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커리어 개발은 정녕 결혼하면 끝이던가?
공공기관에서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일하며 배운 것이 있다. 첫째는 책상에 앉아서 매뉴얼대로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은 내 적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직업이라고 해도 매일 아침 스스로의 쓸모를 되뇌이며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둘째는 나는 조금 더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잘해도 가만히 있고, 못해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 곳에서의 하루는 아주 길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인재보다는 무난하게 중간가는 인력을 원하는 곳에서 나는 좀이 쑤셨다. 나의 역량개발이 조직을 가시적으로 발전시키는 곳에서 일하고 싶엇다.
국제개발을 전공한 학생으로 내가 꿈꿔왓던 커리어는 지역 필드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흔히 "잘나가는" 직장이나 사업으로 큰 돈을 만지지 못해도 내 열정을 채울 수 있는 일이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신부로써, 그리고 여자로써 나는내 커리어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고 있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앞서, 남자친구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거나 결혼이 내 커리어 개발에 걸림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임으로 내가 감당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내가 결혼을 궁극적으로 결심했던 순간이 있다. 당시 나는 국제기구에서 진행하는 해외 파견 인턴을 준비중이었다. 필드에서 긍정적인 대답이 와서 여러가지 서류와 논문들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는데, 남자친구가 약 6개월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에 대해서 굉장히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편하게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눈은 슬퍼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커리어 개발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슬프게 할 만큼 중요한 것인가?"
내가 조금 더 어렸더라면 내가 원했던 커리어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속상히 여겼을 수도 있다. 특별히 유명한 국제기구에서의 해외 인턴 기회는 쉽게 오지 않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나만을 위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인턴기회를 접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 이 사람과 이제 결혼을 할 시간이 왔구나를 직감했다. 이제는 나 혼자만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인생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우리의 진로를 고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진취적이고 공격적인 커리어 개발이 아니라, 함께 더 여유있고 너그럽게 인생을 설계하고 싶었다. 다시 말해 내가 그의 인생에 또 그가 나의 인생에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서로를 '공동 CEO'로 모시고 싶었다.
결혼은 궁극적으로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한 가족을 만들고, 재정을 합치는 것처럼 우리의 진로와 인생설계도 함께 가야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참 복받았다고 생각하는게, 남자친구는 나의 선택을 적극 지지하는 편이다. 내가 무엇을 하든 늘 나의 편이다. 다만 멀리 떠나는 것 빼고 말이다. (ㅋㅋㅋ 기러기 아빠는 죽어도 싫단다. 미안하지만 나도 장거리 부부는 싫다.) 남편의 직장과 진로가 중요하듯이 나의 직장과 진로 또한 아주 중요하다. 현재로써는 내가 원했던 필드에서의 커리어를 쌓기는 현실적으로 조금 어려워보이지만, 결혼을 하고 우리가 정착할 보금자리를 찾으며 나는 또 다른 길을 찾지 않을까?
당시에는 필드에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정답인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나의 인생에 공동 CEO로 초청해서 각종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주고, 서로의 인생에 기여하는 이 결정은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하게 되리라.
“There comes a time in your life when you have to choose to turn the page, write another book or simply close it.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것인지, 다른 책을 쓸 것인지, 혹은 그냥 책을 덮어버릴 것인지를 선택할 순간이 온다."
- 샤논 L. 알더
이 글을 읽는 다른 예신들 또한, 자신의 때를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인생을 함께 보낼 수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행운은 생각처럼 쉽게 오지 않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