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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Apr 11. 2021

유투브에 얼굴 걸리는 여자의 설움

나는 '얼굴' 걸고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의 결과로 유투브에 내가 발표하는 영상이 업로드된다. 그렇게 발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도 얼른 저렇게 멋있게 발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랬다. 3일 전 목요일, 내 첫 발표 영상이 유투브에 올라왔다. 대기업들을 위한 DevOps 프랙티스 적용 방안에 대한 내용이었다. 여느 때처럼 노동요를 틀기 위해 유투브에 들어갔는데, 내가 본인인 것을 어떻게 귀신 같이 알았는지 그 영상이 최상단에 추천 영상으로 떴다. 업로드 된 지 30분 밖에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영상이었다. 신기해서 클릭해봤다. 아직 댓글창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댓글 개수만 보였는데, 댓글이 하나가 달린 것 아닌가? 30분 전에 올라온 영상에 벌써? 회사 동료들이 장난스러운 응원 댓글을 달았으려나, 하는 마음으로 스크롤을 내려보았다. 웬 외국 사람이 00:18 타이밍에 한 링크를 달아놨다. 18초면 내가 자기 소개 정도 했을 땐데 뭘 달아놓은거지? 싶어서 클릭해봤다. 회사에서 열었으면 낯부끄러웠을 성인광고가 떴다. '망가' 스타일로 풍선 같은 가슴을 달고 있는 두 여자가 경찰, 간호사 유니폼을 입은 채 채찍을 들고 있는 사이트였다. 순간 벙쪘다. 같이 태그된 00:18 시점을 클릭해봤더니 내가 고개 숙이고 인사한 뒤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 그 시점이었다. 어떻게 30분 만에 알고 이렇게 댓글을 달러 왔을까? 봇이었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분들이 발표하신 영상에도 들어가봤다. 전혀 댓글이 없었다. 그들은 40대 남성들이었다.


내가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 순간을 굳이 잡아 성인광고를 단 것, 같은 시리즈 다른 발표자의 영상에는 댓글이 달리지 않은 것, 우연이었을까? 이렇게 마음 한 켠이 싸늘해지는 경험을 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우리 회사에는 This is My Architecture라고, 회사 사람 한 명이 MC로 진행을 하고 고객 한 명을 초대해 그들의 아키텍처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 시리즈를 만든다. 내가 관심 있는 서비스가 소개된 영상이 있어서 클릭해서 들어갔는데, 이 영상은 드물게 우리 회사 여성이 호스트로 등장했다. 이 영상은 유독 댓글이 많길래 또 스크롤 다운해서 읽어봤다. 함께 출연한 남자 고객이 부럽다느니 등등 입에 담고 싶지도 않은 성희롱이 가득했다. 영어로. 충격 받은 채 일기장에 한탄을 한바탕 적어놓고 잊고 살았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돌아가보니 그 영상의 댓글은 결국 사용이 중지됐다. 


기술적인 전문성을 갖추고 진지한 태도로 업무에 임하는 여성들은, 전문인이기 전에 성애적 대상으로 인식된다. SNS의 시대, 회사의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여성은 이렇게 성적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채널이 더 많아졌다. 다른 동료들처럼 이런 일에 신경 끄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은 이번 생에 안 오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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