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episode 04
4. 엄마의 유금 삼남매 키우기
다음 날 서울엔 가는 비가 흩날렸다. 혜진은 눈 뜨자마자 우산을 챙겨 나섰다. 어젯밤 SNS 계정에 금붕어 얘기를 올렸더니, 친구 하나가 수초 장식을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약속한 카페에 도착하니, 친구 수호가 커다란 상자 하나를 앞에 두고 있었다. 봉지 하나일 줄 알았던 혜진은 놀라 물었다.
"뭐야, 설마 이거 다?"
수호는 인사도 없이 물었다.
"너 이사 간다며?"
"맞아."
"그전에 많이 가져가. 이것도 필요할 거고... 이것도."
"비 오는 데 다 어떻게 들고 가냐. 필요한 것만 가져갈게."
"금붕어가 그냥 크는 줄 알아? 이런 돌 하나가 물길을 바꾼다니까."
수호는 어떤 크기의 돌을 어느 방향으로 기울이는지에 따라, 수조 안에도 물의 흐름이 생기는 것이라며 금붕어 수조 설계론을 열변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금붕어 수조를 꾸민다는 건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겨우 금붕어 세 마리가 살 법한 혜진의 좁은 수조에는 가당치도 않은 논리였다.
"그렇지만 내 유리 수조는 작은 걸."
"그래도 할 수 있어."
"뭐 금붕어 하나 키우는 데 이렇게 진지하냐."
혜진은 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수호는 대뜸 자신의 블로그를 켜 폭포와 밀림, 사막을 재현한 수초 레이아웃 사진들을 보여줬다. 그는 물고기와 수초를 키우는 데 깊은 관심을 보였던 만큼, 세계 수초 레이아웃 대회 수상작들을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었다. 그중 폭포가 흐르는 작품 하나를 자세히 보여줬는데, 물의 밀도 차이를 이용한 기술이었다.
그걸 본 혜진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내가 금붕어 키운댔지, 수초 레이아웃 어쩌고 대회 나간댔냐고...'
혜진이 큰 상자를 품에 안고 집으로 들어오자, 엄마는 수조 앞에 앉아 있었다. 무기력한 모습으로 거실에 누워 있기는커녕, 자신을 돌아보지도 않는 엄마가 낯설게 느껴져 혜진은 나지막하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그러나 엄마는 반응이 없었다. 어디 아픈가?
혜진은 엄마가 앉은 유리 수조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엄마!"
그러자 엄마는 혜진을 돌아보지도 않고선, 이렇게 물었다.
"얘 죽은 거 아냐?"
엄마의 말에 따라 수조를 보니 유금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어릴 적 본 죽은 구피처럼 배를 드러내고 둥둥 떠있는 것이 아니라, 물속에서 자세를 반듯이 한 채 멈춰 있을 뿐이었다.
"아냐. 자고 있잖아."
"아 그래? 다행이다. 나는 우리 집에 오자마자 죽어버린 줄 알고..."
혜진은 성질이 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릴 때 키웠으면서, 물고기가 자는지 죽은지도 몰라?"
"그땐 너희 아빠가 다 키웠잖아."
엄마는 머쓱하게 웃으며 다시 수조를 바라봤다.
그다음 날부터 엄마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유금에게 물고기 밥을 주기 시작했다.
수호 말대로 수조 안에는 새롭게 들인 장식을 따라 나름의 흐름이 생기고 있었다. 엄마가 수조 위로 밥을 부으면 다홍색 밥 알갱이들이 돌을 돌아 물결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럼 엄마는 수조 앞에 앉아서 밥이 천천히 바닥에 가라앉는 모습을, 또 유금들이 빠짐없이 그 밥을 잘 주워 먹는지를 관찰하곤 나섰다. 가끔 유금들이 놓친 밥이 있으면 기다란 나무 막대기로 밥을 밀어주기도 했다.
점점 유금들은 무심한 자식 대신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엄마의 관심이 깊어질수록 혜진은 유금을 들여다보는 일에 서서히 관심을 잃어갔다.
그런 혜진에게 엄마는 매일같이 좁은 수조 안에서 발생한 하루를 들려줬다.
"오늘은 쟤가 밥을 다 뺏어먹었어. 다른 놈이 먹다 뱉은 것도 주워 먹더라."
그러다 어느 날 혜진이 현관문을 열고 돌아왔을 때, 평소와 다른 수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수조 안에는 혜진이 처음 보는 작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푸른 등을 한 길쭉한 모습의 물고기 두 마리는 한눈에 보기에도 유금과 비교될 정도로 비실해 보였다. 박성호 씨가 유금은 다른 종이랑 합사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혜진은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엄마! 얘들을 왜 같이 넣어놨어?"
"외로운 것 같아서..."
"세 마리나 같이 있으면 됐지 뭘..."
그러나 혜진은 더는 말하지 못했다.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 보인다는 엄마의 말이 유금이 아니라 자신에게, 우리 가족에게 하는 말만 같았다.
혜진이 꼼짝 않고 있자 엄마는 쐐기를 박듯이 말했다.
"수초 좀 움직여봐. 너무 좁아서 그런가. 새로 온 애가 잘 안 움직이네."
엄마의 말대로 새롭게 들어온 물고기 두 마리는 어항 구석지에 박혀있었다. 아마도 박성호 씨 말대로 난폭한 성격의 유금이 무서워 피해 있을 것이었다.
"어차피 모레 이사할 때, 다시 정리해야 하는데 뭘 그래."
그러나 혜진은 엄마의 부탁대로 자갈을 파고 수초를 옮겼다. 새로운 물고기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숨을 만한 작은 공간도 만들었다. 숨을 곳이 하나 더 생기자 푸른 등의 물고기 하나가 그 틈으로 쏙 들어갔다. 유금 세 마리는 새로 생긴 수초 옆에 숨어있는 다른 물고기 주변을 헤엄치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서 말했다.
"이사 날에 아빠 오신대."
혜진이 눈을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그래?"
엄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와서 계약도 잘 되었나 확인하고, 이사도 도와주겠대."
혜진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아빠가 집도 직접 알아보고 계약까지 했다고?"
엄마가 맞장구쳤다.
"응, 다 해놨대. 그래서 오늘 와서 체크도 하고, 우리가 짐 옮기는 거 도와준다더라."
혜진은 유금 수초를 자갈 속으로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그러니까 아빠가 이사 준비를 다 해놓은 거네..."
혜진의 손끝에는 작은 안정감과 묘한 긴장이 동시에 느껴졌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작품 제목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