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가는 Nov 06. 2018

16. 인사 지옥

결혼 천국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관문-  

결혼식 당일날 드레스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으며 남편이랑 나랑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 있다.

얼른 가서 인사하라는 엄마의 채근에 웃으며 우리는 

"또 인사해?? 죽겠다. ㅋㅋㅋ 이건 인사 지옥이야 오빠 ㅠㅠ " 라고 말하곤 했다. 


결혼 준비하는 커플이 알아야 할 삼대 지옥이 있다. 바로 인사 지옥, 선물 지옥, 음식 지옥이다. 그중 첫 관문인 인사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일단 왜 인사 지옥이 생겼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모두 알다시피 결혼 준비가 막바지에 들어가면, 청첩장을 돌리며 친구들에게 만나 서로의 배우자를 소개해주는 과정을 거친다. 배우자를 소개해주지 못하더라도,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는 얼굴을 보고 밥을 사며 인사를 한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는 참석해주신 분들께 개별 연락을 하며 다시 인사를 한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가족들과 직장동료들에게 잘 다녀왔다며 답례품을 드리고 인사를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중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사람과 사이의 관계를 맺는 것이고, 기쁘고 설레는 일인데 언제부터 신랑 신부는 농담처럼 "지옥"이라고  부를 만큼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일까? 단편적으로 봤을 때는 인사를 하는 대상이 1대 다수 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랑 신부는 고작 두 명인데, 인사를 해야 하는 숫자는 신랑 신부의 친구, 부모님의 친구, 지인들, 일가친척들로 다수이기 때문에 체감하는 노동의 강도가 더 세다고 느낄 것이다. 두 번째로 조금 심층적으로 들어가 본다면 인사라는 것이 인격적인 대화가 오가야 하는 건데, 결혼이 하나의 행사처럼 치뤄기지 때문에 깊은 대화를 하기가 어렵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도 "어, 왔어? 잘 지냈어? 바쁘지? 와줘서 너무 고마워"라는 말을 건네고 다시 돌아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니 인사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곤욕일 것이다. 세 번째로는 인사하는 대상을 내가 개인적으로 알지 못할 때 일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의 사촌 형의 아내, 혹은 셋째 큰 이모부 등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호칭조차 헷갈리는 분들을 만나 뵙고 돌아서면 얼굴도 가물가물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마주하다 보면, 이제 내가 이분에게 인사를 했었나 조차 생각이 안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계속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게 되고 이것이 신랑 신부의 피로감을 과중시키는 것 같다. 


 이 말이 어쩌면 누군게에는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회에서 신랑 신부에게 요구하는 무언의 기준이 조금 높은 것 같기도 하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는 않지만, 인사를 잘하면 '저 커플은 참 잘하네-'라고 바라보는 시선 말이다. 결혼 전에 만나서 청첩장을 줘야 하고, 결혼식 당일과 끝난 후에도 인사를 해야지만 예의 바르게 결혼식을 잘 치렀다-라고 바라보는 그 시선이 신랑 신부에게는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부모님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친구들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많이 느꼈다. (실제로 그 노력이 빛을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남편과 인사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결혼을 준비하는 신랑 신부에게 해줄 조언이 있냐고 물어봤다. 결국 우리는 뾰족한 묘수를 찾지 못한 채, '그냥 좋게 좋게 생각해야지 뭐'라는 아주 무책임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내가 해주고 싶은 말 한마디는 적당한 선에서 자신의 마음을 챙길 줄 아는 여유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인사 지옥을 즐겼다. 이것을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이 살짝 마음이 찔리긴 하지만, 이 힘든 과정을 웃음으로 승화시켯기때문에 모든 것을 순조롭게 끝낼 수 있었다. 결혼의 주인공이 신랑 신부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나를 바라보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이 행사에 임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혼식에 참석해준 사람들을 객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 가장 큰 행사에 함께 해준 고마운 동지라고 인격적 인식을 해야 한다. 


우리는 결혼식 당일 사진작가가 찍어준 사진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찍은 셀카를 인화해서 액자에 걸었다. 예쁜 척하면서 찍은 사진보다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찍은 사진이 더욱더 나답게 나왔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순간들을 빛내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 부부가 존재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우리가 짧게 경험했던 '인사 지옥'은 '결혼 천국'을 느끼기 위한 소중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 글을 읽을 수도 있는 나의 결혼식에 참석해주셨던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모든 공로를 바친다.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다고. 당신의 존재가 또 나를 빛내주었다고,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15. 내 결혼이 당신에게 불쾌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