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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Feb 06. 2021

일을 사랑해도 되는 걸까?

일을 좋아하는 마음에 잡아 먹히지 않고 싶어

가끔씩 내 생활을 한 번씩 찾아와 돌을 던지고 가는 "인생이라는 게 정말 여기까지인 걸까?" 라는 질문. 어려운 취업 시장을 비집고 겨우 자리를 찾았고 눈치보는 것이 제1의 능력이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조금 적응했다는 느낌이 들던 그 때에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이렇게 때에 맞춰 출근해서 때에 맞춰 퇴근하고 때에 맞춰 주말을 기다리고 때에 맞춰 월급을 기다리는 게 내 인생의 큰 밑바탕인 걸까, 라는 질문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곤 했다.


사람들은 내게 회사에서는 최소한만 하고 회사 밖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늘 말해주었다. 너무 잘하지 말라고, 적당히 하라는 말도 해주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잘한다는 이미지가 심어지면 내 손해라고, 결국 모든 일이 나에게 오게 될 테니 요령피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열심히 해봤자 결국 사장 배불려주는 일인데, 내가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만 하라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더 궁금해졌다. 내 인생을 사랑하려면 내 하루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회사원으로서 보내는 최소 8시간의 시간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학교에서는 '자본'을 믿지 말라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라고 배웠다.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착취 전략을 관찰하며 어떻게 그에 저항하며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 것인지 생각하라고 배웠다. 입사하고 나서는 회사를 사랑하면 안된다는 것은 간접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느껴왔다. 사회면을 뒤덮는 권고 사직 사례, 내가 목격하게 되는 몇몇의 사라진 얼굴들, '좌천'되는 사람들... 일도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 역시 계속해서 받아왔다. 회사 일과 관련한 공부를 하며 주말을 보냈다고 하거나 자진해서 일을 했다고 하면, 돌아오는 안타까워하는 반응들에서 자연스럽게 학습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 하루의 8시간을 사랑하고 싶다는, 이 시간 안에 밥벌이 이상의 무언가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즉 나는 내 인생이 9-6를 지키는 방어 전략 이상이기를, 무언가 의미 있기를, 기존과는 다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정말 이런 걸 바래도 되는 걸까? 일을 사랑한다는 건 종국에는 그를 괴롭게 만든다.


내가 첫 회사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감명 깊은 것은 매니저들이 당시 우리 조직을 너무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조직과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을 보며 나도 신뢰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도 회식 자리에서 "이 회사는 돈을 못 벌 지언정, 100년 동안 지켜온 가치에 먹칠하는 짓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을 기억한다. 그 자부심은 정말로 대단했다. 그렇지만 회사에 대한 이 일방향적 사랑은 칼이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정말 슬프게도. 최근에 전 매니저를 만났다. 나는 새 회사로 가서 적응을 하고 그는 같은 회사 같은 자리에서 계속 일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퇴사할 때 정말로 화가 났다고 했다. 남아서 이 조직을 바꿔줄 수는 없었던 걸까 원망스러웠다고도 했다. 그는 스스로 무언가 바꾸어보고자 노력했지만 연이어 실패를 경험하고, 조직을 이탈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말 오랜 시간 무기력을 학습했다. 내가 보기엔 정말 출중한 사람인데 본인 나이에 어딜 가냐며 (그렇게 나이가 많지도 않다) 그냥 적당히 버티다 은퇴하겠다고 했다. 그의 고통은 아직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에 별다른 위로를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입 안 한 가득 씁쓸함만 남았다. 일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 마음에 잡아먹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마음에 잡아먹히지 않으면서 일을 잘 하고 싶은 내 마음을 충분히 다해가며 일할 수는 없을까? 나는 이미 일을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주식을 배우는 게 근로 소득을 높이는 것보다 인생을 더 낫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일을 좋아하고 잘하면서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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