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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Feb 06. 2023

밥 좀 같이 먹자니까.

무뚝뚝한 가족이 서로를 사랑하는 법

나는 한때 고깃집에서 서빙알바를 한 경험이 있다. 서빙알바를 하다 보면 다양하고 신기한 능력들이 생기지만 , 내가 오늘 이야기할 능력은 가족의 풍경을 예측하는 능력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주말 저녁 고깃집알바 시간대에는 정말 다양한 가족이 가족외식을 하러 나온다. 내가 일했던 고깃집은 서빙직원들이 서빙과 더불어서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 시스템이었는데 , 이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 과정에서 다양한 가족들이 나누는 각양각색의 대화를 듣게 된다. 화기애애해서 미소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족. 반대로 무뚝뚝하게 눈앞에 있는 음식들과의 싸움을 묵묵히 하는 가족. 가족이 다들 모여있을 때는 왁자지껄인데, 아버지와 아들만 남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긴 침묵이 이어지는 가족. 술을 마시면서 대판 말싸움을 하지만 왠지 호탕한 말속에서 서로를 애정하는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가족들까지.  


이렇게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다 보니, 서빙을 하면서 쓱쓱 쳐다봐도 "저 가족은~ 저런 풍경의 패밀리이구만"하고 예측이 가게 되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도 우리 가족의 풍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 가족의 풍경. 이제는 익숙해져서 깊게는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우리 가족의 풍경은 어떤 풍경일까. 우리 가족의 풍경은 슬프게도 내가 바라는 화기애애한 풍경보다는 같이 모이면 어딘가 어색해서 숨이 막히는 그런 가족이다. 뭐라고 해야 하나. 서로를 사랑하지만 , 왠지 같이 있으면 어색해지는 그런 관계라고 해야 할까.  


속정은 깊어도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 서툰 우리 아버지,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는 형. 사회적으로는 극 I인 어머니와 내가 우리 가족에서의 풍경에서만큼은 날아다니는 E가 되어서 주저리주저리 이 어색하고 숨 막힌 분위기를 물리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그럴까. 성인이 되어서 각자의 스케줄이 생긴 이후에는 우리 가족은 영 밥을 같이 먹은 적이 없다.  누가 밥을 같이 먹어서 가족이란 말을 하던가. 우리는 불문율처럼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면 각자의 방에서 식사를 해결하고는 했다.


식당알바를 시작하면서 화기애애하게 밥을 같이 먹는 가족들을 마주하다 보니. 나는 왠지 그 이후부터 서운한 마음을 달아서 가족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밥 좀 같이 먹자니까". 나는 열심히 가족들을 쫓아다니며 우리는 가족이니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어야 한다고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가족들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면서 열심히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그 표정 속에서는 "얘가 갑자기 왜 이래."라고 적혀있다. 나는 서운함이 폭발하여서 하루는 "이제 우리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밥을 같이 먹어야 해"라고 선언해 버린다. 하지만 나의 호기로운 그 선언이 증명한 것은  20년을 어색하게 밥을 먹어온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같이 먹는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 수는 없다는 웃픈 사실이었다. 그 이후에는 나도 자포자기하는 신경으로 "밥으로 가족을 화기애애하게 만들기"프로젝트를 포기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날은 오랜 시간의 대학교 자취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날은 웬일인지 아버지가 오랜만에 요리솜씨를 뽐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보통 직장에서 저녁을 먹고 오시니 아버지의 저녁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나를 보더니 이내 무뚝뚝하게 "좋아하는 수육 해뒀다. 손 씻고 와서 먹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그제야 우리 가족의 풍경 속 따스한 사랑을 발견하다. 우리 가족은 앞에서 말하기 부끄러운 사랑을 그렇게 표현하는 듯싶다. 주책맞게도 왈칵 눈물이 올라온다. 눈물을 숨기고 툴툴대며 장난으로 이야기한다. 살찌면 아빠책임이야~ 아버지는 그래도 뭐가 그렇게나 좋은지 한없이 자애롭고 순박한 미소로 껄껄 웃는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 이제는 화기애애 밥을 먹는 가족보다는 시크한 개인주의자적인 풍모를 물씬 풍기는 트렌디한 우리 가족의 풍경을 사랑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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