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초록의 초록

가장 사랑하는 계절을 자로 재고, 가위로 오려, 이 글에 담아 건넵니다.

by 지은

사람마다 여행에서 느끼고 싶은 것이 다를 테지만, 나는 늘 평화롭게 초록을 감상하는 여행을 꿈꾼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초록을 마음껏 바라보고, 녹음 사이로 스미는 햇살을 느끼며,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는 일.

그런 여행이 있다면, 초여름의 무주가 제격이다.


6월 초 무주는 굽이진 산골을 따라 연녹색과 짙녹색의 결이 겹겹이 펼쳐진다. 그 풍경을 따라 차를 모는 것 자체가 여행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나와 함께 바람을 따라 찻길을 달리던 남자친구 구가 문득 말했다.

"무주의 초록이 유독 아름다운 건, 산만 있는 강원도와 평야만 펼쳐진 전라남도와 달리, 산과 들이 교차하며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야."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무주를 ‘초록의 교차로’라 기억했다.


그리그 그 초록의 교차로 끝자락에서 문득 나는 생각했다.

아, 나는 역시 초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어쩌면 초록을 수집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KakaoTalk_Photo_2025-08-07-19-25-15.jpeg 초록이 겹겹이 쌓인 무주의 한 드라이브 길




내가 사랑하는 ‘초록’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파랑과 노랑의 중간 빛’을 뜻하는 초록(草綠) 외에도, 초록(抄錄)이란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 적는 기록’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잘라내어 누군가의 마음에 닿게 하는 일. 그런 글쓰기다.


그렇다면 내가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일도 같다.

초여름의 초록(草綠)을 섬세히 골라내어, 당신에게 보여주는 초록(抄錄).

내가 사랑한 장면들을 당신과 함께 다시 바라보는 기록.


이제 가장 사랑하는 계절을 자로 재고, 가위로 오려, 이 책 속에 담아 건넵니다.

우리 함께 사랑해요. 초여름의 초록을.




*이 글은 앞으로 이어질 연재 글 <초록을 수집하는 초여름>의 프롤로그입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