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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Jul 18. 2023

아마존에서 4년, 3팀, 2승진, 1해외발령

정말 극혐이지만 나와 아마존의 러브스토리라고 밖에는 설명 안 되는 글

7월은 나에게 특별한 달이다. 첫 회사에 입사한 것은 2015년 7월 6일, AWS에 입사한 것은 2019년 7월 29일, 눈물 쏙 빼는 전설의 Associate SA 프로그램을 졸업하고 정식 SA가 된 것이 2020년 7월, 마침내 내 이름 앞에 Senior 가 공식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 2023년 7월. 아마존은 평균 근속연수가 2년이래, 그만큼 힘들다는 건데 각오 됐어? 내가 이직 결심을 알렸을 때 당시 회사 사람들이 해준 말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나는 뼈가 갈릴 정도로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성장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들어가서 1년 정도 되었을 때 나는 알았다. 일 많이 시키고 직원들에게 무례하기로 유명한 이 회사를, 나는 어쩌면 꽤나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오래 다닐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이런 무서운 말들을 들으며 2019년 한국에서 Associate SA로 입사해서 4년이 지났다. IT업계의 특전사 훈련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ASA 프로그램을 졸업하고 스타트업, 중소기업 규모의 고객들의 AWS 클라우드 도입을 돕는 팀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2년 반을 보내고 미국으로 넘어와 Buy with Prime 팀에 왔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승진을 했다. 이전 회사보다 훨씬 수평적인 조직이라 내부 계급이 별로 없는 탓이지만서도 인턴들과 똑같은 레벨로 입사해서 지금은 전 회사에서 모시던 상무님과 얼렁뚱땅 같은 레벨이 됐다. 최소 겉으로 보기에나마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나는 아마존을 아주 마음속 깊이 사랑한다. 증오하게 되는 때도 생겼지만 그 역시 내가 이 회사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 글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그리고 아마 발행하고 나서 1년 뒤에 다시 찾아보고는 내려야 할지 몇 번이고 고민하게 될, 아마존을 향한 나의 러브레터이다.


내가 아마존을 사랑하는 세 가지 이유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존경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게 해 준 것이다. 내가 그동안 AWS Korea에서, 지금 팀에서 만난 시니어들은 “나는 10년이 지나도 저분들 같아질 수 없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았다. 그들의 기술적인 수준, 전문적인 태도 같이 업무에 필요한 역량 때문에도 압도되었지만, 사실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그들의 삶의 태도였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은퇴를 생각할 때가 되어도 여전히 나와 같은 속도, 내가 감히 쫓아갈 수 없는 깊이로 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세. 어리고 되바라지고 에너지만 넘치는 젊은 사람들도 진심으로 존중하고 우리들로부터 배우려고 하고 ‘후배’가 아니라 ‘동료’로 믿어주는 모습. 내가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나이들 수만 있다면 잘 살았다고 확신 가득하게 말할 수 있다. 나와 비슷한 연차, 같은 레벨에 있었던 사람들도 존경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창의적이고 몸을 사리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같이 돌진하면서 나는 더 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함께 일하면서 내가 힘이 빠질 때, 실수하게 될 때 “미안해요..”라고 말하려고 고개를 들면 그들은 이미 내가 놓친 부분들을 모두 채워놓고 뭐 그런 것으로 사과를 하냐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을 했지만 서로의 성취에 진심으로 손뼉 쳐주었다.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영원히 의심할 것이지만, 그들이 괜찮다고 내가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나는 그 말을 믿을 것이다. 내 자기혐오 보다 그들을 향한 신뢰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기회의 규모가 다른 회사라는 점이다. 입사한 이래로 나에게는 글로벌한 기회가 숨 쉬듯 주어졌다. 내가 더 이상 기회를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었고 그저 일상적으로 주어지는 일들마저 전 회사에서는 내가 꿈꿔야만 했던 기회들이었다. 더 큰 고객을 만나는 일, 모든 조직원을 대상으로 내가 배운 것을 나누는 일,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고객들을 만나고 지평을 넓히는 일. 다른 곳들처럼 아주 명명백백하게 Role and Responsbility 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애매모호한 회색지대가 있다는 것 자체가 기회였다. 나는 개발자처럼 일할 수도 있었고 영업처럼 일할 수도 있었고 PM처럼 일할 수도 있었다. 나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던 순간부터 시키는 일은 괜히 하기 싫고 일을 만들고 다니는 천덕꾸러기였는데 나 같은 사람들에게 아주 딱 맞는 회사였다. 덕분에 나는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내 스콥을 훨씬 벗어나는 일을 많이 하고 다닐 수 있었다. 작년에 리인벤트를 진두지휘해야만 했던 것도 한 예다. 내가 다른 회사에 다녔다면 나에게 오지 않았을 기회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음에 몇 번이고 감사한다.


세 번째는 peculiar 하다고도 말하는 아마존의 기이한 문화이다. 나는 꽤나 예의 있게 얘기한다고 생각했던 때에도, 지나치게 직설적이다, 무섭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 아마존에 왔는데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랬기 때문이다. 초반에 아마존 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것이 이유일 것이다. 아마존 문화에서는 건설적 피드백을 직설적으로 하는 것을 권장하고 그러지 않는 것을 Leadership principle에 반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뭔가 했을 때 정말 별로라면 “어 죄송하지만 그거 정말 별로예요”라고 동료들이 말해주리라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을 신뢰하고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존에서 사랑받았던 세 가지 이유

나는 그전 회사 대비 아마존을 다닐 때 더 인정받았는데,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내 한 해 계획과 프로젝트를 스스로 정의하는 것. 직원으로서 아마존에서 성공하는 데에 활용해야 하는 한 가지 도구가 뭐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Role guideline이다. 대부분의 롤에 대해서 그 롤에 대해 기대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것들을 해낼 때 그다음 레벨로 승진하게 되는지가 꽤나 자세히 정의되어 있다. 감사하게도 내 첫 매니저가 이것을 잘 사용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나는 전 회사에서 남이 시키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던 찰나였기에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 가이드라인을 내가 잘 이해하고 매니저를 설득할 수 있다면 내가 하는 일을 나 스스로 정의할 수 있었다. 누구랑 무슨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지, 결과로는 무엇을 낼 것인지, 언제까지 할 것인지 등등을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정의하면 매니저들은 대개 그것을 적극 지원해 주었다. 추측해 보자면 이렇게까지 본인 일을 정의해서 한 해 계획을 짜오는 직원은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나에게는 자율성, 성취감, 다른 동료들과의 연결감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도록 내 일의 프레임을 스스로 짤 공간이 주어졌으므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것뿐이었다. 이 전략은 내가 승진을 준비하면서 매니저와 논쟁해야 하는 상황에 있을 때에도 빛을 발했다. 롤 가이드라인을 들고 와서 내가 6개월 안에 A, B, C 채우면 원하는 타임라인에 승진할 수 있겠느냐를 담판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의 정량적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나는 늘 ‘진짜’인 것에 목말라 있었다. 형식적인 것 말고, 위에서 시키니까 해야 하는 것 말고 진짜로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일을 할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말들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저는 힘없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세요” 같은 느낌의 말들이었다. 두 번째는 본인의 영업 인센티브나 형체를 찾아볼 수 없는 인사이트 호소인들의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내 말만 믿고 따라와”이다. 내가 스스로 일을 정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여기에서 뭘로 ‘진짜’ 결과를 볼 것인지 정하는 것도 나일 수 있었다. 아마존은 Data driven 한 조직이고, 뭘 하든지 간에 정량적인 수치를 보여달라고 한다. 내 일의 진짜 결과가 뭔지 고민하던 나의 갈증과 아주 잘 맞닿아 있는 부분이었다. 내 성취가 값으로 나타내야 한다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사이즈는 얼마나 되어야 할지 나는 아주 적극적으로 고민했고 많은 사람들이 고민 자체에 손뼉 쳐주었고 어떻게든 자기가 아는 것도 알려주려고 애써주었다. 그 결과 실제로 정말 많이 배웠고 노력한 이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사실 전 회사에서는 기회와 성취는 독식해야 하고 나눠 가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회라고 할 만한 것이 아주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환경에 오니 알게 됐다. 진짜 제대로 된 직업인으로서의 성장, 인간으로서의 성취는 기회를 나누어 가질 때만 가능했다. 내가 1부터 10까지만 혼자서 할 수 있었다면, 다른 연차가 낮은 동료는 내가 조금만 도와줬더니 1부터 10을 무지개 색깔 일곱 버전으로 가져왔다. 나와 비슷한 다른 동료는 11부터 20을 해내서 내 것과 합하면 1부터 20이 되었다. 이렇게 혼자였다면 10개만 있었겠지만 셋이서 했더니 140개가 되었다. 이렇게 같이 일하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홍보대사가 되고 싶어 진다. 나는 내 좋은 선배들이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매니저들을 참조에 걸고 그들에게 Thanks letter를 쓴다. 고객에게 어떤 피드백이 있었는지, 어떤 비즈니스 결과를 끌어냈는지 등등 아주 자세하게 쓴다. 나는 상당히 내향적인 인간이지만, 성장의 기회만큼은 나누었을 때 더 커진다고 믿는다. 실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언제나 의견을 가지려고 노력한 점이다. 원래도 “저는 별 의견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멋이 없다고 생각했다. 전 회사에서는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이 의견이란 것들이 없으면 내 인생이 얼마나 편할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너는 의견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이제는 절친한 친구가 된 한 동료도 “그때 지원님 정말로 신기했어요, 신입인데 자기 의견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성향이 그런 점도 있음을 인정한다. 어쨌거나 내 장기적 커리어가 어떤 모습일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가 의견을 묻고자 찾아오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아마존 사람들은 나의 이런 점을 좋아했다. 묻어가는 사람보다는 나대는 사람을 좀 더 좋아해 줬달까.




얼마 전 멀리서만 지켜보며 멋지다고 생각했던 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그가 아마존의 LP는 우리가 이 회사를 다녀서 지켜야만 하는 원칙이고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마존과 별개로 우리의 정체성을 정의해주기도 하는 말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퇴직 인사 메일에 적었다. 나는 아마존에서 일하지 않았을 때부터도 Bias for Action의 기지로 살고 있었고, 여기에서 더 이상 일하지 않게 되어도 Earn trust 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나의 매일이 Have a backbone, disagree and commit 하는 모습이기를 바란다. 내가 가장 부족한 것은 Think big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그것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으...) 회사와 내가 죽도록 치고 박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할 수 있나 미국 자본주의 중심에 서 있는 회사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4년 동안 고마웠다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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