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전씨 Mar 10. 2024

롤모델이 할머니인 이슈

2024 세계여성의 날을 축하하며

나라는 인간을 정의할 때 할머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셨기 때문에 친할머니가 나의 엄마 같은 존재였다. 나는 자발적으로 아주 오랫동안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쓸 정도로 할머니와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 놀랍게도 나는 고등학생 때도 할머니를 뒤에서 끌어안고 잠을 잤다. 할머니는 당뇨 때문에 팔다리는 얇아지고 배만 볼록 나온 아주 조그마한 여자였었는데 할머니 배 팔을 두르고 누우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물론 할머니와 싸우고 등을 돌리고 자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는 꽤 사랑이 넘쳐나는 사이였다.


우리 할머니는 아주 신기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난 할머니는 10대 시절에 조선 공산당 활동에 참여하는 운동가였다. 자본주의에 아주 성실하게 복역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할머니의 이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지는 않다. 그때 당시에 독립이라고 하는 것에 수단으로 쓴 젊은 청년들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면 그저 멋지다. 그러다가 당연히 붙잡혀서 모진 고초를 당하고 6.25를 겪으며 몇 번씩 죽을 뻔하다가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남았다. 그때 당시 29살까지 결혼을 안 했으니 노처녀였으며 아주 파격적으로 4살 연하남인 할아버지를 만나 아빠와 큰 아빠를 낳고 살았다. 그 뒤로 할아버지가 사업을 시원하게 말아먹으면서 할머니는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으나 할아버지는 가정을 돌볼 여력이 없었으며 아이들은 빠르게 커갔다. 말하자면 할머니는 가난과 가부장제와 아주 오랫동안 싸웠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아주 불같은 사람이었다. 늘 다정하고 재미있다가 무언가 할머니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온 집안사람들이 다 알게 화를 내었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그의 심금을 울리는 일이 있으면 소리를 내 울었다. 내가 할머니를 조금이라도 기쁘게 해 주면 아주 큰 소리로 웃었다.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세상에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는 아주 유식했다. 할머니 스스로도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으면 공부를 아주 잘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었다. 할머니는 내가 고삼일 때 돌아가셨다. 수능을 다 마치고 수시 결과를 기다릴 때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그토록 기다렸던 나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아주 오랫동안 거동이 불편했던 할머니를 대학에 입학하면 꼭 벚꽃을 보여 줘야겠다고 말했었는데, 할머니는 벚꽃이 필 때까지 기다려 주지 못했다


그래서 꽃이 피는 3월, 여성의 날이 있는 3월이 되면 할머니 생각이 더 많이 난다. 나는 할머니를 아주 많이 닮았다. 할머니의 거침없는 언사를, 할머니의 야심을, 할머니 넘쳐나는 사랑을, 할머니의 우울을, 할머니의 괴상한 자기 연민을, 할머니의 비틀린 수동 공격성을, 할머니의 순진함을, 할머니의 장난스러움을, 할머니 총명함을,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이고자 발버둥 친다는 점을 닮았다. 할머니는 나를 계속 앞으로 가게 했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운 딸이고 싶은 만큼 할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손녀딸이고 싶었다. 20살 때는 할머니처럼 외부에 압력에 굴하지 않고 자기의 뜻을 사는 사람을 살고 싶었지만 배부르고 등 따수웁게 자란 나에게 간절한 이념은 없어서 괴로웠다.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일들이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내 마음속에는 할머니가 못다 이룬 것들, 할머니가 당신의 생에서 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해서 하고 싶은지도 몰랐을 일들을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할머니가 하지 못한 공부를 내가 다 해주고 싶었다. 나는 여전히 할머니가 단순히 조금 일찍 태어났다는 이유 때문에 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내가 대신해주고 싶다. 할머니와 꽤나 많이 닮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면 할머니가 이승 너머의 세상에서 꼭 지켜봐 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정말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해야 했던 할머니가 나를 통해 본인의 다른 삶을 상상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나는 할머니를 미화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할머니는 나의 인격 형성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 아마도 엄마보다 나에게 영향을 많이 준 여자일 것이다. 할머니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 고부 갈등의 가해자로서 엄마를 괴롭게 했다. 나는 이를 가벼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는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으로 멋진 삶을 살았지만서도 한편으로 본인에게 아쉬운 게 많은 박복한 삶이었고, 그 비틀린 마음을 남에게 투영하여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할 말들도 많이 하였다.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을 인정하는 동시에 나는 조금 다르게 살 것이라고 다짐한다. 할머니가 나보고 정 없는 계집애라고 많이 욕 했었는데 아마 이런 면 때문에 그랬었던 거 같다. 그렇지만 어쩔 것임? 사실인걸?ㅋ


동료들에게서 Happy International Women's day라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여성 참정권이 최초로 인정된 이 날, 그 현장으로부터 지구 정반대 편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으면서도... 이런 날들 때문에 영원히 그리워할 할머니에 대해서 조금 끄적여보게 되고, 내 주변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고, 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보내 주는 리더들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나는 앞으로 어떤 여자의 모습일지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고마운 날이다. 그래서.. Happy International Women’s day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