꼰대'라는 말은 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던 것이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친구들이 왜 꼰대 꼰대 거렸는지 조금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맥락에 맞지 않는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는 사람들을 겪어보니 '아 이래서 친구들이 꼰대 꼰대 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꼰대'라고 지칭하고 소통하기를 멈추는 것은 메신저 공격이라는 생각, 원천봉쇄의 오류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누군가를 꼰대라고 부르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꼰대 소리 유발자들 겪으며, 그들은 왜 그러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이 옮아갔습니다. 논리만 찾다가 당하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꼰대소리 유발자 曰 '상처 주려는 건 아니었어'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제가 생각하는 꼰대소리 유발자의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아마 일반적으로도 이렇게 통용되는 것 같습니다.
1)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한다
2) 맥락 없이 자기 이야기만 반복한다
한마디로, 남의 말을 안 듣고 제 할 말만 하는 사람이죠.
모든 이야기가 '나'로 귀결되는 꼰대유발자들?
자신만의 기준을 가지는 것은 좋습니다. 아니, 저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멋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순간 일이 복잡해져 버립니다. 내 기준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기준을 존중해 줄 줄 알아야 하는데, 타인의 기준을 듣지도 않고 평가해버리는 순간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죠.
이건 특별한 지혜가 아닙니다. 올바른 사회생활을 위한 상식이죠. 그래서인지 일상생활에서는 젊은 꼰대가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젊은 꼰대는다른 조직보다 회사 조직 내에서 유난히 자주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회사는 뭐가 다르길래 젊은 사람을 꼰대소리 듣게 만드는 것일까요? 저는 일터에서 타인의 기준을 100% 존중하는 것이 사치가 될 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의 기준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듣고 대화를 통해 관점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쓰이는 시간은 모두 비용이죠. 술자리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눌 때야 그런 관점의 차이를 줄이는 것 자체가 즐길거리지만, 회사에서는 그게 다 커뮤니케이션 코스트고,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소통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즉,
1) 회사에서 일처리를 할 때에는 소통 자체가 비용이고
2) 비용절감을 위해 소통이 희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3)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소통조차 일어나지 않고, 그 일이 잦으면
4)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5) 의사결정자는 자기 말만 반복하는 꼰대 소리를 듣기 쉬운 환경이다.
라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 들어 젊은 조직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과거에 비해 젊은 사람들이 의사결정자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들은 일처리에 필요한 코스트를 관리하는데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젊은 꼰대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뭐 '젊은 꼰대'들은 그러고 싶어서 그랬을까요. 주어진 시간은 부족하고 할 일은 많으니 그러는 거겠죠.
생각이 여기까지 닿고 내린 결론은,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잘 이용하자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투입되는 코스트가 효과적으로 쓰였는지, 다시 말해 소통의 결과까지 고민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에 포함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들을 때 잘 듣는 것, 여기서 많은 것들이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듣는다는 것이 반드시 자신의 의견을 포기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의견을 관철하더라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disagree and commit을 권할 것이냐, 이분법적으로 가르치면서 진행할 것이냐 하는 디테일에서 갈릴 수도 있죠.
나이를 먹어서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꼰대가 나이를 먹는 것이다.
가끔 나이가 지긋한 분인데 놀랍게도 말이 잘 통하는 어른들을 만나 감탄할 때가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특별한 스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된 '경청의 기술'이 있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나이는 절대 꼰대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다 꼰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꼰대가 나이를 먹으면서 조직에서의 영향력이 커지니 더 티가 나는 것이죠.
꼰대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정리하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금 명확해진 기분입니다. 듣는 사람 생각하고 말하고, 말하는 사람 생각하고 들어야죠. 저 역시 언젠간 꼰대 소리가 귀에 익을 만큼 많이 들을 때가 오겠지만, 그나마 덜 들으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