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대한 나의 스몰토크
어제 엄마랑 통화하는데 수화기너머로 아빠가
"와인먹자!!"
하는 절규 + 외침을 들었다. 나는 웃으며
"아빠는 술을 너무 취하려고 마셔서 안돼. 그래서 나랑 마시고, 내가 따라주는 만큼만 마셔야해."
하고 쐐기를 박았다. 엄마는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맞아, 맞아." 를 연발하고 아빠도 침묵으로 긍정했다.
술에 대한 유장한 아빠의 역사를 이야기하자면 책 한권도 부족하지 않을까? 신혼시절 우리 엄마는 유독 술을 싫어했고, 아빠는 유독 술을 좋아했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가진 엄마는 친구들과의 각종 모임과 약속이 많은 우리 아빠를 이해하기는 어려웠겠지.
그러던 아빠가 어느 순간 돌연 술을 끊었다. 술을 줄인 것이 아니라 아예 금주를 선언했다. 처음에 우리 가족은 반신반의하며 정말 아빠가 술을 안마시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지만, 아빠의 다짐은 정말 확고했다. 마트에 가서 맥주나 와인 시음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침만 꿀꺽 삼키곤 했다. 그런 아빠에게 "아빠, 저만큼은 괜찮아. 마셔볼래?" 하며 꼬득여도 아빠는 "아니, 나 술 끊었어." 라고 말하며 고개를 젓곤 했다.
아빠의 금주의 동기는 신앙의 이유가 가장 컸다. 엄마와 결혼을 하고 신앙심이 깊어지면서 교회의 가치관에 깊게 동의하고 따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동기가 무엇이든 아빠의 결단력과 의지력, 그리고 행동력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그 후로 남자를 볼 때 "자신이 말한 바를 행동에 옮길 줄 아는 사람"이 큰 기준이 되었다. 어찌됐건 술을 안먹는 우리 아빠 덕분에 우리 가족은 금주 가족이 되었고, 삼남매 모두가 성인이 되어서도 몇 년간 그런 가풍이 지속되었다. 그러한 가풍을 깨고, 우리 가족에 센세이셔널하게 와인 바람을 불어일으킨건 바로 나였다.
예전에 포르투갈 친구에게 선물받은 포르토 와인이 있었는데 달달하고 도수가 높은 와인맛에 가족들이 다 빠져버렸다. 그래서 슬그머니 축하할 일이 있을때, 혹은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에 와인을 마신다. 개인적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교회에 다닌다고 술 마시는 사람을 판단하고 죄인처럼 여기는 문화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성경에서는 술의 유익과 또 그의 반대인 술의 해를 동시에 인정한다. 따라서 나의 사견으로는 기독교인들이 건강한 방법으로 술을 활용하고 건전한 술 문화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술은 취하기 위해서, 혹은 슬픔을 잊기 위해서 마시는게 아니라 좋은 친구를 만나면 마시는 커피처럼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또 음식과 마리아쥬를 생각해 분위기를 맞춘다면 얼마나 와인은 좋은 음료인데!
어쨋거나 아빠의 와인 사랑을 시작한건 나이니, 그 끝도 내가 맺어야한다는 어이없는 책임감 때문에 나는 아빠에게 오늘도 와인을 따라주며 말한다.
"아빠, 이게 마지막이야."
하지만 또 나는 알고 있다. 더 없냐라고 물어보는 아빠의 말에 눈을 흘기며 다시 부엌으로 가서 와인병을 찾을 거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