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두 번째 천둥이 울리다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episode 08

by 지은

8. 두 번째 천둥이 울리다


그날 혜진은 결국 아버지의 폭력을 마주했다. 그러나 이번에 부서진 건 문짝이 아니라 사람이었고, 그 대상은 언니였다.

혜진과 아버지가 새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언니는 베란다에 서서 천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사 날부터 물이 새다니… 이게 말이 돼?”

언니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아버지는 짐을 내려놓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그래, 내일 연락하지 뭐. 오늘은 다들 피곤한데.”
“아니, 이런 건 바로 얘기해야 돼. 사진도 보내고.”
“알았어, 알았어. 내가 얘기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버지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했다. 귀찮은 건지, 아직 억눌린 화가 남아 있는 건지 혜진은 알 수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언니가 다시 말했다.
“아빠… 근데 계약할 때 이런 거 확인 안 했어?”

아버지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그때는 멀쩡했어. 이사 당일에 물 새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그냥… 아빠 혼자 계약 다 처리해서 걱정돼서 그래.”

순간, 공기 자체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집 하나도 못 고른다는 거야?”


모든 다툼이 그렇듯, 작은 불씨를 키우는 건 결국 각자의 오랜 결핍에 있다. 아버지는 ‘가족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결핍을, 언니는 ‘아버지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결핍을 품고 있었다.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채, 말끝마다 감정을 세우며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팠다.


“그래! 내가 집도 못 고르고, 계약도 엉망이라는 거냐?”
아버지의 목소리가 단단히 치켜 올라갔다.
“아니 아빠, 그게 아니잖아!”
언니 역시 언성을 높였다.
“너희는 맨날! 내가 뭘 하면 꼭 꼬투리 잡고!”

언니가 말을 멈추자, 아버지는 들고 있던 짐을 내던졌다.
“내가 밤새 일해서 이 돈 번 거야! 누굴 믿고 이런 집을 계약했겠어?”

“여보, 그만 좀 해! 애들 앞에서 왜 이래!”
엄마의 목소리는 울먹였지만, 그 몸은 멀찍이서 얼어붙어 있었다.

“이게 애들이야?! 내가 무슨 죄인도 아니고, 집 한 채 구한 게 뭐가 그렇게 큰 잘못인데!”

거실 한가운데서 아버지의 고성이 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방금 전까지 천장에서 또르르 떨어지던 물방울 소리조차 사라진 듯, 집안이 숨을 죽였다.


그 정적을 뚫고 언니가 차갑게 말했다.

“그러니까 더 조심했어야지.”


아버지는 언니를 향해 성큼 다가가며 손가락으로 얼굴을 겨눴다.

“입 닥쳐! 네가 뭘 알아! 대학 등록금, 생활비 다 누가 대줬는데?!”

“그 이야기가 지금 왜 나와?”

“너는 항상 아버지한테 대들잖아! 이번에도 물 새는 거 가지고!”

“아버지가 다 망치잖아! 항상 엄마 울게 만드는 것도 아버지고, 나까지 숨 막히게 하는 것도 아버지야!”

그리고 순식간에, 아버지의 손이 언니의 뺨을 후려쳤다.

짧은 찰나였지만 그 소리는 공기를 찢어, 집 안을 울렸다. 언니의 얼굴이 홱 돌아갔고, 뺨이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전에 분노로 굳어졌다.

"때려! 더 때려! 아버지는 언제나 성질만 내지!"

"내가 우리 집 가장이야! 어디서 아버지를 무시하고!"

언니가 맞서려 몸을 기울이자 혜진이 재빨리 끌어안았다.

“아니야, 언니. 그만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으나, 귓가에는 심장의 거친 뜀박질만이 맴돌았다.

그것이 혜진 자신의 심장 소리인지, 언니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건 그 순간 자매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기억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방문을 걷어찼던 그날의 장면과, 천둥 같은 발소리와 함께 밀려들던 공포였다.


아버지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보이는 대로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모든 것들이 공중을 그리며 떨어졌다. 책이, 리모컨이, 접시가 부서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거실 한쪽에 놓인 투명한 물고기 봉지가 아버지의 눈에 들어왔다. 그 봉지 속에서 세 마리 유금이 불안하게 부유하며, 사람들의 숨결에 맞춰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마저 높이 치켜들더니, 그대로 힘껏 내리쳤다.

"이깟 금붕어가 뭐라고!! 아버지가 오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쾅!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물이 사방으로 튀며 거실 바닥에 흩어졌다.

맑았던 물은 순간에 더러운 발자국과 섞여 흐릿해졌다. 봉지 속에서 쏟아져 나온 유금이 바닥 위에서 허공을 향해 몸부림쳤다. 물 없는 공기 속에서 아가미가 헛되이 퍼덕였고, 그중 한 마리는 눈이 제자리에서 미끄러져 나오듯 어긋나 있었다.

언니는 차마 비명을 지르지 못했고, 혜진은 얼어붙은 채로 숨을 삼켰다. 그 순간, 거실 한가운데서 펄떡이던 유금의 몸부림이 이상하게도 사람의 몸짓처럼 보였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작품 제목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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