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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n Yeo Feb 12. 2024

노래방의 인류학

<노래방의 음악인류학>

1. 서론: 축가를 왜 저렇게 부르지?


사촌 누나 결혼식에 축하해주려 간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본 친척을 보느라 반가웠다. 결혼식이니 원래대로면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줘야 했다. 그런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이고 뭐 귀에는 뭐만 들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음악을 전공한 내겐 예식장의 음악에 더 관심이 갔고, 더군나나 음악학을 공부한 나는 몇 달 전 본 책 내용 '음악은 단순히 작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리츄얼이고 행위이다.




음악을 동사로서 바라보는 것이 적절하다'이 떠올라 음악하기에 더 집중됐다. 결혼식 주인공 신랑과 신부에게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내겐 결혼식이 축하하는 자리라기 보다는 음악 인류학적 대상이 가득찬 장소로 느껴졌다.


나한테 인상 깊었던 것은 '축가 부르기'였다. 합창단이 와서 축가를 불러줬는데 나는 기가 막혔다. 피아노는 조율이 안 되어 있었고, 노래 부르는 사람도 음고와 박자가 전혀 맞지 않았다. 심지어 반주자는 합창이 더 돋보이게 반주 용량을 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세게 타건해 합창이 묻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저 합창단이 결혼식이 끝나고 문책을 당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축가를 불러줘서 감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이분들은 전문 합창단이 아니라 신랑 측이 다니는 교회 신도들이 축가를 불러준 것이고 이에 대해 감사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노래 부르기에 대해 무조건 '음고를 잘 맞췄냐 ? 박자에 충실하냐? 적절한 밸런스를 갖추며 화성과 조화를 이루는 선율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치평가하는 게 바람직할까?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래 부르기 행위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는 경우가 있다. 친한 사람의 결혼식장에 방문해서 노래를 불러주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노래를 부르냐지, 어떻게 노래를 부르냐가 아니다.


2. 음치여도 괜찮아. 너가 부르는 거잖아.

노래방도 마찬가지지 않나 싶다. 내 친한 친구가 음치라고 해서 같이 노래방에 가는 걸 꺼려야 할까? 혹은 그 친구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형식적 요소를 얼마나 충실하게 구현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아니다. 그 친구와 같이 노래 부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보다 친밀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훌륭한 음악이 된 셈이다. 다시 말해서 친교 목적인 맥락에서는 평가 기준이 심미적 기준이 아니라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어떤 음악에 친구가 불편함을 느낄 만한 요소가 혹여나 있을까? 예를 들면 이별한 친구에게 위로하는 자리에서 즐거운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물론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에서 밝은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만 그것도 친구의 성향, 상황, 분위기를 봐가면서 선곡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무관심적인 태도로 관조하듯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감정 이입하고 몰입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전문 연주자 양성 목적의 교육을 받은 스스로가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좁은가 반성하게 된다. 사실은 전문 연주자 양성 과정에서 가르치는 음악을 대하는 태도 자체엔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음악을 바라보는 기준을 심미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심미적 기준으로 음악을 평가하는 것은 전문 음악가 양성 과정에서 가르치는 요소인지라 자연스럽게 소위 비전공자 및 일반인은 심미적 평가 기준보다는 다른 평가 기준을 이용해서 음악을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방식이 크게 보면 형식 분석과 다름없으니 '너의 말에 근거가 부족한 거 아니냐'라고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국영수 중심의 학습을 하는 사람들에게 음악은 부차적인 과목으로 취급되었고, 전공자는 음악이 중심 과목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비중이 다르다. 심지어 비전공자에겐 중등학교의 음악 과목은 그저 노는 시간이라는 통념이 암암리에 퍼져 있곤 한다.

3. 음악은 얼마나 사회적인가?


내 생각엔 보통 사람들은 '직업으로서의 가수의 노래 부르기'를 대상 삼을 땐 제외하곤 혹은 연주나 노래 부르기는 형식적 요소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즐거우면 그만이고 슬픈 음악이 필요할 땐 절절하면 그만이다. 음악이 가지는 심미적 측면보다는 실용적 목적에 더 주목한다는 뜻이다.

시위용 음악

그런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해서일까? 세상에 있는 많은 음악은 감상용 쓰이기보다는 감상 이외의 다양한 목적으로 쓰인다. 배경음악, 여흥, 광고, 정치적 목적, 정체성 드러내기, 사회적 결속 등으로 쓰인다. 이런 목적을 가진 음악을 향유하는 사람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크게 힘을 쓴다. 이 음악의 실용적인 효과는 음악을 감상할 때도 물론 있지만, 이것을 스스로가 수행(perform)할 때 극대화된다. 직접 자기가 노래 부르고, 직접 자기가 악기로 연주하며 이를 다시 귀로 들을 때 실용적인 효과는 극대화되는 것이다. 또한 혹은 이 음악과 관련된 다른 행위도 더해질 때 효과는 엄청 커질 것이다. 예컨대 노래만 부르지 않고 춤도 같이 추던가 탬버린도 같이 흔들면 더욱 더 흥을 돋울 것이다.

노래방은 '음악하기'를 통한 실용적 효과를 극대화할 기회를 보급한 장소라는 데 사회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래방은 물론 남의 노래를 듣고만 있을 수 있지만 직접 스스로 음악을 부를 수 있게 마이크와 mr 등의 장치가 구비된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암암리에 음주도 즐길 수 있다.

직장에서 구성원들과 친밀감과 결속을 더하기 위해 회식을 하곤 한다. 그러곤 회식이 끝나면 다 같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음악을 통한 결속효과를 위해 노래방에서 다 같이 노래 부르는 것이다. 또한 개인이 여흥을 목적으로 혼자 노래 부르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노래방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이러한 노래를 통한 사회적 결속, 여흥은 특정한 장소, 시기, 맥락에서만 수행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예컨대 축제를 할 때만 혹은 공연을 할 때만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특정한 노래 부르는 데 적합한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부적절한 장소와 때에서 노래를 부르기를 한다면 소음공해를 유발한다고 여겨 반사회적인 인물로 낙인 찍혔을 것이다. 하지만 노래방이 생긴 이후론 그렇지 않다.

일상세계에 있다가도 노래방에 들어서는 순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노래방 덕분에 스스로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맥락을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된 셈이다.



한편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노래방이 생긴 것인가? 노래방이 생기면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진 걸까? 앞서 얘기한 것은 첫 번째 질문에 O한 걸 전제로 했지만 두번째 질문에 O한 걸 전제로 얘기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노래방은 단순히 노래 좋아하는 사람이 때문에 생긴 걸 수도 있지만, 노래방 때문에 노래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처음 노래 부르기를 하는 사람은 실용적 목적에 집중해서 노래를 즐길 수도 있다.


 그런데 나중엔 그렇게 실용적인 목적으로 쓰던 음악에 형식적, 심미적 측면에 주목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이 그 가사가 너무 절절해서 주로 부르게 되다가 멜로디에도 집중하다 보니 노래도 나쁘지 않구나하면서 음악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서 음악세계에 들어올 때 음악 외적 측면이 좋아서 들어왔지만 이후엔 음악 내 측면에 집중하기 될 수도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노래방은 예술 음악 종사자에게도 그 관객과 청중 향유층을 넓히는 좋은 장이 된다고 생각한다.


4.결론: 노래방은 음악행위를 보급화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미학도 보급했다.


우리는 통념상 클래식 음악은 대중음악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이 겅우 클래식 음악은 형식적인 측면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고, 대중음악은 이 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한테 인기를 끌고 어떻게 소비되는가에 집중하는 면이 더 크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도 많은 사람한테 인기를 끄는 유명한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고전도 있고 이것이 소비되는 맥락 또한 매우 중요하다. 예컨데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가 공연을 보는 태도, 공연 전후엔 주로 하는 부대 행위도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대중음악도 실용적인 목적으로 리추얼이나 사회적 결속으로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심미적으로 주의 깊게 청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음악도 다른 맥락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래방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노래방에 많은 사람이 동시에 이용할 때는 결속의 목적이 있을 수 있고, 혼자 갈 때는 여흥의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한편 어쩌면 주의 깊게 음악을 청취할 수도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노래방이 단순히 음악을 수행할 기회만 준 것이 아니라 음악의 다양한 측면들을 주목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줄 수 있는 장이지 않을까? 실용적 목적을 포함하여 심미적 목적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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