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무더운 한 여름, 8월 말쯤부터 도전했던 수영 등록은 추운 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었다.
새해가 밝은 1월, 시작된 수영강습은 오랜만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수영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하나둘씩 사고, 수영을 배우는 친구들에게 가서 조심해야 될 것들을 묻기도 하며 드디어 나는 수영에 입문하게 되었다.
음파음파 숨쉬기를 거쳐 거북이라 칭하는 도구를 허리에 차고, 킥판을 손에 잡고, 발차기부터 차근차근 배워 온 나는 현재 거북이 없이도 물에 뜨고 수영이 가능한 8개월 차 멋진 수영인이 되었다.
그러나 8개월 동안 성장한 멋진 수영인에게도 나름의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저질 체력이다.
친구는 말했다. "너 보다 우리 할머니 체력이 더 좋은 거 같아"
엄마는 말했다. "나이 먹은 나보다 체력이 이렇게 떨어져서 어떡하니"
평소 무언가를 해내는 시간보다 해내기 위해 쉬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은 나는 일주일에 3번가는 수영이 정말로 쉽지 않았다. (왜 욕심을 부려서 주 3회를 등록했는가 싶은 생각이 이따금 들기도 하지만 너무 힘든 날은 자체 주 2회를 하기도 한다)
수영을 하면 체력이 늘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오히려 수영을 하기 위한 체력을 또 다른 운동으로 길러야 힘찬 수영이 가능한 것 같다.
코어라곤 쥐뿔도 없는 나는 아직도 늘 힘겨워하며 죽을 둥 살 둥하며 수영을 이어가고 있다.
두 번째 고비는 바로 첫 시작이라면 항상 겪어내야 하는 못난 나를 견디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문제였다.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면 제대로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못난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비단 첫 시작이 아니더라도 익숙한 일도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기만 해도 못난 나는 한 번쯤 참고 견뎌야 하는 존재가 된다.
당연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면서 저 문제에 부딪힌 사람을 보면 제삼자의 입장으로서 나는 "지금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기죽을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라며 위로하고 진심으로 말해주곤 한다.
근데 왜 나 자신에게는 적용이 안 되는 걸까
앞 전 글에서도 말했듯,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이 성향은 역시나 처음 시작하는 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머리로는 '지금은 못하는 게 당연하지'라고 알지만, 자존감은 조금씩 깎여나가고, 그럴수록 '나랑 안 맞는 운동이 아닐까? 그만둘까?' 하는 방어적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처음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그래도 적은 에너지를 더 빨리 소모하게 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조금이라도 성장한 나 자신을 뿌듯하게 느끼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못난 내 모습을 못 견뎌 시무룩해졌다.
그런데 차마 쉽게 그만둘 수가 없었던 건, 아무리 잘하지 못하는 내가 못나보여도, 생각해 보면 아예 물속에서 발차기도 못하던 내가 이제는 둥둥 떠 있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쑥쑥 성장하진 못했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이 보여 성취감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못난 나를 견딜 수가 없다'라는 마음과 '그래도 조금씩 성장했다'라는 마음이 충돌하던 시간이 흘러서 어느덧 배운 지 8개월이 되었다. 1년 전 바닷가에서 물을 무서워하며 얕은 쪽에서만 얌전히 놀던 나는, 다음 해 여름 한강수영장에서 그동안 배웠던 수영 영법을 친구에게 뽐내는 날도 맞이했다.
저질 체력과 주춤하는 성향은 아직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아직도 여전히 몸과 마음은 서로 합의하지 못한 듯,
수영은 아직 조금 부자연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수영을 통해 내가 알면서도 외면했지만 다시 깨달은 것은 겁먹지 않는 것, 그리고 우선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늘 그 한 발자국이다. 역시나, 일단 해보는 게 가장 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