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남들처럼." 어린 시절 자신이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무도 모르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장차 인류를 구원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보적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자기중심적 망상들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점차 사라진다. 이런 순간들을 우리는 철이 들었다고 표현하며 부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소망하곤 한다.
해마다 졸업식이면 생각나는 학생이 있다.졸업식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학교에서는 교복 물려주기 행사를 기획했고, 교복을 물려준 3학년 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자유롭게 사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는 일종의 특혜를 누렸다. 대부분의 학생이 교복을 학교에 제출했으니 자연스럽게 졸업식은 사복을 입고 진행하기로 했다. 손에 꼽히는 말썽꾸러기였던 그 아이는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엔 거의 등교를 하지 않았고, 그러니 당연히 학교에서 교복 물려주기 행사가 진행된다는 안내나 졸업식에 사복을 입고 와야 한다는 안내도 들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졸업식 당일, 전교에서 그 말썽꾸러기 녀석만 유일하게 당당히 교복을 입고 나타났다. 각자 나름 멋지게 뽐낸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그 녀석만 혼자 무채색의 칙칙한 교복을 입고 등장한 것이다.
그 아이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나 혼자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이 쪽팔려서 졸업식에 참석하기 싫으니 집에 가겠다. 졸업장을 그냥 미리 달라’고 요청했다. 3년간 내내 입던 옷이 뭐가 부끄럽냐고 타이르며 마지막까지 행사에 참여하자고 달래고는 돌려보냈는데, 졸업식 내내 바닥만 쳐다보던 그 친구는 결국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어느샌가 훌쩍 자리를 떠났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으로 이상했다. 그 친구는 분명 3년 동안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아마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또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닐 것이었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교복을 어떻게 3년간 참으며 입었고, 또 3년을 더 견딜 각오를 할 수 있었을까? 생각건대 그 친구가 부끄러웠던 것은 교복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가 입은 옷만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로부터 부끄러움을 느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부끄러움을 넘어서는 불안과 절망,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특별할 것도 색다를 것도 없는 평범한 삶은 우리에게 안도를 선사하고, 내 주변에 나와 유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든든한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며, 나의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명징한 증거가 되어 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우리는 평범한 삶을 꿈꾼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길, 남들도 다 그렇게 해왔던 삶의 방법은 일종의 모범답안처럼 여겨지며, 최소한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대입 원서를 쓰는 시즌이 되어 학생들과 상담할 때, 커다란 모순을 만난다. 분명자유를 갈망하며 자유를 탄압하지 말아 달라고 목소리 높여 노래하고, 진정한 자유를 찾아 대학과 사회로 떠나가겠다고 선언하는 학생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에게 본인이 진학하고 싶은 학교를 자유롭게 골라오라고 이야기하면 크게 실망하고 돌아간다. 담임이 학생의 진로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뒤에서 욕도 참 많이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너는 이러저러한 것을 잘하는 것 같고, 성적은 이 정도이니 X대학교 Y과를 지원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려주면 참으로 흡족하며 돌아간다.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을 타인에게 위임해 버리고 불안을 털어버리고 돌아가는 가벼운 발걸음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곤 한다.
자유롭게 스스로 선택한 행동에 따르는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굳이 검증되지도 않은 길을 마음대로 걸어간 대가는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 되기에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보통 남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핀다. 그렇게 우리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꿈꾼다. 자유를 담보로 구매한 안정감은 생각보다 달콤하니까.
진로, 진학, 취업, 연애, 결혼 등과 같은 삶의 기로에서 우리는 자기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를 살피기 전에 평범한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가 원하는 나만의 꿈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혹여나 내 안에 남들과 다른 마음이 웅크리고 있기라도 하면 나는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삶을 살아야 할 터이기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초에 알고자 하지 않는다.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자기 내면의 욕구를 들여다보는 것을 스스로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욕망을 마치 자신의 고유한 욕구인 양 생각하며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평범함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가끔 비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대신 간장을 마시는 할아버지, 24시간 내내 춤을 추는 할머니, 돌탑을 쌓아 올리는 아저씨.하지만나는 한 번도 그들의 얼굴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본 적 없다. 이런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범한 자유가 반드시 불안을 가지고 오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안전한 삶도 좋지만 한 번쯤은 자유로운 삶을 꿈꿔봐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