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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Jun 13. 2019

고작 라면 때문에  

독일에서의 맹렬했던 싸움을 마무리하며 


얼마 전 부부싸움을 했다. 부부싸움이래봐야 내가 일방적으로 삐져서 꾹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두 사람 모두 감정적으로 큰 소모를 했다. 


싸움의 불씨는 라면이었다. 모처럼 일정이 아무것도 없는 휴일, 식사를 뭘로 할지 고민하다가 라면으로 결정했다. 서랍을 열어보니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준 신라면 블랙 두 개와, 미역국 라면 한 개가 남아있다. 남편은 팔을 걷어붙이며 신나게 자기가 요리를 해주겠다며 자기는 먹기만 하라며 큰소리를 쳤다. 내심 기대되는 마음에 가만히 앉아 요리하는 과정을 구경하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신라면 블랙과 미역국 라면을 모두 한 솥에 때려 넣더니 물을 한번 끓이고 비워내고, 사골국물 끓이듯 팔팔 끓인 후 김치 국물, 계란 등을 다 떄려넣는 것이 아닌가! 


"설마 지금 세 개를 한꺼번에 다 끓이는 거야? 김치 국물까지 넣고?" 

"응!"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눈물까지 핑 돌았다. 


"뭐야! 그럼 나 안 먹을래!" 


라고 말하고 식탁에 얼굴을 파묻었다. 

남편도 그런 나의 돌발행동에 당황하고 순간 흥이 깨져버렸다. 


물론 식사를 하며 나도 당신이 요리하는데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남편도 당신의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내 맘대로 요리해서 미안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 날의 냉랭한 식탁 분위기와 오래 끓여 다 불어 터진 면발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원래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한국에서도 라면을 먹는 횟수는 1년에 손을 꼽을 정도이다. 가족끼리 밤에 라면을 끓여먹어도 한 젓가락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라면에 욕심이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다 섞여버린 라면에 화를 내버린 것일까. 


독일에 온 후로 한국음식에 대한 집착 아닌 집착이 생겼다. 김치가 집에 있으면 그렇게 든든하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그러다가 김치가 다 떨어져 갈 때쯤이 되어가면 괜히 마음이 불안하고, 빨리 또 김치를 담가야 하는데- 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라면은 나에게 더 큰 의미다. 이 라면은 내수용 (수출용이 아니라는 뜻) 라면으로 엄마가 직접 한국에서 보내주신 라면이다. 그래서 주변에 초대를 받았을 때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분들이 있을 때 조금씩 나눠드리며 우리도 아껴먹던 라면이다. 라면이 조금씩 없어질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보내준 사랑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사는 것 같아, 아끼고 또 아꼈다. 찬장을 열고 닫을 때마다 한국 생각을 하며 마음이 든든하곤 했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몇 개 안 되는 라면을 이렇게 허무하게 소비했다고 생각하니 가자기 속상한 마음이 몰려왔던 것 같다. 라면에 대한 최선의 레시피인 표기되어있는 제조 법대로, 정석으로, 정성을 담아 끓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이 맛있는 라면이고, 내 소중한 라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억울했을 것이다. 원래 실험정신이 강하고 이것저것 새로운 맛을 먹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나 또한 새로운 콤비네이션을 좋아할 줄 알고 호기롭게 요리를 시작했는데, 아내가 먹어보지도 않고 맛없을 것 같다고 화를 내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그리고 밥 먹는 내내 냉랭한 나를 보며 본인 또한 얼마나 식욕이 떨어졌을까. 남편의 마음을 한편으로는 백 퍼센트 이해하지만, 나는 서러운 마음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나의 라면을 모두 소비했다는 생각- 이제 엄마가 보내준 음식은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드니 더 눈물이 났다. 이렇게 남편 앞에서 엉엉 울어본 것도 처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울다 보니 한국이 더 그리워져서 또 눈물이 났다. 


결국은 남편이 달래줘서, 그리고 결국 나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일단락 마무리되었지만 우리의 라면 싸움은 참으로 맹렬했다. 아니, 나의 감정선은 여러모로 오락가락이었다. 


고작 라면 때문에. 

아니, 한국에 대한 나의 집착 때문에. 우리는 독일에서 부부싸움을 했다. 



부부 싸움하고 혼자 삐져서 산책하며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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