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episode 02
2. 텔레비전 아래 그늘진 겨울잠 하나
서울에 올라온 엄마는 마치 밀린 겨울잠을 자듯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긴 겨울이 지나고 햇살이 서서히 번지다 못해 녹아내리는 계절에도, 엄마는 여전히 무채색으로 물든 몸을 바닥에 뉘인 채였다. 그 끓어오르는 여름 열기 속에서도, 엄마의 자리는 언제나 거실 구석, 빛이 닿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다.
그 어둑한 자리에서 엄마는 온종일 텔레비전을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집 안에만 머무르며 매일 뉴스를 달고 살았기에 엄마는 사회·경제 등 대부분의 이슈에 밝았다. 혜진이 퇴근해 돌아오면 엄마는 언제나 오늘의 뉴스를 전해주었다. 엄마의 뉴스는 속보처럼 짧고 간결했다. “부산 호텔에서 불이 나서 3명이 죽었대.” 딱 한 문장에 원인과 결과가 모두 담겨 있었다. 덕분에 혜진은 뉴스를 챙겨보지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엄마는 뉴스 하나를 알려주는 대신, 세 자매의 하루를 듣고 싶어 했다. 그건 누구네 자식은 뭐가 어쨌다느니와 같은 잔소리 따위가 아니었다. 엄마는 그저 세 자매의 사소한 일상을 듣는 것으로 충분해 보였으니까. 서울에 온 뒤 바깥으로만 나도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향해 엄마는 매일같이 물었다. “오늘 뭐 했어?” 그러나 우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지친 몸을 이끌고 나가기 일쑤였다.
대신 주말이면 혜진은 엄마 곁에 조용히 누워 그녀의 몸을 만지곤 했다. 엄마의 몸은 그늘진 나무 아래 고인 물처럼 서늘했다. 혜진은 대체로 시원하고 말랑한 엄마의 볼과 팔뚝, 살짝 살집이 있는 배를 참 좋아했다. 그 살결 위로 잔주름이 서서히 늘어가는 걸 알게 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누워 TV를 보면 여름날처럼 예고 없이 엄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엄마는 잠버릇이 없었다. 너무도 고요해서 정말 자고 있는게 맞는지 가만히 들여다볼 때도 있었다. 세상에서 엄마만이 내가 잠을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혜진은 엄마의 숨소리와 오르내리는 가슴팍, 미동조차 없는 입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 고요한 숨결 안에서 엄마의 지루하고 조용한 삶이 그대로 느껴졌다. 엄마는 서울을 꿈꿨지만 실제로는 여수에서보다 더 나른하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연고도 친구도 없는 낯선 도시에 던져져 할 일 없이 자식들의 일상을 묻다 잠드는 나날이었다.
타는 듯한 여름볕이 쏟아져도 엄마는 창밖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대신 집 안 가장 깊숙하고 그늘진 자리, 텔레비전 앞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눅눅한 더위처럼 불편한 감정이 마음속에 들러붙었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작품 제목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