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예의를 갖춘 백벤드 (backbend)

요가실록: 포레스트 요가 수련 이야기

by 지반티카


똑, 똑.


또옥, 똑.


창문에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눈을 감았다. 비 오는 아침에 바로 일어나는 것은 비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비에게 예의 바른 사람이 되고, 오늘은 일찍 일어나 보자던 나 자신과의 약속은 어긴 사람이 되었다.


과연 나는, 예의 바른 사람인가?


이불속에서 꼼지락대다 겨우 일어나 후딱 아침만 먹고 나왔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던 집 청소도 못하고 나오다니, 불량한 하루의 시작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오늘이 주말의 시작인 토요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수련에는 레몬 언니, 체리 언니, 튤립 언니가 모두 왔다. 그런 날은 드문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익숙한 반가움과 오랜만에 보는 멋쩍은 어색함은 내 마음속에서만 북적이는 감정의 인파이다.


엘보 투 니. 복부 운동을 집중해서 제대로 하면 마음까지 정화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간밤으로부터 이어진 피로와 여러 생각과 감정으로 꽉 차 있던 마음은 엘보 투 니 (Elbow to Knee)와 앱스 위드 롤 (Abs with Roll)로 복부를 깨우면서 비워졌다. 코어를 깨우면서 머리까지 숨이 쉬어지는 순간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산에 바람이 불며 안개가 걷혀 가려졌던 단풍이 선명하게 보일 때처럼 개운하다.


배에 손을 대보니 따뜻해져 있다. 전기방석을 틀고 누워있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수련할 때 하고 있는 것에 제대로 집중만 해도, 복잡한 마음은 금방 깨끗해진다.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수련에선 그게 특히 잘 된다. 요가 선생님이라면서 어딜 가서 수련해야 되냐고, 집에서 매트 펴놓고 혼자 요가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룹 수련은 집에 가서 혼자서도 그런 흐름을 이어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앱스 위드 롤. 날씨가 추울수록 복부 운동을 많이 하면 몸에 열기가 빨리 생긴다.


그룹 수련에선 자꾸 잘 안 되는 부분을 놓치는 것을 하기 어렵다는 장점도 있다. 혼자 하면 잘 안 되는 부분은 계속 놓치기가 쉽다. 반면, 그룹 수련에서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면 뭐가 잘 안 되는지가 느껴진다.


브릿지에서 비이라아사나를 하는 동안 수일 선생님이 엉덩뼈 근육과 다리 힘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브릿지 (Bridge)에서 핸즈온을 받을 때 오른쪽 배를 잘 못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런지를 할 때는 엉덩뼈 근육을 제대로 쓰고 있지 못했다.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도 하고, 앞으로 나와있는 다리 쪽 엉덩이만 삐죽 올라가 있기도 하고. 이렇게 놓친 작은 부분들이, 눈덩이처럼 크게 불어나 오른 무릎에 쿵, 하고 박혀 무리가 온 것일 것이다. 다행히 지난주 수련 이후로, 무릎은 훨씬 괜찮아졌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기도 하지만, 생활하면서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기울어질 때마다 무릎이 무거워진다는 걸 알고 무게 중심을 옮겨온 나 자신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다.


자세를 어떻게든 해보려 몸을 욱여넣는 대신 잘 안 되는 부분들을 잘 챙겨서 움직이니 무릎이 멀쩡했다. 스트랩을 발에 걸고, 롤 위에 배를 대고 엎드린 채 발에 건 스트랩을 당기며 상체를 들고일어나는 보우 자세도 오늘은 버겁지 않았다. 팔꿈치를 바깥으로 벌리면서 올라오려면 어깨와 목에 힘이 안 풀려 온갖 애를 써야 한다. 하지만, 팔꿈치가 위를 향하게 윗팔을 그대로 위로 들어서 올라오면 훨씬 가볍다. 배와 가슴이 알아서 열리니, 자세를 해내기 위해 허리를 꺾거나 가슴을 젖힐 필요도 없다. 자세에서 나와서도 허리 아플 일도 없고. 나에게 예의를 갖춘 백벤드 (backbend: 후굴)였다.



런지 백벤드 위드 스트랩 (Lunge Backbend with Strap). 스트랩을 이용한 보우로 들어가기 전에 이 자세를 했다.


그냥 하면 되는데. 해내겠다고 우격다짐으로 숨을 참아가며 ‘헙-!’ 하고 억지를 쓰는 것만 하지 않아도 수련이 훨씬 가벼워진다. 삶도 그렇게 살면 되는데. 일상 어디서 숨을 참으면서 나 자신에게 예의 없게 굴고 있는 걸까?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 떠올랐다. 수련을 아무리 하고, 어려운 자세를 얼마나 잘할 수 있어도 나 자신을 향하게 되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아무리 수련해 봐야 소용이 없다. 나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


한 동생 하고만 인사를 짧게 나누고 집에 돌아왔다. 언니들이나, 수일 선생님은 인사를 하고 가지 않았다고 나를 예의 없게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수련에서 몸을 깨우며 만들어낸 흐름을 집에 와서도 끊기지 않게 잇는 것이다. 가볍게 먹고 싶어서, 어제 먹고 남은 음식을 간단히 먹고 식사를 끝낸다. 토요일마다 요가실록을 발행하는 것도 나와의 약속이었으니까, 지킬 수 있도록 내용을 브런치에 옮기며 준비한다. 오후엔 나무가 많은 공원에 산책을 갈 것이다. 그러면 피로가 좀 풀리겠지. 나 자신에게 예의를 억지로 갖추려 애를 쓰지 않겠지. 또는,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고 나 자신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겠지. 타인이 내게 그렇게 해서 실망하고 상처받았던 어느 과거의 경험을, 나 자신에게 재현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비가 개었다. 이제, 아침에 하지 못했던 청소를 할 시간이다.



2023.10.21 요가실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