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episode 07
7. 어떤 미움은 연민과 공존할 수 있다.
하나뿐인 중고차로 도로를 건너는 동안, 아버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트렁크에 실린 짐들이 덜컹거렸고, 조수석의 아버지 무릎 위에 놓인 대야 속에서는 유금 세 마리가 물방울을 튀겼다. 운전하던 혜진의 시선은 자꾸만 그를 향했지만, 세월에 굳은 얼굴로 둔탁한 숨만 쉬는 아버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덜컹—
과속방지턱을 보지 못한 혜진이 차를 세차게 흔들었다. 트렁크의 짐이 요란스레 쏠렸고, 대야의 물이 아버지의 무릎 위로 쏟아졌다.
덜컹—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방지턱이 연이어 나타났다.
아버지는 젖은 무릎으로 뒷좌석의 마트 전단지를 낚아챘다. 출렁거리는 물을 막으려, 튀어나오는 유금을 가두려 대야 위에 얇은 종이 한 장을 덮었다.
덜컹—
마지막 방지턱을 넘자 혜진은 아버지의 무릎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얇은 전단지가 간신히 물을 막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린 시절 혜진의 기억을 가리려던 엄마의 7세용 한자 전지처럼 속수무책이었다. 얇은 종이가 쏟아지는 물을 막을 수 없듯, 천둥 같던 고함과 나무도 부러뜨리던 발길질도 막지 못했으니까.
그때 혜진의 머릿속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또렷이 되살아났다. "아버지가 발로 문을 차던 그날 기억하지? 우리는 그날을 잊으면 안 돼."
머릿속에서 맴도는 무기력한 외침을 지우고 싶어서였을까. 주차장 입구에서 혜진이 뜬금없이 말했다.
“아버지, 우리 밥 먹고 들어갈까?”
“왜.”
“그냥… 나 먹고 싶은 게 있어.”
아버지는 대답 대신, 대야 속 유금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도, 메뉴판에서 아버지가 좋아할 국밥을 고를 때도, 수저통에서 짝을 맞춘 수저를 올려둘 때도 혜진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엇인가에 화가 난 듯 보였지만, 그 대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테이블에 국밥이 놓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혜진은 자신이 해왔던 작은 노력들을 떠올렸다. 낯선 아버지에게 걸던 안부 전화, 무기력한 엄마에게 건네던 작은 선물, 아버지의 사소한 배려를 대신 전해주던 몇 번의 일들. 마치 할 일을 하나씩 지워가듯, ‘가족’이라는 깨진 조각을 붙이려는 시도였다. 가끔 아버지가 올라오면 단둘이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대부분은 집 밖의 호프집이었지만, 종종 아버지의 방 안에서 조용히 잔을 부딪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의 무기력한 잔소리를 피해, 부녀는 조심스럽게 술자리를 더 조용한 곳으로 옮겼다.
그런 시도 끝에 혜진은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어떤 미움은 연민과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혜진은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혜진은 그를 점점 불쌍하게 여겼다. 철이 들며 아버지가 어떤 결핍을 안고 살아왔는지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그의 고집과 가부장적 태도에 지쳐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말에 귀를 닫았다. 퇴근한 아버지를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고, “오늘 저녁 뭐야?”라는 물음에도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집에서 사는 일 역시 외롭고 고단했으리라.
아버지는 가족의 사랑을 원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사랑받고 싶어서’처럼 보였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기보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가족사진이 필요한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분명 아버지 안에는 무언가 결핍이 있었고, 이상하게도 그 결핍은 혜진 자신의 것과 닮아 있었다.
국밥을 다 비운 아버지에게 혜진은 말없이 물을 따라주었다. 그때 아버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요즘 뭐 하냐?”
“그냥 회사 다녀요.” 혜진은 짧게 답했다.
혜진과 아버지의 대화는 언제나 어설펐다. 마치 말 없는 채팅창에 이모티콘만 주고받는 것 같았다. 문장은 없었고, 진심은 제대로 닿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그 대화 속에서 혜진은 아버지를 외면하지 않으려 애썼다. 아버지를 연민한다는 건,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 사랑은 안쓰러움이었고, 때로는 책임감이었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작품 제목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