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에서 기억에 남는 대사를 꼽으라면 단연 이 대사일 것이다. 영화 초반부 기택(송강호)은 자기 아들의 삿된 계획을 들은 뒤 우스꽝스러운 꿈을 품고 자랑스러운 듯 제 아들을 칭찬한다. 이후 여러 가지 사건이 벌어지며 모든 희망이 좌절된 상태에서 기택은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이 없으면 실패도 하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며 더 이상 계획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흘러 들어간다.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를 모르고, 또 모르고 싶었기에 그저 이리저리 흘러가기를 선택한 기택이 감수해야 할 대가는 실로 끔찍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가끔은 너무 무겁고 진지해서 답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안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 짧은 출근을 했다가 오후에는 글을 쓰러 나왔다. 추석엔 고향으로, 이어지는 연휴엔 캠핑을 갈 계획이다. 눈을 뜨면 학생은 학교를 가야 하고, 직장인은 회사로, 여행자는 각자의 여행지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이렇게 우리는 각자 다른 곳으로 가야 함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이상적으로, 우리는 함께 같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선과 악 중 어디로 가야 하는가? 정의와 불의 중 어디로 가야 하는가? 관용과 혐오, 참과 거짓, 평등과 차별, 공정과 반칙, 평화와 전쟁, 환대와 적대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가야 할 곳은 과연 어디인가? 진실로 명확하게 우리는 알고있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깊은 탄식 속에 숨겨져 있는 희망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바르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조차도 모른다면 길을 잃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마치 기택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잊기로 결심하고 그저 흘러가는 사람은 길을 잃어버릴 일도 없다. 그러다 보니 기택은 선(線)을 넘었고, 선(善)도 잃었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자. 혹시 내가 길을 잃었다면,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이니까.
이렇게 볼 때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사실 ‘어떻게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항상 알고 있다. 단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