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신명수 수족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episode 03

by 지은

3. 신명수 수족관


장맛비가 쏟아지던 그 해 여름 혜진은 <신명수 수족관>에서 금붕어 세 마리를 샀다. 그곳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물가로 향하던 습관대로 청계천을 걷던 혜진은 낯선 고함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어. 아가씨.”

시청 관계자가 혜진을 향해 손을 휘-휘-젓더니 이렇게 말했다.

“밖으로 나와요. 위험하니까.”

최근 폭우로 범람 위험이 있다며 시청 관계자가 다리를 가리켰다. 가리킨 계단 위에 올라갔을 땐, ‘출입통제 침수위험’ 현수막이 막 걸려 있었다.


길을 돌아 나가자 오래된 간판들이 늘어선 수족관 거리가 나타났다. 대왕 열대어, 관상어 아쿠아, 금성조류, 오대어 공판장… 그 옆으로 흰 바탕에 푸른 글씨가 흐릿하게 남은 낡은 간판이 보였다. 그 판자 위에는 '신명수 수족관'이라고 적혀 있었고, 오른쪽에는 비단잉어, 금붕어, 열대어라는 빨간 글씨가 차례로 새겨져 있었다. 혜진은 가게 앞에 잠시 멈춰 서서 '신명수'가 과연 수족관 주인의 이름일까, 아니면 단순한 상호일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이 생각은 곧 ‘그렇다면 모든 상호에 적혀 있는 이름은 그 주인의 이름일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때, 수족관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혜진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집에서 물고기 키우면 좋은 일 많이 생긴다. 아가씨.”

빗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혜진은 발걸음을 멈췄다.

“뭐가 제일 키우기 쉬워요?”

“금붕어 처음 키워?”

“어릴 때 집에서 키웠지만, 제가 직접 키우는 건 처음이에요.”

“그럼 유금으로 해. 요즘은 난주나 오란다 많이 키우는데, 이놈이 내가 보기엔 제일 예쁘다.”

남자는 바로 앞에 놓인 유리 수조 안, 짙은 붉은색의 금붕어를 가리켰다. 유금의 단정한 붉은색이 혜진의 시선을 그것의 배에서 등으로, 등에서 지느러미로 점차 옮겼다. 무얼 잔뜩 먹어서인지 가슴부터 아랫배까지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유금의 특징이었다. 목부터 등으로 이어지는 모든 윗 굴곡마저 둥글었으며, 그 곡선을 따라 지느러미가 날개처럼 길게 펼쳐져 있었다.

수조 안에 고요히 고인 물에서도 나름의 흐름이 있는 모양이었다. 유수를 따라 유금의 지느러미가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 순간, 유금의 날개를 타고 멀리 흩어진 기억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듯했다.

기억 속에서 혜진과 가족은 여수에 살며 구피를 다섯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구피는 적응력이 강하고, 생명력이 높아 순식간에 번식했다. 다섯 마리로 키우기 시작했던 구피는 어느샌가 삼십 마리로 늘어났다. 구피의 번식 기간이 찾아오면, 혜진네 가족은 온갖 지인들에게 물고기를 좋아하는지 물어가며 새끼들을 분양해 주기 급급했다. 그 집에서 왕성하게 자라나는 건 구피밖에 없었다. 기억이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혜진은 어느샌가 유금을 구매하고 있었다.


“튼튼한 놈으로 세 마리 주세요.”

“그래, 새끼들로 줄게. 마리당 15,000원.”

“비싸네요.”

남자는 대답 없이 물었다.

“얘들끼리만 키울 거지?”

“왜요?”

“유금 성격이 좀 안 좋아서 다른 종이랑 합사 하면 안 된다.”

남자는 유금이 유독 다른 종과 합사 하기 까다롭다고 했다. 소형 열대어를 잡아먹거나, 구피나 플래티 같은 열대어를 괴롭힐 수 있다고. 그러자 혜진은 이 금붕어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최소한 어릴 적 키웠던 구피보다는 강한 놈일 것이었다.


혜진은 유금 세 마리와 수조 하나, 바닥재와 관리 용품, 마지막으로 금붕어 전용 사료까지 챙겨 들었다. 계산을 마치고 신명수 수족권을 나서기 전, 혜진은 문득 돌아서 물었다.

“아저씨 이름이 신명수 씨인가요?”

“아니, 나는 박성호다.”

“그렇군요?”

“뭐, 금붕어랑 어울리는 이름 같아서 그냥 쓴 거지.”

뜻밖의 말에 혜진은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가게 문을 나서며, 어쩐지 비싼 값을 치른 기분이 들었다. 마리당 15,000원이라니. 금붕어 치고는 터무니없는 값 같았다.

그러나 박성호 아저씨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빌려보자면, 어쩐지 오늘 금붕어를 산 건 잘한 일 같았다. 공기 중에는 습기가 가득한 날씨였고, 그렇다면 이동하는 동안에도 유금 세 마리가 쉽게 죽지 않을 것이었다.




혜진이 집에 돌아오자 거실 한편에서 웅크려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평소와 다르게 둔탁한 수조를 들고 있는 혜진을, 엄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별 뜻 없이 자신의 본래 이름을 알려줬던 박성호 씨처럼 무심한 체하며 엄마는 물었다.

“그게 뭐야?”

“금붕어야.”

“금붕어는 왜?”

“뭘 물어. 우리 어릴 때 잘 키웠잖아. 싸게 팔길래 데려왔어.”

"얼만데?"

그러나 혜진은 마리당 15,000원을 주고 샀다는 사실은 굳이 밝히지 않았다. 그랬다간 ‘치킨 세 마리도 사 먹겠다’며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대신 화장실로 곧장 걸어가 수조 안으로 물을 부었다. 수돗물이 거대한 폭포수가 되어 수조 안으로 거세게 쏟아졌다.


혜진은 수조 안에 물이 가득 찰 때까지 멍하니 바라보다가, 또다시 어릴 적의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 어릴 적 주말이 오면 수조 안에 이끼가 끼어 물이 탁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럼 아버지는 유금만큼이나 볼록 튀어나온 둥근 배를 손 끝으로 벅벅 긁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언제 이렇게 더러워졌대.”

그 뒤로 이어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금붕어 수조의 물을 가는 것이었다. 떠올린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어항 물을 전부 버리고, 어항과 장식물 등을 깨끗하게 소독한 뒤에야 새 물을 채웠다. 아버지의 손을 탄 구피는 죽는 법이 없었다. 생명력을 잃기는커녕, 놀이터 옆 화단을 파면 드글거리는 구덩이처럼 좁은 수조 속에서 징그러울 정도로 가득하게 번식했다.

혜진은 금붕어를 자신의 손으로 사는 어른이 되고서야 올바른 물갈이가 전체 물갈이가 아닌, 일부만 교체하는 부분 물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성호 씨는 수조의 물을 다 새롭게 갈아내는 전체 물갈이는 금붕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으니, 1년에 한 번 정도로 제한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혜진은 수조를 가득 찬 구피를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거짓말이야.

혜진은 박성호 씨의 조언을 모조리 무시하고, 기억 저 편의 아버지를 따라 유금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적당히 미지근한 물을 붓고, 수조를 뽀득뽀득 씻었다.


거실 한편에서 여전히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는 엄마를 지나, 수조를 현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서랍장 위에 두었다. 무늬목 인테리어 필름이 다 벗겨져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한 서랍장 위로, 반듯하게 반짝이는 유리 수조 하나가 올라섰다.

집에서 물고기 키우면 좋은 일이 생긴다던 박성호 아저씨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다. 짙고 선명한 붉은색의 몸짓들이 이젠 거실 어디에 있든지 한눈에 들어올 것이었다. 수조 안에서 유금 세 마리가 천천히 헤엄치며 낯선 물살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밖은 여전히 장댓비가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작품 제목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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