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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가는 Feb 20. 2018

5. 남존여비, 나는 딸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을까?

결혼을 앞두고 맥락 없이 생각하는 남녀평등 


어렸을 때 나는 엄마에게 "엄마, 나 몇 밤을 자야 고추가 생겨?" 하고 물어보곤 했단다. 남자와 여자의 성별이 다르다는 게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는 남자가 되고 싶었던 열망이 있었나 보다. 첫째 딸로 사람을 듬뿍 받고 자란 언니와, 아들로 태어나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예쁨을 받았던 동생에 비해 나는 늘 잘 토라지고 예민한 아이 었다. 한번 토라지면 혼자 있어야 하고, 또 그마저 오래가는 바람에 가족들은 나를 대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돌아 생각해보면 나의 까탈스러운 성격 뒤에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성별에 대한 차별에서 오는 깊은 절망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명절이 지나고 나면 늘 부모님과 사이가 틀어지고 만다. 이번 명절은 잘 넘겨야지- 아무리 다짐해봐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나의 친가는 대대로 유교전통을 따르는 집안이다. 그래서 아들이 대를 잇고 때문에 장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왔다. 명절마다 느껴지는 남과 여에 대한 온도차는 극명하다. 먼저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고모들이 "아들~ 왔어?" 하며 엉덩이를 두드리는 데에 비해, 나 같은 딸들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코트를 벗고 방에 들어간다. 부엌에서 몸을 쓰며 일을 한다면 기특하다는 소리를 조금 들을까- 하지만 굳이 그런 소리가 듣고 싶지 않다면  방에서 티브이만 볼뿐이다. 밥 먹을 때는 더 서글프다. "밥 먹자"라는 공지사항이 부엌에서 떨어지면, 티브이 앞에서 늘어지게 앉아있던 남자들은 어슬렁거리며 식탁 주위로 둘러앉는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가 나면 그때서야 남은 찌개며 갈비찜 국물과 함께 밥을 먹는다. 얼마 전 동생이 대학교를 졸업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 따로 졸업을 축하한다고 말했던 친척들은 없었는데 이번 설날에는 여기저기서 동생 주머니에 용돈을 찔러주며 졸업 축하한다고 하더라. 누나들 몰래 받으라는 소리를 "내 앞에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불편한 그 자리에 있었던 내가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러한 차별과 결핍에 따른 이득도 분명 있다. 둘째 딸로 태어났다는 상대적 박탈감 더하기 성별은 바꿀 수 없다는 좌절은 내가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형제들 중  누구보다 미래를 개척하며 각종 자격증, 어학 능력 등을 갖췄다. 그러한 결핍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현재에 만족하며 발전이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씩씩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던 유일한 이유는 이렇게라도 해서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는 조금은 서글픈 몸부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결핍에 대한 원망은 없다. 나에게 흉터를 남겼지만 더 이상 그것이 상처는 아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명절 때마다 이토록 남자를 귀하게 여기는 사상을 가진 가족을 두고 "원래 이런 걸 나도 어쩔 수 없다"는 아빠를 보며 이것이 나의 딸이 직면하게 될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아빠가 말했듯 변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나는 주어진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만약 우리 딸이 본인의 오빠, 혹은 사촌오빠들의 비교대상이 된다면, 또한 하나님이 정해주신 여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고 만에 하나 저주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마음 아픈 것이 없을 것 같다. 

남자 친구와 어제 이야기하며 "너 혹시 페미니스트야?"라고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섞인 질문을 받았다. 페미니스트에 대해서 사회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헝클어진 머리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침을 튀기며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만이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없다. 페미니스트는 그 근본 원리로 여성의 박탈된 권리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나는 사실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하기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연약한 점을 보강하며 살아야 하는 휴머니스트라고 칭하고 싶다. 남자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여자가 채워주고, 여자의 약점을 남자가 보강해주는 자연의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어떠한 부분에서는 극명하게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딸은 자신이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박탈감을 느끼지 않기를, 또한 남성이 가지지 못하는 섬세함과 따뜻함을 가진 여성성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며 자라기를 바란다. 자신의 여성성을 개발하며 세상에서 본인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기를 바란다. 

남성과 여성이 본인의 성별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가정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부모로서 그것이 나의 희생과 노력을 요한다면 기꺼이 내 딸의 방패가 되어 더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세상은 인간의 가치를 성별로 가르고 남과 여의 존재의 무게가 다르다고 말하지만, 적어도 우리 집에서만큼은 용납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부모. 혹시나 상처가 난 마음에는 따뜻한 말로 호호 불어 위로해주고, 건강한 생각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켜주는 부모. 왜곡된 가치관을 바로잡아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그리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사회에서 발벗고 뛰는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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