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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Dec 02. 2018

17. 사랑을 배우는 학교, 결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해서 눈물을 흘릴 줄이야! 


나는 연애할 때 늘 이기적이었다. 너를 여가시간엔 만날 수 있어도 내가 할 일이 있다면 넌 늘 나중이야.라고 남자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다. 내 삶이 먼저였고, 각자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연애하는 것이 늘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헤어지고 물론 마음이 아팠지만 누군가와 헤어지고 아파하는 나 자신이 실망한 자기 증오적인 아픔이 더 컸다. 그래서 친구들이 남자 친구를 이야기하며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것들, 그 사람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들이 나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러웠다. 어떻게 자신의 삶을 누군가를 위해 흠뻑 줄 수 있을지- 그들의 담대함이 질투 났다. 


남자 친구에서 남편으로 등업 된 이 남자는 나를 늘 갈급해했다. 연애시절 우리의 싸움의 8할은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였다. 남자 친구 말은 그게 사랑해서 사귀는 사람이 할 태도냐- 라는 사실 조금은 타당한 요구였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 멀리 제주도에서 육지로 여자 하나 바라보고 온 남자 친구를 공부한다는 핑계로 주말에도 잘 만나주질 않았다. 그나마 만나면 카페나 도서관에서 각자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 (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나는 무슨 배짱이었다 싶다. 남자 친구가 "너 정말 나를 사랑하기는 하느냐"라고 따져 물을 때는 나도 답답했다. 나는 정말 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 사람이 답답했다. 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미로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결혼하고 내가 120퍼센트 바뀌었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으면 남을 위해서는 손하나 까딱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하기 싫지만 꾹 참고 남편의 먼지 묻은 바지를 털어준다거나- 운동 갈 시간을 희생해가며 저녁을 짓는다거나 하는 행동들은 참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그리고 남편이 언제 돌아오는지 그가 돌아오는 귀가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행복해지는 나 자신을 보는 게 가끔은 어색할 때도 있다.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남편에게 정말 흔한 질문인 

"오빠는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 거야?"라는 클리셰 같은 질문을 했다. 

물론 로맨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이과생인 그는

"첫째로 다음 생은 없어.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고 해도 그건 네가 너의 모습이 아니고, 나도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닐 거야. 그러니까 같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전제는 틀린 거지." 

라고 참 김이 새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원래 연애 때의 나였더라면 

"ㅋㅋㅋ 맞아. 나도 다음 생엔 너랑 결혼 안 해." 

라고 킬킬대며 받아쳤겠지만, 갑자기 서글퍼져서 눈물이 흘렀다.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내 눈 주변을 만져본다. 내가 우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 눈물이 흥건하다. 남편은 웃으며 나를 꼭 끌어안아준다.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이별이 두려워졌다. 연애를 할 때는 만남의 전제는 헤어짐이었다. 너와 내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 우리는 헤어질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을 전제로 했다. 그래서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상처 받지 않도록 채비를 했다. 

얼마 전 남편과 누워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말을 했다. 

"오빠, 나는 나보다 오빠가 먼저 죽었으면 좋겠어. 나는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오빠보다는 내가 이별을 더 잘 견딜 것 같아. 그래서 오빠가 먼저 떠나고 내가 오빠 없는 자리를 잘 견디다가 천국에서 만나자." 

말은 이렇게 씩씩하게 했지만 사실은 헤어짐이 두렵다. 내가 없는 남편, 남편이 없는 나의 삶은 얼마나 공허할까. 혼자 맞는 아침, 혼자 마감하는 하루가 얼마나 쓸쓸할까. 서로가 없는 곁을 상상하고 싶다. 또 그래서 더 건강하게 몸을 관리하고 단단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이 아닌 한 남자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은 경이로우면서 또 한편으로 두려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Being deeply loved by someone gives you strength
while loving someone deeply gives you courage. -Lao-Tzu- " 
누군가에게 깊게 사랑받는 것은 당신에게 힘을 준다. 
반면에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는 것은 당신에게 용기를 준다. 


이 말을 더 맛깔스럽게 한국말로 번역할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이 문구처럼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에게 있어서 더 그렇다. 나에게 결혼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 같다. 끊임없이 나를 비워내고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을 직면하는 일. 변해가는 나 자신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이 과정이 아주 당연하다고 나를 안심시키는 일. 나는 이 모든 일을 결혼 후에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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