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마주하며
산다는 것은 어쩌면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일과도 같을까.
호기로운 마음에 처음 설정해 놓은 속도에 맞춰 달려야 할 것이다. 행여나 발을 헛디디거나 늦어진다면 넘어지고야 마니까. 옆에서 사뿐사뿐 뛰는 사람들도 은근히 신경 쓰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쿵쿵 거리며 겨우 숨을 고르고 있는데 저렇게 높은 속도를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가볍게 뛰는 사람을 부러워 하는 마음을 감출 것이다. 또 러닝머신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티브이를 시청할 것이다. 자극적인 매체로 머리와 귀를 속여 내 다리가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을 최대한 마비시켜야 하니까. 그렇게 해야 시간이 빨리 갈 것이다.
러닝머신을 달리는 일이 내가 '좋아서 하는' 운동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운동'인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꾸역꾸역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2020년을 맞으며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것과 같은 지루하고 무료하기 짝이 없는 나의 인생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처음 설정한 속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산다는 것이 어찌 한 속도에 맞춰 지속적으로 달릴 수만 있을까. 우리의 몸은 지치기 마련이고 모든 일에는 인생의 상황과 계쩔에 맞는 속도가 있기 따름이다. 이제 더 이상 주변을 흘깃거리며 다른 사람이 어떤 속도로 달리는지에 신경쓰지 않으리라. 그 사람의 속도가 7.5이던 6.5이던 나는 내 몸과 컨디션에 맞는 속도로 내가 원하는 만큼 달릴 것이다. 나의 인생의 기준점은 타인이 아닌 나니까. 또 아무리 운동을 해도 러닝머신을 좋아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나는 뭐든지 해낼 수 있으리라는 조금은 무모한 긍정이 사그러진다. 대책없는 혈기가 줄어드는 것일까. 인생은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척 하지도, 내 자신을 압박하여 무리한 일을 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묵묵하게 불평하지 않고 걷고 싶다. 광야에서 양을 치며 목적도 없이 정처도 없이 걷고 걸었던 모세처럼 주어진 자리를 지키고 싶다. 혹시 아는가. 기적처럼 광야 한 가운데에서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한 그루 떨기나무를 만날 수 있을지.
하루는 길고, 일 년은 짧다.
나의 일상은 무료하지만 나의 삶은 다채롭다.
너무 느리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내 호흡을 느끼며 걷고 싶다.
나를 더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