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episode 09
9. 이 도시의 콘크리트 바닥처럼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미움보다, 우리 두 자매의 미움이 더 커져 버린 건 그즈음부터였다. 그날 이후, 언니와 혜진은 아버지를 더 이상 ‘아버지’로 느끼지 못했다. 혜진이 간신히 붙잡고 있던 연민마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사를 마친 뒤, 유금 세 마리는 부서진 수조와 비닐봉지를 거쳐 집안 작은 어항에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말해 어항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물 구멍 막힌 화분이었다. 도자기로 만들어진 화분이 유금의 시야를 모두 가렸다. 이제는 거실 어디에 있더라도, 기어코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녀석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혜진이 유금을 위에서 내려다볼 때면, 언제나 튀어나온 눈 하나가 가장 먼저 보였다. 그럴 때마다 혜진은 박성호 씨의 말이 떠올랐다. '금붕어 키우면 집안에 좋은 일 생겨. 아가씨.'
혜진은 다시 <신명수 수족관>을 찾았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풀고 싶었다. 그러나, 그 골목에서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신명수 수족관>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청계천부터 기억을 더듬어 길을 걸어갔을 때, 그 끝에서 다 부서진 콘크리트가 보였을 뿐이었다.
혜진이 멍하니 그 가게 앞에 서있을 때, 할머니가 콘크리트 더미로 다가왔다. 뭐라도 건질 게 있나 뒤지는 모양이었다. 쌀포대 하나를 주우며 발로 부스러진 돌을 밀어내고 있는 할머니에게, 혜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여기 신명수 수족관 있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들어 혜진을 훑어보았다.
“거 영업 접었어. 왜 묻는가?”
“아... 그냥 손님이었는데요. 사라져서요.”
할머니는 발끝으로 깨진 유리를 밀어내며 중얼거렸다.
“그 사람? 원래 이름이 박성호라드만. 아버지한테 진 빚이 많아서 자기 이름으론 아무것도 못 했다지.”
혜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래서... 박성호 씨가?”
“친구 이름 빌려다 썼다더라. 그게 신명수인가배. 근데 그게 탈이 나서... 소송 걸리고, 법으로도 막을 수 없으니 그냥 한밤중에 가게를 통째로 부숴버렸어. 그리곤 어디로 가버렸는지 나도 몰려.”
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기 이름도 못 쓰는 사람이 가게는 무슨...”
혜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발밑의 부서진 유리를 바라봤다. 그 틈새에 마른 물자국이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마치 그곳에 유금이 한때 살았던 흔적처럼.
우리 두 자매와 아버지 사이의 단절은 점점 더 깊어졌다. 언니는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면 여행을 핑계로 잠시 집을 비웠고, 혜진 역시 전화를 끊었다. 서너 달에 한 번 걸던 안부 전화조차 사라진 지 오래였다. 여동생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무심하게 안과 밖을 오갔다.
늘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서 자식들이 자기편을 들어주길 바라던 엄마는, 그 무렵부터 우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잖니.”
“오랜만에 연락 좀 해.”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그 말에 대답하는 자식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우리를 보며 엄마는 가끔 혼잣말처럼 푸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아빠를 싫어하는 거니...”
속이 타는 그 말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평생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한 엄마 밑에서, 두 딸 역시 아버지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언니는 미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조금 흔들리는 모양이었다. 언젠가 문득 혜진에게 이렇게 물었던 걸 보면. “그래도 언제까지고 이렇게 지낼 수는 없겠지?”
그때 혜진은 이렇게 답했었다.
“언니. 시멘트를 막 부을 때는, 작은 틀로도 모양을 찍어내고 길의 흐름을 바꿀 수 있대. 하지만 다 굳어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어쩔 도리가 없는 법이야. 그저 그 위를 꾹꾹 밟으며 걸어가거나, 짚지 않고 넘어가는 수밖에. 굳어진다는 건 그런 거야.”
대답 없는 언니를 두고, 한 번 더 말한 건 어쩌면 누구보다 굳어버린 혜진의 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길을 다시 정돈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지 알아? 그 위에 한 번 더 시멘트를 부어서 굳히지.
그러니까... 이미 한 번 굳은 시멘트는 가려질 뿐,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야... ”
그래. 우리의 미움은 겹겹이 쌓여 굳어진, 이 도시의 콘크리트 바닥 같았다. 햇살도, 물기도, 감정조차 스며들 수 없을 만큼 굳어버린 마음이 그 뒤로 몇 해간 이어졌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작품 제목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