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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Jul 31. 2021

90년대생, 부동산 시장에 힘차게 입장

나를 자꾸만 씁쓸하게 만드는 아파트들

나는 그저 2년에 한 번 이사를 다니지 않고 싶을 뿐이다. 평생 나고 자란 서울에서. 촛불을 등에 업고 등장한 이번 정권은 도저히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는 부동산 정책들로 내 이 소박한 소망을 절대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꿈이라는 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든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겠다든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볕이 잘 드는 서울에 있는 집에 사는 게 꿈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건 이제 내 꿈이 되었다. 꿈이라는 게 손에 쥐이는 무언가로 바뀐다는 게 진짜로 어른이 되는 과정인걸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마저 사치다. 이 현실에 눈을 꼭 감고 회사 일에 몰두했다. 다른 모든 것이 귀찮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이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성취에 집중하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 중 한 명이 너 일만 할 때가 아니다 재테크 공부도 해야 된다고 하도 뭐라고 해서 최근에 부동산 유료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몇 십 만원을 내고 부동산 강의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문화충격이었다. 이 강의를 들으면 온라인으로 스터디할 수 있는 조를 짜준다. 그 과정에서 이 강의를 온오프라인 합해 거의 10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듣고 있다는 것에 2차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조원들을 만났을 때에 내 또래의 사람이 많다는 것에 3차 충격을 받았다.


약 한 달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부동산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현실의 벽에 다시금 놀랐다. 높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제 앞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돈을 모으고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는 현실적이고도 대략적인 그림이 잡혀서 큰 도움이 됐다. 유료 강의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내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강의에서는 시세 차익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내 예산을 파악해 합리적인 내 집 마련을 하는 법을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여러 지역의 입지를 평가하고 그 중에서도 아파트들을 평가하는 법을 배운다.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봐서 무엇을 평가하라는 큰 채점표를 알려주는 것이다. 처음에 ‘앗’하게 된 부분은 입지 평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학군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학력성취도평가라는 것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게 왜 필요한지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나는 중학교 때는 사람들이 ‘공부 못하는 학교’라고 부르는 곳을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공부 잘 하는 학교’라고 부르는 곳을 다녔다. 당시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 시절 봤던 많은 시험 중 하나였던 이 학력성취도평가라는 게 그 공부 잘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니. 내가 뭔지도 모르고 봤던 이 시험에서 모든 학생들의 점수를 종합하여 평균 이상인 학생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지고 그 학교의 수준이 결정됐다. 선생님들이 갑갑할 때 “수준 떨어지는 애들”이라고 했던 게 아, 이런 의미였구나 싶어 다시 괜히 마음 한 켠이 시렸다. 지금은 이 학력성취도평가는 폐지됐다. 많은 90년대생들이 실패하지 않는 부동산 매입 방법이나 부자가 되는 법보다는 나를 성적이라는 기준으로 한 줄로 세워버리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저항하며 살고 있는지를 먼저 배운다.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이 자본주의 시장을 욕하고 그에 적응하지 않고 살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은 나 같은 생계형 직장인에게는 패망의 지름길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사실 굉장히 비싼 거였구나, 나에게는 사치였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걱정 없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은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적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거니까. 그 정치적 올바름을 좇아서 산다는 것은 사실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않아도 되는, 윗 세대의 부를 물려 받은 사람들에게 가능한거였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다른 재미있는(?) 것은 주변 환경을 분석할 때 상가에 어떤 가게들이 들어와있는지 유심히 보라는 것이었다. 그 상가의 모양새를 밖에서 보면 그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이었는데, 예를 들어 상가에 건강원, 의료기기 가게, 병원들이 많다면 그 주변에 노인들이 많이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다. 노인이 많은 동네는 상대적으로 경제 활동하는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집값이 잘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주의 깊게 볼 가게들은 네일샵, 애견샵 같은 것들이 있다고 한다. 경제력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라고. 이런 말을 들으면 애견샵이 가져오는 사회적인 병폐가 무엇이 있는지 내가 기존에 고민했던 것은 전혀 쓸모가 없어진다. 우리 할머니를 보면서 노인들과 같이 사는 동네는 어때야 할까 속으로 생각했던 것 역시 쓸모가 없다. 여성 착취적인 소비 구조 안에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다른 여자들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을 알싸하게 하는 네일샵의 불편함 역시 접어두어야 한다. 한 지역을 빠르게 프로파일링 하는 정보로만 활용하고,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여 내게 유리할지 계산기만 두드린다. 다시 말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은 비싼 가치였다. 내가 가져도 되는지 모르겠는 정도로.


다른 한 편, 부동산 투자 시장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 놀랐던 건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산다는 것이었다. 미모 (미라클 모닝) 을 실천하며 새벽 4시에 400명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굿모닝 인사를 남기고 매일 경제기사 스크랩을 보내주고 꿈 100번 쓰기를 하고…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투자 관련 서적 100권을 읽고 공부하라는 것도 대단히 새로웠다. 나에게 독서는 주로 한국 문학이고 공부는 IT 기술 공부여서, 사실 실용서와 자기계발서를 은근히 무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멘토와 강사들은 ‘몰입’하라고 계속해서 말한다. 간절함을 가지라고도 한다. 나는 갑자기 고3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때 선생님들이 했던 말들이 딱 그랬다. 희한한 기시감을 느끼며 학교 다니는 내내 모범생이었던 나는 이번에는 낙제를 코 앞에 두고 있는 문제아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같이 따라가려고 했다. 근데 도저히 안됐다. 다른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매주 6시간에 육박하는 강의를 듣고 정리하고 과제도 하고 카페에 글도 남기고 다른 사람들의 카톡 질문에 답변도 남겨주는거지? 어떻게 임장을 다녀오는거지? 들어보니 사람들은 회사를 정말 미니멀하게 다니고 있었다. 여러 유투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나는 내가 이렇게 목숨 걸고 달리고 있는 커리어라는 게 우선순위가 더 낮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시간의 우선순위를 나는 커리어에 올인하고 있다면 그들은 투자에 올인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근로소득 만으로는 내 100년 간의 인생을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런 말을 한 달 정도 반복해서 들으니 새삼스럽게 커리어 역시 대단히 사치스러운 일임을 깨달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왜 이렇게 부자들이 많은지 늘 궁금했다. 내가 얻어타는 차의 8할은 외제차였고 사람들의 악세사리는 명품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딱 알아보는 명품들이었다. 강남에서 여의도로 출퇴근 하려니 어렵다는 말도, 정자에서 오기 힘들다는 말도 문득 스쳐가는데 그걸 듣던 시점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회사에 열중할 수 있는 사람들은, 100년의 인생을 충당할 자본이 이미 있는 사람들이었다. 근데 나는 그렇지도 못한 주제에 회사와 회사에서 더 일을 잘하기 위해 공부하는 데에 시간을 쏟고 있었다. 나는 커리어에 집중하면 안되는 상황인데, 회사일을 태만하는 게 하는 것 같다며 다른 사람들을 평가질했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참 우스웠다. 메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를 아시는지? 나는 하위의 욕구들이 충족도 되지 않았는데 자아실현이라는 대단히 사치스러운 것을 좇으며 살고 있었다. 나는 괜히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 보통의 MZ인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사실 나는 대단한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닌데, 서울에 집이 있고 싶으면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라는 게 나를 괴롭게 한다. 멘토, 강사들은 포기하지 말고 계속 공부하라는데 그러면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데, 그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지금 나 스스로를 정의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여전히 갖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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