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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지수 Jan 16. 2023

나에게도 담당 교육 프로그램이 생기다



4년 차 코딩 교육 매니저의 회고_5편






교육 매니저 1년 차,

시작은 작은 것부터


1년 차에는 여러 교육 프로그램의 작은 업무를 하며 기본기를 배웠다. 나도 1년 차였지만 그 당시 내가 속한 회사도 영리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아직 대표 교육 프로그램이 부재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점점 회사의 정체성이 확립되면서 그 해 중순에 한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런칭하게 된다.


가볍게 코딩을 배우고 싶은 직장인들을 위한 오프라인 교육이었고, 기수제로 진행되면서 교육 기간 동안 나만의 웹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내 사수가 이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 기획했고, 나는 1기부터 참여하여 교육 운영 부분을 서포트했다.


1기 때는 모르는 것 투성이었기에 모든 것이 재밌고 신기했다. 스태프 목걸이를 걸고 대형 강의장에서 오리엔테이션이나 해커톤 같은 행사를 진행하는게 설레기도 했고, 퇴근 후 강의장에 와 열심히 공부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며 뿌듯한 감정도 느꼈다. 첫 기수였기에 기획이나 운영적인 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기도 했는데, 그런 것에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러다 2기가 시작되었다. 1기를 통해 교육의 한 사이클을 경험했으니 2기부터는 내 의견을 조금씩 말해보기 시작했다. 그때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사수는 의도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을 내비쳤지만 내 의견대로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웬걸, 정말 사수의 말처럼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스터디 그룹을 조직해주고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각종 양식까지 제공했는데, 바쁜 직장인들은 호기롭게 스터디는 신청했지만 끝까지 활동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그저 내 경험에 의거한 아주 어설픈 기획의 결과였다. 교육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교육을 받는 상황이나 조건은 어떤 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스터디 그룹은 결국 교육 중반쯤 되자 흐지부지 되었고, 그때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교육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교육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퀄리티 높은 강의이지 어설픈 매니저의 관리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 매니저 2년 차,

프로그램 총괄이 되다


내가 2년 차가 되면서 3기도 함께 시작되었다. 이때는 회사의 규모가 커져서 내가 갑작스럽게 팀장이 되고, 나와 함께 일할 팀원들이 입사하게 되었다. 이제 사수는 다른 교육 프로그램까지 총괄하는 역할이 되면서 내가 이 프로그램의 담당자가 되었다.


1, 2기가 진행되는 동안 교육생의 피드백을 받으며 프로그램의 많은 부분을 개선시켜 왔다. 3기부터는 프로그램의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구체적인 운영 프로세스와 방법을 템플릿화/문서화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는 나 혼자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운영해야 했기에 이 과정이 업무의 합과 결을 맞추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처음 하는 작업이었지만 문서화하는 작업이 무척 재미있었다. 체계적으로 업무를 정돈하고 매뉴얼대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 3기 운영 중반에는 예상치못한 코로나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큰 우여곡절없이 평탄하게 진행되었다.


4기부터는 팀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고 새로운 것을 직접 기획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었다. 나는 한 발자국 물러나서 팀원들의 업무 내용을 확인하고, 업무 매뉴얼을 업데이트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다만, 4기부터는 코로나의 영향을 크게 받아 오프라인 교육에 변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상황이 심각하지 않아 잘 마무리될 수 있었고, 문제는 그 이후에 개강한 5기였다.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라는 불청객


5기가 진행되는 내내 거리두기 정책 때문에 수업 일정이 변경되거나 미뤄졌다. 처음 겪는 천재지변의 상황에서는 아무리 잘 만들어놓은 매뉴얼이라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건 정부도 마찬가지였는지 코로나의 상황에 따라 정책이 매번 바뀌었고, 우리는 매일 발표되는 내용에 따라 새로운 대처방법을 고안하여 교육생들에게 안내해야만 했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정해진 수업은 모두 진행되었는데, 마지막으로 60여 명의 교육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밤을 새는 해커톤이라는 행사가 마지막 걸림돌이 되었다. 모일 수 있는 인원과 시간에 제한이 있는 상황이었기에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했고, 결국 거리두기 기준이 완화될 때까지 행사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행사는 해를 넘겨 예정보다 4개월이 지난 후에야 소수의 인원만 모여 진행되었고, 우리는 심심한 해커톤을 끝으로 그제서야 5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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