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서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커리어 컨설팅을 할 때 많이 들었던 말,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차라리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정해줬으면 좋겠어요
공부가 재미있었다,
혹은
1등 하는게 좋았다,
혹은
공부 잘한다고 칭찬 받는게 좋았다,
등등
서울대 재학생들이 서울대에 온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본인에게 주어진 공부라는 과제를 성실히 수해해서 서울대에 도착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울대까지는 서울대라는 목표가 명확히 보였기 때문에 그것을 향해 달려왔지만 대학교에서는 목표가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부모님은 이제 니가 알아서 하라고 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라고 했다,
혹은
부모님이 권해준 직업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작 내가 공부하고 있는 전공에는 마땅한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어릴적 꿈이라고 생각한 그 직업은 생각보다 될 확률이 너무 낮았다,
혹은
4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대학교에 와서도 열심히 공부했는데 취업 외에는 별다른 길이 없다.
취업을 하기에는 준비된게 없다.
이제 어떻게 하지.
명확한 목표가 없는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할 문 앞에 막막히 서있다. 미래는 뿌연 안개로 자욱하다. 처음 겪는 막막함이다. 처음 해보는 커리어 고민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커리어 고민은 고통스럽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댓가가 결국 이것인가 라는 인생 전체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진다.
스스로를 우유부단하다고, 나의 전공 선택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때부터 그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었어야 했다고, 자기 자신을 자책한다.
25살의 나도 그랬다. 대학교 4학년이 된 그 해 1월, 사회로 나가야 하는 현실이 갑자기 내 등 뒤로 바짝 붙었다. 이제 곧 있으면 너도 너가 알아서 살아야 한다고 내 등을 조금씩 밀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보았다. 미국으로 공대 석박사 공부를 떠날까, 한국에서 공대 석사를 할까, 복수전공 하고 있는 경영학으로 취업할 수 있을까, 변리사를 공부할까, 바로 취업은 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내 미래를 결정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엔지니어로 지원한 회사 공채에 합격했고 그렇게 나의 미래가 덜컥 결정되었다. 미래가 조금 선명해지고 나니 그 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풀타임 MBA에 갔고 다시 뿌연 미래를 앞에 두고 결정을 해야 했다. 두번째 커리어 고민을 하는 과정도 고통스러웠다. 여러 가지 냉정한 현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대의 첫번째 커리어 고민과 종류는 조금 달랐지만 고통스러운건 마찬가지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미래는 일시적으로 선명해지기도 했지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뿌연 상태가 계속 되었다.
커리어 고민을 하고 있는 서울대 학생들을 바라보며 '나도 옛날엔 그랬지 그래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지금도 나도 그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들과 나의 다른점이라면 커리어 고민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다. 나는 커리어 고민이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커리어 고민은 인생을 살면서 늘 함께 해야 하는 동반자가 아닐까 라는 확신이 점점 강해지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바라는 것은 나의 내공이 더 강해지길 바란다. 지식과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마음은 더 여유로워지고 자기 자신에겐 냉정하고 타인에겐 관대해지는 등 성숙하고 강한 내공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노력하고 있다.
written by 커리어 생각정리 책, '불안과불만사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