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 현실의차이 혹은 적응의 실상
엄마들은 항상 분주하다. 현재에 충실하고 싶지만, 미래의 계획을 실행하고 이를 현실화하는 많은 잡무들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이사를 가는 일도 그러하다. 성인들끼리 가면 의식주같은 큰 부분은 공동으로 처리하고, 각자 학교나 회사에 관련한 업무는 개인적으로 담당하면 되므로, 그 경계가 깔끔하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면 부가적인 일들은 부모들은 담당해야 한다. 내가 다닐 학교보다 더 품을 들여 아이의 학교를 검색하고, 새로운 언어와 문화 적응을 위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공부를 알아보는 일들은 끝없는 곁가지가 있는 일들이다. 내가 다닐 학교가 아니니까 더 조심스럽게 알아보고, 아이의 적응여부에 따라 학교와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것 또한 부모이므로 어깨가 더 무겁다.
게다가 한국은, 정보강국, 준비강국이다. 영어공부를 위한 학원, 교재, 그리고 돌아와서 교과과정을 대비하기 위한 책 리스트까지 원하는 만큼 대비할 수 있다. 막상 가면 어떨지 예상이 안되니 더 불안하고 걱정도 된다. 다른 아이들의 케이스를 미준모같은 카페에서 읽으며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시뮬레이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막상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일이 생길테니 이런 걸 해야해요-라는 정보도 도움이 될테지만, 막상 정말 맞닥뜨린 후에 어떤 적응기를 거치는지 공유하려 한다. 육아의 묘미는 케바케인 것 같다. 이런 집도 있군,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남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 또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영어공부를 해야야 하나? 가면 아이들은 금방 다 영어를 잘하게 된다던데...
영어를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나처럼 2-3년 단기로 다녀오고,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내가 아이를 보냈던 북서부 Oregon의 초등학교는 작은 도시로 어린시절부터 아이들이 함께 자란 경우가 많고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들이었는데도 단짝이라는 개념이 강하게 생긴 상태였다. 남자아이들은 같이 운동을 하면서 몸으로 하는 대화들이 교류에 도움이 되지만 여자아이들은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언어능력이 없으면 같이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친한 친구가 있는데 뭐하러 새로온 아이에게 에너지를 쏟겠는가. 게다가 한국처럼 누군가 소외당한다는 것이 멋쩍을 수 있고 외로울 수 있다는 것 또한 아이들이 세심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곳은 누구나 친구가 없으면 혼자 밥 먹고 외로워질 수 있는 정글이기 때문이다.
학교가 끝나면 각자 자기 아이들을 차에 싣고 예체능 학원이나 집으로 향한다. 친한 친구끼리는 부모가 교대에서 픽업을 하고 일주일에 정기적으로 같이 노는 날이 이미 세팅이 되어 있다.
게다가 초3은 애들이 아무나랑 놀지 않는다. 정말 절박하지 않는 이상, 자기랑 잘 맞는 애가 있고 선호도가 생기는 나이대여서 놀이터가서 아무나랑 놀아, 말 붙여봐~ 이게 안 통한다. 아이가 낯을 가리면 더더욱 이것은 효과가 없다.
기본적으로 영어를 말하고 쓰고 읽는 능력을 갖추고 나면 빠른 속도로 아이들이 하는 비속어나 분위기 그리고 권력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된다. 카스트처럼, 천민부터 올라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말을 못하면 공주 시녀 놀이에서 부하만 줄창하는 거다, 그리고 그것조차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눈치가 생기고 이제 적응이 되어 시녀노릇 안해도 될만큼 성장하면 적당히 거절도 하고, 자기 무리를 찾아나간다. 내가 있던 지역은 동양인이 많지 않아서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맥앤치즈, 크래커, Lunchable, 오레오... 그래야 나눠먹을 수도 있고 마음도 편하단다.
친구관계도 지각변동을 겪는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 혹은 말 잘듣는(말을 못 하니까) 부하가 필요한 대장캐릭터 친구들과 놀기 시작한다. 플러스 희한하게도 부모 중 한 명이 미국인이 아니거나 그런 이유로 다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아이들과 먼저 편하게 느끼고 친해지더라.
나머지의 법칙이라고... 처음 정체도 잘 모르는 신입아이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그룹은 자신의 베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 말인즉슨... 이 아이들은 베프를 못 만든 아이들이라는 거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 성격이 매우 강하거나, 아니면 너무 수줍어서 조용하다거나 이런 경우가 많았다. 이런 성격 플러스 거기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이 아이들의 관계맺음을 어렵게 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관계가 삐그덕거리는 메커니즘이 우리아이랑도 결국에는 나타나더라는 거다. 그래서 처음 1년은 아이가 속한 그룹이 삐그덕거리며 오늘의 베프가 내일의 원수로 변하는 경험도 했다.
성인인 내가 볼 때에는 저게 정말 친구인가? 저렇게 싸웠다 화해하고 결국 찢어지는데? 싶은 1년이 지나고, 4학년이 되어서야 부쩍 안정적인 친구그룹이 생기게 되었다. 4학년때에는 책읽는 그룹에 친구와 함께 들어가서 다른 친구의 집에 가서 공부를 하자는 초대를 받기도 하고, 친구그룹의 엄마들이 집에 놀러오라, 아이를 데리고 하룻동안 어딜 같이 다녀와도 되냐, 라는 생일파티초대가 아닌 좀 더 주기적이고, 일상적인 약속들이 확실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관계의 덜컹거림 속에서,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발레도 다니고- 그저 적응하는 데에도 마음이 분주했다. 물리적인 시간을 더 쪼개 국어나 수학 등 학업적인 부분을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다른 나라에 산다는 것은 다른 나라 어린이들처럼 산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약속해주지 않으면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삶, 길거리에 나가면 인적이 드문 곳, 1년의 반은 비가 오는 곳... 모르는 아이들과 농구를 하고, 오케스트라를 하고, 발레를 하고... 교회도 가고. 이런 자극을 소화하기에도 벅찬 것이 나 자신 그리고 나의 아이였다.
우리가 보낸 2년은 1번가, 2번가가 어딘지 훤히 알겠고, 할아버지 베이커가 굽는 몸에 좋은 통밀빵을 어디에서 파는지 알겠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같이 어디 갈래? 하는 이웃과 친구들을 사귀는데에 쓰여졌다. 치즈와 아이스크림의 진정한 맛에 눈뜨고, 무슨 일만 있으면 친구를 불러 피자를 같이 나누어먹고, 친구한테 김치를 주고 달걀을 얻는 그런 일이었다.
<CAB Recital, 학교도 문을 닫던 눈오는 날, Northwest Hills Church에서 마련한 아이들을 위한 행사>
다시 아이의 적응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면,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새로운 내가 되는 데에 기존의 내가 필요한가? 준비는 다른 내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데에 그쳐야 한다. 남은 힘은 용기를 내어 YES,라고 하는 데에 쓰였으면 좋겠다.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고, 서로의 집에 초대하는 새로운 문화를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용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문화를, 언어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겠다. 영어공부도 그런 의도를 기반으로 한다면 조건을 채우기위한 수단을 넘어서는 의미 있는 행위가 될 테니까.
아이만을 위한 외국행은 국경문을 서로 닫고 있는 이 마당에 그 의미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모든 것에는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 왜 그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채보고, 인생의 큰 결정을 하기를 나 스스로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