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금붕어 이사 준비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episode 06

by 지은

6. 금붕어 이사 준비


아침부터 뙤약볕이 아스팔트 위에서 부서지고, 장판처럼 눌어붙은 열기가 아파트 복도까지 스며들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먼 데서 꿉꿉한 공기와 창틀 먼지의 뜨거운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곰팡이 냄새 대신 햇빛에 달궈진 여름 냄새가 집 안을 채운 날이었다.

그날은 또 우리 집 여자들의 이사 날이었다. 아무래도 터가 좋지 않다는 엄마의 말에, 우리 집은 바로 건너편의 볕이 잘 드는 아파트로 기어코 이사를 결정했다. 볕이 없는 전셋집에서, 볕이 드는 전셋집으로. 달라진 건 그저 빛 하나뿐이었다. 그 빛을 맞이하려고, 세 여자가 같은 거실에 모여 짐을 싸고 있었다. 늘 방문을 닫고 들어가 있던 언니도, 학기 중이건 방학이건 밖으로 바쁘게 나돌아 다니던 여동생도 이 날 만큼은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그 풍경이 마치 타인의 가족을 바라보는 것처럼 낯설어, 혜진은 짐을 옮기다가도 멈춰 섰다. 자신의 가족이라는, 세 여자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자꾸만 바라보게 되었다.


이날 가장 이상했던 건 현관문이었다. 이삿짐센터가 드나든다며 엄마는 아침부터 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뜨겁고 축축한 바람이 문턱을 넘어 거실로 밀려들었다. 늘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오늘만은 한낮의 열기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혜진은 그 문을 넘나들며, 이삿짐센터로 부치기 어려운 작은 짐들을 중고 QM6에 나르고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낡은 사진 앨범, 반쯤 남은 세제통, 모서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진 국어사전, 세 번밖에 쓰지 않은 전기 주전자, 주황색 손잡이가 달린 오래된 우산 통 하나, 바닥에 먼지가 앉은 화분 두 개. 그렇게 작은 짐들이 하나씩, 땀 묻은 팔에 안겨 차로 옮겨졌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본 순간, 아버지가 도착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턱을 넘을 때마다, 혜진의 시선이 자꾸만 시계로 향했다. 시계의 초침이 흐를수록, 햇빛이 땀에 젖은 팔을 더욱 뜨겁게 때렸다. 그 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오래된 기억 속 낯선 아버지를 맞이해야 할 것만 같은 묘한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취해서 비틀거리던 아버지의 모습과. 어머니의 고함을 받아내던 순간까지도.

가장 마지막으로 옮길 것은 금붕어 수조였다. 중고 QM6에 수조를 싣기 위해, 혜진은 현관문에 서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금붕어 수조 이리 건네줘." 그러나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고 수조 앞에 앉아 있었다.

“죽은 것 같아.”

“자는 거겠지.”

“아닌 것 같아.”

반복되는 대화에 짜증이 치밀어 고개를 들었을 때, 언니와 여동생이 혜진과 엄마의 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처음 보는 앞모습을 하고선, 익숙하도록 무심한 표정으로 말이다.


엄마는 금붕어를 자세히 보려는 듯, 기어코 수조를 움켜쥐더니 한쪽으로 기울였다.

와장창- 그 순간 수조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머. 어떻게 해. 어떻게 해!!"

엄마의 고함과 함께, 차가운 수조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순간, 열기에 눌린 거실 공기 속에서 비린 냄새가 훅 치올랐다. 그 냄새는 어린 시절 놀이터 쇠사슬의 차가운 감촉을 끌어올렸다. 혜진은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는 바닥을 기어 다니며 유금 세 마리를 주워 붉은 대야에 옮겼다. 베란다에서 세찬 물줄기가 물고기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지만, 물방울이 타일 위에서 튀어 오르며, 달궈진 공기가 식었다. 언니와 동생은 깨진 유리를 치웠다.


그때, 아버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푸른 체크 셔츠, 볼록 튀어나온 배, 그리고 예전보다 굽은 등. 아버지는 튕겨진 유금을 살리기 위해, 또 깨진 수조를 치우기 위해, 저마다의 이유로 정신없는 여자들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빠."

"금붕어 깨뜨렸나."

혜진은 아버지를 이제라도 반겨야 하는 건지, 깨진 수조를 먼저 치워야 하는지 알 길이 없어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근데. 이 놈. 죽었나 보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아버지는 발끝으로 바닥을 건드렸다. 파란 금붕어 한 마리가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고, 그 옆엔 다른 한 마리가 겨우 남은 숨을 파닥거렸다.

엄마가 유금 세 마리를 살리려 애쓰는 동안, 파란 등의 물고기 두 마리가 마룻바닥 위에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 이 이야기는 현대 가족의 서사를 담은 허구의 소설로, 모든 인물과 사건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본 작품은 1부 〈한강에는 금붕어가 산다〉, 2부 〈수관의 수줍음〉, 3부 〈해묘 군락〉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입니다. (작품 제목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전 06화1-5 목판 흉터 위의 학습 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